문화(文化); 책과 생각; 건강

마추픽추를 보려고 전부를 걸었어

성령충만땅에천국 2019. 5. 3. 15:59

마추픽추를 보려고 전부를 걸었어

등록 :2019-05-03 06:01

 


[책과 생각] 한 장면

“아침부터 관광객이 왔다가 사라지는 걸 지켜봤어. 마치 슈퍼마켓 같았어. 사람들은 상품을 구매하듯 마추픽추를 사고 소비하고 떠나. 난 쉽게 이곳을 떠날 수 없었어. 마추픽추를 보기 위해 내가 가진 전부를 걸었으니까.”

남미 히피 로드-800일간의 남미 방랑

노동효 지음/나무발전소·1만7000원

작가 노동효가 2년 반 동안 남아메리카 두 바퀴를 돌며 경험한 마술 같은 이야기를 담았다. 국내 최초로 공개되는 히피 공동체 ‘레인보우 패밀리 Rainbow Family’와 안데스 산자락에서의 숲속 생활, 콜롬비아 커피 마을의 서커스 학교 체험, 남아메리카의 광장과 거리에서 만난 악사, 방랑 시인, 떠돌이 명상가, 유랑서커스단, 길거리 수공예가, 쿠바의 젊은 음악가 등 남아메리카의 자유 영혼, 그리고 히피 무리와 어울리며 지낸 체험담이 실제 그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함께 생생하게 다가온다. (출판사 책 소개 중)

히피, 거리의 악사. 호보(떠돌이 일꾼). 히치하이커. 떠돌이 명상가. 유랑 서커스단. 떠돌이 수공예가. 지구 행성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방랑의 물결이 남아메리카를 흐르고 있었다. 물론 짧은 여정으로 대도시만 찍고 가는 간광객과 출장 비즈니스맨에겐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세상 조류에 아랑곳없이 시간을 향유하는 여행자는 만나게 될 것이다. 남아메리카의 터미널과 광장에서 큰 배낭을 메고 꽃잎처럼 떠도는 방랑자들을. ⓒ노동효
히피, 거리의 악사. 호보(떠돌이 일꾼). 히치하이커. 떠돌이 명상가. 유랑 서커스단. 떠돌이 수공예가. 지구 행성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방랑의 물결이 남아메리카를 흐르고 있었다. 물론 짧은 여정으로 대도시만 찍고 가는 간광객과 출장 비즈니스맨에겐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세상 조류에 아랑곳없이 시간을 향유하는 여행자는 만나게 될 것이다. 남아메리카의 터미널과 광장에서 큰 배낭을 메고 꽃잎처럼 떠도는 방랑자들을. ⓒ노동효
“난 브라질에서 온 해적이야.” 가브리엘라는 자신을 ‘피라테’라고 소개했다. 그렇지만 곧이곧대로 믿기진 않았다. 커다란 문신이 있긴 했지만 뒷골목 형님들의 용이나 호랑이 그림과는 판이하게 다른 화풍이었다. (…) 아무튼 아프리카 소말리아 앞바다도 아니고, 21세기 남아메리카에 할리우드 영화에나 나올 법한 해적이 있다는 건 너무 황당하지 않은가? 더구나 아기 고양이를 안고 다니는 해적이라니! ⓒ노동효
“난 브라질에서 온 해적이야.” 가브리엘라는 자신을 ‘피라테’라고 소개했다. 그렇지만 곧이곧대로 믿기진 않았다. 커다란 문신이 있긴 했지만 뒷골목 형님들의 용이나 호랑이 그림과는 판이하게 다른 화풍이었다. (…) 아무튼 아프리카 소말리아 앞바다도 아니고, 21세기 남아메리카에 할리우드 영화에나 나올 법한 해적이 있다는 건 너무 황당하지 않은가? 더구나 아기 고양이를 안고 다니는 해적이라니! ⓒ노동효

고기, 술, 돈거래 금지. 히피들 대부분이 채식주의자이고, 무지개 모임에선 저마다 가진 걸 함께 나눠 쓴다던 가비의 말이 떠올랐다. 하긴 러시아 히피 샤샤도 술, 고기를 권하면 매번 사양했다. ⓒ노동효
고기, 술, 돈거래 금지. 히피들 대부분이 채식주의자이고, 무지개 모임에선 저마다 가진 걸 함께 나눠 쓴다던 가비의 말이 떠올랐다. 하긴 러시아 히피 샤샤도 술, 고기를 권하면 매번 사양했다. ⓒ노동효

노란 리본을 내려놓았다. 한국을 떠날 때 노란 리본을 낡은 가방에 얹고 왔더랬다. 나는 노란 리본을 나비라고 생각했다. 마추픽추도 보고 싶고, 티티카카 호수에 발도 담그고 싶고, 이구아수 폭포의 물벼락도 맞고 싶고, 카리브 섬에서 춤도 추고팠던 아이가 내 가방 위에 앉아 따라왔다고. 체를 추모하는 세탁대 위에 내려앉은 세월호 리본이 바람에 나풀거렸다. 나는 속삭였다. ‘아이들아, 잠시 쉬어라. 그리고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하자.’ ⓒ노동효
노란 리본을 내려놓았다. 한국을 떠날 때 노란 리본을 낡은 가방에 얹고 왔더랬다. 나는 노란 리본을 나비라고 생각했다. 마추픽추도 보고 싶고, 티티카카 호수에 발도 담그고 싶고, 이구아수 폭포의 물벼락도 맞고 싶고, 카리브 섬에서 춤도 추고팠던 아이가 내 가방 위에 앉아 따라왔다고. 체를 추모하는 세탁대 위에 내려앉은 세월호 리본이 바람에 나풀거렸다. 나는 속삭였다. ‘아이들아, 잠시 쉬어라. 그리고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하자.’ ⓒ노동효

머리 희끗한 노인, 기타를 치는 청년, 어린 여자아이 둘과 걸음마를 시작한 듯한 아기. 두 쌍의 젊은 부부, 호스텔 주인의 가족이나 친척일까? ⓒ노동효
머리 희끗한 노인, 기타를 치는 청년, 어린 여자아이 둘과 걸음마를 시작한 듯한 아기. 두 쌍의 젊은 부부, 호스텔 주인의 가족이나 친척일까? ⓒ노동효

알바로는 매일 자신이 작사·작곡한 노래를 불렀고, 알바로의 집으로 매일 모여드는 친구들은 마치 뮤지컬 배우 같았다. 그리고 오늘 저녁엔 이 뮤지컬의 하이라이트가 기다리고 있다. 알바로와 친구들의 콘서트.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마치 이 콘서트를 보기 위해 푸콘에서 한 달을 보낸 것 같다. ⓒ노동효
알바로는 매일 자신이 작사·작곡한 노래를 불렀고, 알바로의 집으로 매일 모여드는 친구들은 마치 뮤지컬 배우 같았다. 그리고 오늘 저녁엔 이 뮤지컬의 하이라이트가 기다리고 있다. 알바로와 친구들의 콘서트.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마치 이 콘서트를 보기 위해 푸콘에서 한 달을 보낸 것 같다. ⓒ노동효

광장마다 거리마다 삼바 밴드와 그들을 따르는 행렬이 넘쳐흘렀고, 성·경제·사회적 위치가 뒤바뀐 옷과 가면 쓴 사람들로 가득했다. 일상의 금기가 사라지고, 기성질서가 파괴되고, 아래·위와 좌·우가 뒤바뀐 세계. 나는 브래지어를 빌려 차고 노란 리본을 머리에 꽂고 거리고 나갔다. 남성인 내가 브래지어를 차고 다닌다고 해서 주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노동효
광장마다 거리마다 삼바 밴드와 그들을 따르는 행렬이 넘쳐흘렀고, 성·경제·사회적 위치가 뒤바뀐 옷과 가면 쓴 사람들로 가득했다. 일상의 금기가 사라지고, 기성질서가 파괴되고, 아래·위와 좌·우가 뒤바뀐 세계. 나는 브래지어를 빌려 차고 노란 리본을 머리에 꽂고 거리고 나갔다. 남성인 내가 브래지어를 차고 다닌다고 해서 주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노동효

나의 ‘장기체류 후 이동’이라는 여행 방식은 지구란 행성과 인간을 더 잘 알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고, 넓은 대륙이나 지역의 경우 최소 2년이 소요되었다. ⓒ노동효
나의 ‘장기체류 후 이동’이라는 여행 방식은 지구란 행성과 인간을 더 잘 알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고, 넓은 대륙이나 지역의 경우 최소 2년이 소요되었다. ⓒ노동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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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892500.html#csidxc18d98639674d368fdf8577dcd50db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