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유기성*신우인목사설교+칼럼

김동호 목사 Facebook. 2019. 4. 12. 금요일 / 목회 농사 대풍이다.

성령충만땅에천국 2019. 4. 25. 17:13

김동호 목사 Facebook. 2019. 4. 12. 금요일 / 목회 농사 대풍이다.|김동호목사의 페이스북

스티그마 | 조회 39 |추천 0 |2019.04.12. 23:20 http://cafe.daum.net/stigma50/Dhpk/2522 


김동호 목사 Facebook. 2019. 4. 12. 금요일


목회 농사 대풍이다.


1.


93 새벽기도회 하다가

기도 하나님과 나름 대화하다가

목회에는 종류의 목회가 있다는 깨달았다.


'뿌리는 목회'


'거두는 목회'


'거두는 목회' 중요하지만


'뿌리는 목회' 중요함을 깨달았다.

'거두는 목회' 본능적으로 열심히 하게 되지만

'뿌리는 목회' 정말 소명감을 가져야만 열심히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거두는 몫이 되지만

뿌리는 몫에서 덜어내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2.


'뿌리는 목회' 교육목회로 해석하였다.

그렇게 해석하고 보니 그게 목회적 은사와도 맞는다는 알게 되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주일학교 선생을 하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는 학생이 300여명 선생이 50여명인 주일학교 총무가 되었고

72년도에는 처음으로 모교회의 교육전도사가 되었다.

73년도에는 인천제일교회 유년부( 소년부와 초등부와 같은 구분이 없었다. 유년부 하나였었다) 교육전도사

74년도 청량리중앙교회 고등부 교육전도사

83년도 영락교회 고등부 지도목사


생각해보면


꿈같았던 시절이었다.

나는 아이들이 좋았다.

그냥 좋았다.

저들에게 설교하는게 힘들었지만 좋았다.

설교하다가 몸에 소름이 끼치는 종종 경험했었고

울며 설교한 적은 부지기수다.

그만큼 좋았다.


3.


34살에 승동교회 담임목사가 되었다.

목회 재미있었다.

그런데도 자꾸 영락교회 고등부 예배가 생각났었다.

돌아갈 수만 있다면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88 영락교회가 협동목회를 하자며

나를 교육담당 협동목사로 불러주었다.

교육담당 협동목사로 가면서 제일 일은

교구와 교육부를 겸임하고 있던 것을

교육부서에 전임목사를 두게 것이었다.

엄청난 예산이 들어가야만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

교회가 청을 받아들여 그렇게 주었다.

부서의 목사를 청빙하면서 일부러 고등부 목사는 청빙하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어서

그리고

결국 꿈같은 영락교회 고등부 예배 설교를 다시 있게 되었다.


동안교회와


높은 숭의교회 담임목사 시절에는

청년부의 부흥을 경험할 있었고...

그리고

코스타에 미쳐서

강사비도 안주는(?) 집회를

20년도 넘게 해에 나라 나중엔 여섯 나라까지 돌아다녔었다.


4.


가는 곳마다

세계 어디를 가든지

아이들을 만난다.

벌써 할아버지 할머니가 친구들도 있지만

마음엔

그냥 아이들이다.


청량리중앙교회 아이들


인천제일교회 아이들

영락교회 아이들

동안교회 아이들

높은 교회 아이들

코스타 출신 (코스타는 아이라고 하기엔 쬐끔 그렇다) 친구들.


5.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그렇게 행복하고 감사할 수가 없다.

있는 곳곳에서

믿음의 뿌리를 깊게 내리고

커다란 나무들이 되어 있는 보면

열매 맺으며 살고 있는 보면


아이들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훈장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면류관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6.


생전엔 거둘 알았는데

내가 직접 거두지 못해도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누군가가 거두면 된다 생각했는데

생각이 틀렸다.


전국 곳곳에


세계 곳곳에

훈장이 주렁주렁

면류관이 주렁주렁


목회 농사


생각해 보니

대풍이다.

죽어도 원이 없다.

감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