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트루스
리 매킨타이어 지음, 김재경 옮김/두리반·1만6000원
지난 2월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주최한 ‘5·18 진상규명 공청회’에 나선 극우인사 지만원씨가 “5·18은 북한군 특수부대 600명이 광주에 침투한 내란 음모”라는 주장을 폈다. 5·18 당시 광주 기록사진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북한의 주요 인물과 닮았다고 임의로 연결지은 것이 그의 증거다. 누가 이런 허무맹랑한 주장을 믿을까 싶냐고? 유튜브에 지만원 티브이(TV) 계정을 검색해보시라. 조회수와 댓글을 보면 아마 깜짝 놀랄 것이다.
허무맹랑한 가짜뉴스가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퍼져나가고, 이에 대해 강경하게 대처하겠다는 정부도 사실은 어쩔 줄 몰라하는 것은 한국뿐만의 일이 아니다. 미국의 철학자 리 매킨타이어는 <포스트 트루스>에서 ‘브렉시트’와 ‘트럼프 당선’으로 대표되는 2016년 옥스퍼드 영어사전 올해의 단어로 선정된 ‘탈진실’(post-truth)에 대해 고찰한다. 이때 접두사 ‘포스트’는 시간 순서상의 ‘진실 이후’라는 뜻이 아니라, 진실이 무의미할 정도로 퇴색되었다는 의미다.
탈진실 시대에서 이익을 얻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저자는 정치꾼, 사업가 등 사회 지도층의 진실 왜곡에는 대중에게 특정한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가 명확히 있다고 밝힌다. 과거 ‘담배와 암의 관련성은 증명되지 않았다’, ‘인류는 지구온난화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등의 주장을 했던 싱크탱크를 지원해온 담배회사와 석유회사들이 대표적인 예다. 여기엔 공정성을 잃은 언론의 잘못도 크다. “언론은 어떤 논점을 다루더라도 양쪽 입장을 모두 보도하기 시작했다. (…) 언론은 과학자와 회의론자의 토론에 거의 동일한 시간을 배정했고, ‘기후문제’가 논란이 많은 문제라고 발표했다.” 기계적 중립성을 핑계로 진실 보도를 소홀히 한 언론은 결국 탈진실을 추구하는 이들이 뛰놀 수 있는 판을 깔아준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현재는 과거보다 더 암울하다. 사회관계망서비스 이용이 확산되면서 대중은 자신이 원하는 사람들과의 상호작용만이 가능한 세계를 살아갈 수 있게 됐다. 언론을 믿을 수 없다면, 직접 소통하면 (혹은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착각하면) 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기자회견보다 트위터 활용에 더 유능하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는 어떻게 탈진실의 시대를 극복할 수 있는가? 저자의 답변은 자칫 고루할 수도 있지만, 또 그만큼 정석이다. 더 나은 뉴스 미디어를 원한다면 제대로 된 보도를 지향하는 미디어를 지원해야 한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개개인이 원래 가지고 있던 생각과 신념을 끊임없이 의심하길 두려워하지 않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탈진실이 우리의 눈을 속이려고 할지라도, 결국 이에 어떻게 대응할지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