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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어를 배우다 인생을 재발견하다

성령충만땅에천국 2019. 6. 9. 01:11

그리스어를 배우다 인생을 재발견하다

등록 :2019-06-07 06:01수정 :2019-06-07 19:28

 

‘뉴요커’의 오케이어 메리 노리스
그리스 여행 위해 그리스어 배워
서툰 말로 인한 에피소드도 담아
“그리스어 통해 위안과 자유 경험”


그리스는 교열 중-<뉴요커> 교열자 콤마퀸의 모험
메리 노리스 지음, 김영준 옮김/마음산책·1만5500원

셰익스피어의 희곡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등장한 뒤 널리 쓰이는 영어 표현으로 “It was Greek to me”라는 문장이 있다. 직역하면 “내게는 그리스어였다”라는 뜻으로, “난 무슨 말인지 몰랐다”는 말이다. 그리스 신화라면 다양한 예술작품을 통해 전 세계인들이 익숙하게 접해왔지만, 그리스어로 말하자면 “뭔지 모르겠다”가 일반적이 되는 셈이다. 메리 노리스의 <그리스는 교열 중>은 그리스 여행을 위해 그리스어를 배우고, 배운 그리스어로 다시 여행하고를 오랫동안 반복해 온 언론매체 종사자의 에세이다.

<뉴욕은 교열 중>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메리 노리스는 잡지 <뉴요커>의 ‘오케이어’(OK’er)다. 노리스는 40년 넘게 <뉴요커>에서 교열 일을 하고 글을 쓰며, ‘원고를 인쇄 직전까지 다듬는 사람’인 오케이어로 일했다. 노리스는 취합부에서도 오래 일했는데, 취합부는 신체장기 중 간(肝)과 같아, 담당 편집자, 저자, 편집장, 문법학자, 교정자, 팩트체커, 명예훼손 소송 전문 변호사의 손을 거친 교정지가 도착하면 편집자가 수용한 수정사항들을 인쇄 전에 새 교정지에 옮겨 적으면서 불순물을 걸러내는 작업을 하는 사람이다. 즉, 노리스는 인쇄 매체의 영향력이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던 시대에 취재기사, 소설, 에세이, 카툰까지 널리 사랑받은 콘텐츠를 공들여 만들던 매체의 사람이었다.

메리 노리스의 <그리스는 교열 중>은 그리스 여행을 위해 그리스어를 배우고, 배운 그리스어로 다시 여행하고를 오랫동안 반복해 온 언론매체 종사자의 에세이다. 마음산책 제공
메리 노리스의 <그리스는 교열 중>은 그리스 여행을 위해 그리스어를 배우고, 배운 그리스어로 다시 여행하고를 오랫동안 반복해 온 언론매체 종사자의 에세이다. 마음산책 제공
노리스가 그리스어를 배우기로 한 이유는 그리스로 여행을 가기 위해서였는데, 그 학습을 위해 뉴욕대학교 평생교육원과 컬럼비아대학교에서 현대 그리스어와 고대 그리스어를 배웠다. 수업료는 <뉴요커>에서 냈다. 그리스어와 노리스의 직무 연관성을 회사가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회사에서 수업료를 받는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지만) 놀라운 직원 복지에 감탄하는 도입부를 지나 그리스어와 그리스 문학의 이야기가 시작되면, 어학에 관심이 없는 독자에게는 그야말로 그리스어의 향연 그 자체로, 따라가기 쉽지 않을 정도다.

노리스의 설명에 따르면 알파벳은 유례없이 성공적인 문자 체계로, 그리스 알파벳은 적어도 기원전 11세기 이후에 쓰였던 페니키아 알파벳에서 왔다. 무역이 흥했던 페니키아인들은 상품출납을 기록할 시스템이 필요해 알파벳을 수입했다. 그런 식으로 기원전 8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그리스 알파벳의 기원이 있는가 하면, 아이스킬로스 버전의 이야기는 프로메테우스 덕분에 생겼다고 한다. 그렇게 따지면 알파벳은 신화의 소재가 되지만, 또한 신화가 있었기 때문에 알파벳이 생겼을 것이다. “기억을 보존하고 역사를 기록하고 예술을 실현하는 도구가 되었다. 뮤즈의, 뮤즈를 위한 선물이다.”

메리 노리스의 <그리스는 교열 중>은 그리스 여행을 위해 그리스어를 배우고, 배운 그리스어로 다시 여행하고를 오랫동안 반복해 온 언론매체 종사자의 에세이다. 마음산책 제공
메리 노리스의 <그리스는 교열 중>은 그리스 여행을 위해 그리스어를 배우고, 배운 그리스어로 다시 여행하고를 오랫동안 반복해 온 언론매체 종사자의 에세이다. 마음산책 제공
노리스의 그리스 여행 이야기도 여러 번 등장한다. 좋은 경험만 한 것은 아니다. 노리스는 피레우스에서 출항한 연락선에서 ‘미미’(드미트리의 애칭)라는 남자가 안내를 자청해 미노스 궁전이 발견된 크노소스 유적지를 방문한 일이 있었다. 사람의 몸에 소의 머리를 가진 신화 속 존재 미노타우로스가 갇혀 있던 듯한 미로를 구경하다가 미미가 성적 친밀감을 표시하기 시작했고, 노리스는 그럴 정도로 친밀한 사이는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리스어로 “너무 빨라요”라는 뜻의 문장을 생각해내 말했으나, 나중에 알고 보니 자신이 한 말은 “더 빨리, 더 빨리”였다고. 노리스는 이 경험으로 ‘지중해를 홀로 여행하는 여자는 남자를 원한다’는 선입견이 만연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노리스는 어딜 가나 ‘혼자 왔는지, 남자는 어디 갔는지’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의 질문을 마주해야 했다.

메리 노리스의 <그리스는 교열 중>은 그리스 여행을 위해 그리스어를 배우고, 배운 그리스어로 다시 여행하고를 오랫동안 반복해 온 언론매체 종사자의 에세이다. 마음산책 제공
메리 노리스의 <그리스는 교열 중>은 그리스 여행을 위해 그리스어를 배우고, 배운 그리스어로 다시 여행하고를 오랫동안 반복해 온 언론매체 종사자의 에세이다. 마음산책 제공
당신은 이미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단어들을 많이 알고 있을 것이다. ocean(대양), dolphin(돌고래), peony(모란), elephant(코끼리) 같은 영어 단어가 대표적으로, 영어권 세계에서 사물에 이름을 붙일 때, 특히 자연물에 이름을 붙일 때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단어를 많이 썼다. 하지만 조지 오웰은 영국에 흔한 꽃에 그리스어 명칭을 덧씌우는 경향을 한탄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물망초(forget-me-not)를 미오소티스(myosotis)로 부르게 되었다는데, 의학용어 중에도 그리스어를 어원으로 생겨난 것들이 많고, 이런 현상은 “아마 이 언어가 가장 유서 깊고 가장 안정적이며 가장 품위 있는 연원이었기 때문에 그랬으리라는 추측이다. 여기에 신비적인 요소도 가미된 듯하다. 근사한 단어는 사람들에게 그럴듯한 인상을 준다.”

언어에 대한 관심보다 그리스 비극에 대한 흥미가 큰 사람이라면 ‘비극 취향’이라는 챕터를 읽기를.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에게 널리 읽힌 문학작품을 삶의 어느 시기에 접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의 무게와 깊이가 달라질 수 있음을 노리스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적어 내려간다. 에우리피데스의 <엘렉트라>를 고대 그리스어로 공연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아나그노리시스’를 경험했다는 것이다. 아나그노리시스는 무대 위에서 연기하던 인물이 자신에 관한 진리를 인식하는 전환점을 뜻하는 단어다.

메리 노리스의 <그리스는 교열 중>은 그리스 여행을 위해 그리스어를 배우고, 배운 그리스어로 다시 여행하고를 오랫동안 반복해 온 언론매체 종사자의 에세이다. 마음산책 제공
메리 노리스의 <그리스는 교열 중>은 그리스 여행을 위해 그리스어를 배우고, 배운 그리스어로 다시 여행하고를 오랫동안 반복해 온 언론매체 종사자의 에세이다. 마음산책 제공
노리스는 이렇게 썼다. “나는 그리스어에서 위안을 얻었고 그 덕분에 나의 모국어에서, 또 모국어와 함께하는 삶에서 벗어나는 기분이 들었다.” 외국어를 경유하지 않고는 불가능했던 도피와 자유의 경험을 그리스어로부터 얻었노라고. <그리스는 교열 중>에는 수시로 노리스가 성장 과정에서 가족과 경험한 일에 대한 회고가 등장한다. 어머니와의 관계, 어려서 죽은 오빠, 성전환한 동생(남동생이었지만 여동생이 된) 등에 관한 이야기들이, 때로 그리스어를 배우다가, 혹은 그리스 비극 공연을 준비하다가 노리스를 찾아온다. 과거가 문을 두드린다. 자신의 과거로 떠나는 여행을, 노리스는 가장 낯선 언어를 통해 성공적으로 마무리한다. 이 모든 과정은 몹시도 학구적이고, 놀라울 정도로 자유롭다. 외국어를 배운다는 일은 사고의 체계를 새롭게 습득하는 시스템을 하나 머릿속에 들인다는 뜻이며, 그리스어의 경우 수많은 단어의 어원과 신화의 세계관에 가까이 다가간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그의 이런 탐구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이다혜 작가, <씨네21> 기자

<그리스는 교열 중>의 저자 메리 노리스. 마음산책 제공
<그리스는 교열 중>의 저자 메리 노리스. 마음산책 제공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896990.html?_fr=sr1#csidx54c6b33b170fa118b94fdb50adabba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