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재 장로(박사)소설 콩트 에세이

북한의 계관시인 오영재(오승재의 동생)[황성하/이은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9. 7. 24. 02:33

북한의 계관시인 오영재(오승재의 동생)| 황성하/이은심

황성하 | 조회 60 |추천 0 | 2014.03.02. 21:56

북한의 계관시인 오영재(1935~2011,10.23, 전남 강진, 15세 때 의용군 참전했다 월남하지 못함)는 

위로는 장형 오승재(1933년, 전 한남대 교수, 이학박사, 소설가), 3남(육사 16기 수석입학, 중령예편, 서울시립대 교수, 공학박사),

4남 오근재(홍익대 교수) 그리고 3자매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2,000년 대한민국 서울에서 열린 남북이산가족 상봉 때 참석해 처음으로 남한에 알려 졌으며 당시 그가 쓴 유명한 사모시

'늙지 마시라'가 발표되어  화제를 모았다.

다음은 그가 쓴 사모곡 시를 모은 것이다.

 

 

 

1. 思母曲 


어머니께 보내는 편지

* 이 시는 1988년 6월 남한에서 가족이 읽기를 원해서 개작하여 발표한 것임.

 

그가 그리던 어머니

1

어머니에게 편지를 씁니다

몇 번 째 써 보내는 편지인지

그것은 나도 모릅니다

보내는 편지마다

이 땅을 갈라놓은 분계선 철조망에 찢기어

저주를 안고 다시 나의 가슴에 돌아왔습니다

때로 그 장벽을 넘어 나래 쳐간 마음의 편지는

온 남녘 땅을 헤매이다가 찾은

늙으신 어머님의 머리맡에

아들의 말없는 안부를 남기며

이 내 가슴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얼마나 오랜 세월이 우리를 갈라놓았습니까?

어머니 품에서 열 여섯 해

어머니 없이 열 네 해를 나는 자랐습니다

열 여섯 해 동안 나의 곁에서 나를 기른 어머나는

새 옷 한 벌 해주지 못하던 어머니였고

열 네 해 동안 나의 곁에 없는 지금의 어머니는


고생 많은 그 몸에 새 옷 한 벌 감아드리지 못하는

아들의 가슴에 안타까운 어머니입니다.

용서하시라, 어머니의 년세마저 기억하지 못하는 아들을

달이 가고 해가 바꿀 때마다

가버린 또 한해를 생각하며 이 마음은 괴롭습니다.


밤은 깊어갑니다

내가 사는 평양의 밤을 잠재우며

밖에는 흰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붉고 푸른 무궤도 전차의 불빛이

수은등 빛나는 거리를 달려갑니다

아름다운 대동강가에 자리잡은

아파트 5층 불 밝은 책상 앞에서

머지 않아 돌을 맞을

딸애를 잠재우며, 어머니 손녀를 잠재우며

끝맺을 길 없는 이 기나긴 편지를 씁니다

대답 없는 어머니를 부르고 부르며


희미하게 멀어져 가는 안타까운 모습이여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어머니 손길을 느끼는

그 어느 것 하나도 지금은 나에게 없고

다만 파도 높은 고향의 바다기슭

해질 무렵 비오는 창가에서 나를 업고 서성거리며

나직이 불러주던 자장가와... 밤을 새우던 물레질 소리

열에 들뜬 나의 머리맡에서 물오이를 깎아주시던

그 손길만이 나의 가슴에 남았습니다.


젖먹이 누이동생을 업고

이 아들을 찾아온 칠 십리 길..... 야영훈련소의 은행나무 밑

의용군 복장을 한 아들을 보며 웃으며

몸 성히 싸우고 돌아 오라 이르고 돌아서 간 칠십리 길...

석양이 뉘엿뉘엿 저물던

그 먼지 낀 신작로 길로 멀리 사라져 가던

아아, 마지막으로 보던 어머니 모습이여

그 밤 어두운 길을 무사히 사셨습니까....


2


열 네 해나 어머니 품에서 떨어져 사는

이 아들은 외로움을 모르고 지냅니다

그러나 가장 행복한 순간이면

어머니는 때없이 나의 가슴을 찾아 오셨습니다


잊을 수 없던 그 봄

내가 대학에 입학하던 날

나는 뒷산 잔디 우에

어린애처럼 볼을 대이고, 미여지는 가슴을 달래며

오래도록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 어머니는 오늘부터 대학생의 어머니입니다


내 철없을 때, 들은 말이

불현듯 그 순간에 되살아 올랐습니다


...어느 여름밤, 쑥 불로 모기를 쫓으며

한 집안 식구가 평상 우에 누워 자던 밤

내가 잠든 줄만 알고

온종일 일하기에 피곤하여 잠든 줄만 알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몰래 늦도록 이야기 하셨지요

학교가 그처럼 가고 싶었던 이 아들을  두고

학비를 댈 수 없는 구차한 집 살림에 긴 한숨을 쉬며

- 저 애는 집일이나 착실히 시키자고.....


어머니여 ! 나는 그날밤 잠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그것은 어머니의 말못할 괴로움을

아들의 마음으로 아파하며

철없이 부려오던 이 어리광을 후회하는 마음에서였겠습니까


내 눈비를 가리지 않고 나무를 해서라도

늘그막에나마 어머니를 마음 고생 없이 모시고 싶은

그런 즐거운 생각에서였겠습니까...


아 그러니 지금은 철이 들어 어머니를 모시게 되었건만

어머니여, 어찌하여 지금 내 곁에 없습니까

내가 사는 집, 내가 쓰는 모든 것

내가 먹는 하루 세끼 더운밥이

어찌하여 다만 나의 것으로만 되어야 합니까

아침저녁 다니는 눈 덮인 가로수길


꽃 전등 밝은 명절의 밤

새벽을 기다려 온 조국이 잠을 모르던 선거의 전야와

광장에 흐르는 시위의 물결

만세의 환호성

울리는 노랫소리

춤추는 아이들

햇빛 밝은 조국의 하늘과 땅이

어찌하여 이 불초한 아들의 것으로만 되어야 합니까


나의 마음은 그때마다

어머니를 부르며 부르며

저 행복한 물결 속을 헤매었습니다

그러나 부르는 소리는


환호의 꽃보라 속에 묻혀버리고

어머니는 여전히 남해 기슭, 비린내나는 바닷가에서

바스라기를 주우며 바다 풀을 건지며

발목에 짠물이 잠기는 그 기슭을 따라

멀리 멀리 가고만 있었습니다.


3


새날이 밝아 옵니다

거리에서는 다섯 시 방송이 울립니다

이 아들이 밤새워 부르는 이 목소리

어머니는 듣고나 계시온지....


아, 마지막으로 아들의 이름을 불러보며

이미 가버린 어머니를

이렇듯 헛되이 붙잡고 이 밤을 새운 것은 아니옵니까


날이 갈수록

행복에 겨운 이 한 가슴이 차고 넘칠수록


어머니를 위하여 남기어 놓은

마음 한구석이 가슴에 아프도록 저미어 옵니다

이 허전한 마음의 한구석을


과연 무엇으로 채울 수 있단 말입니까

땅이여, 바다여, 무한의 하늘이여

무변광대한 이 세상의 그 무엇이

과연 나의 빈 가슴을 채워줄 수 있단 말입니까

아아, 그것은 하늘과 땅이 부딪치는

백주의 번개로도 우레로도 채울 수 없으리라

통일되어 내 고향에 돌아갈 대

어머니여, 어머니의 가슴에 안기는 순간의

내 가슴에 차고 넘칠 그 크나큰 감격도

순간에 나의 가슴을 다 채워주지는 못할 것입니다


아, 메밀꽃 하얗게 핀 고향의 밭머리

가물거리던 올이 굵은 그 머리수건이여

어머니를 찾는 아들의 부름에

<왜야-> 나직이 대답하시던 정에 어린 고향의 사투리여


다시금 느껴보고 싶어라 어머니여

어린 시절 여름날에 강변에서

나의 몸을 씻어주시던 그 손길을....


바치렵니다

나의 힘도, 나의 슬기도

나의 심장, 나의 숨결, 나의 목숨도

통일의 그날을 안아올 그 길 우에 바치오리다


기다리시라, 살아 계시라

그러면 내 기어이 달려가리라

대나무 우거진 그 오솔길에서 어머니 품에 안기리라


어머니 머리 우에 동이 트리다

대숲은 세차게 설레이고

온 천지는 눈부신 햇발로 덮이리다

아, 그날을 믿으며

어머니여, 그날까지 굳세게 살아갑시다.

                                 1964            


 

 

 

아, 나의 어머니 

* 이 시는 나의 동생 오영재가 1992년 어머니가 살아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시를 써서 [통일예술:제2집]에 발표한 것이다. 통일예술은 미주 민족문화 예술인협회가 남북한 민족문학작가들의 공동작품을 모아 펴낸 잡지로 미국 로스앤젤리스에서 발간한 것이다. 제2집으로 잡지는 종간되었다.

      

<련시>


1. 고맙습니다.    

             

 

생존해 계시다니

생존해 계시다니

팔순이 다 된 그 나이까지

오늘도 어머님이 생존해 계시다니

                 

그것은

캄캄한 밤중에

문득 솟아 오른 햇님입니다.

한꺼번에 가슴에 차고 넘치며

쏟아지는 기쁨의 소나기입니다.


그 기쁨 천근으로 몸에 실려

그만 쓸어져 웁니다.

목놓아 이 아들은 울고 웁니다.

땅에 엎드려 넋을 잃고

자꾸만 큰절을 합니다. ....


어머님을 이날까지

지켜준 것은

하나님의 자비도 아닙니다.

세월의 인정도 아닙니다.


그것은 이 아들을 다시 안아보기 전에는

차마 눈을 감으실 수 없어

이날까지 세상에 굿굿이 머리 들고 계시는

어머니의 그 믿음입니다.

그 믿음 앞에

내 큰절을 올립니다.


어머니, 고맙습니다.

어머니여, 고맙습니다.


 

  2. 아들의 심정


한해 한해 더해간

어머니 나이

이 내 가슴 속에

아픈 칼끝으로

새기며 흘러간 일흔 아홉 그 나이


 사흘이 멀다하게

 꿈에 보이는 어머니

 이제껏 살아 계시리라

 차마 믿을 수 없어

 그런 날이면 온종일 울적한 심사


 이 아들에게 기울이는

 그 사랑의 힘으로

 어머님은 이날까지 생존해 계시는데

 어머님을 믿는

 자식의 마음은 모자라

 물리칠길 없는 의혹과 불안 속에

 이내 생각 헤매고만 있었으니

 어머님, 용서하십시오


3. 부르다만 그 이름


   한밤중에 일어나

  불을 켜고

  다시 보는 어머니 얼굴

  미주를 에돌아

  나에게 온 사진


  어머니 없는

  자식이 없건만

  너무도 오랜 세월이 헝클어버린 생각

  나에게도 어머니가 있었던가

  남들처럼 내게도

  정말 어머니가 있었던가


  열 여섯, 집을 떠나

  쉰이 퍽 넘을 때까지

  대답해 줄 어머니가 곁에 없어

  단 한번도 불러보지 못한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태어나 젖을 물며

  제일 먼저 배운 말이건만

 

  너무도 일찍이 헤어져버린 탓에

  부르다만 그 이름

  세상에 귀중한

  어머니란 말을 잃고

  그 말 앞에선 벙어리가 되어버린 이 자식

 

  40년만에

  이 벙어리가 입을 엽니다.

  어머니의 사진을 앞에 놓고

 

  엄마!

  어무니!



 

4. 사진을 또 보며


   어머니의 눈을 봅니다.

   바라보면 정이 흘러

   내 마음과 하나로 되어버린

   그 눈을


   어머니의 손을 봅니다.

   쓸어주면 따스해

   내 살과 하나 되어버린

   그 손을


   어머니의 가슴을 봅니다.

   얼굴을 묻으면 부드러워

   내 몸에 하나로 되어버린

   그 젖가슴을


   긴 세월

   마음에 움켜쥐고 온

   그 눈

   그 손

   그 가슴


   그 누가 나에게서

   어머니를 빼앗을 수 있었단 말인가

 

   분렬 세력이 아무리 장벽을 높이 쌓아도

   결코 갈라놓을 수 없는

   어머니여

   어머니와 나는

   어제도 오늘도 영원히 하나입니다.


 

 

5. 목소리


    로스앤젤레스와 대전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영희 회장과 어머니가 주고받은 전화

    고맙게도 나에게 보내준

    그 녹음테이프를 들며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귀에 익다하기엔

    너무도 그 목소리 삭막해

    다시 또 다시 또 듣노라면

    멀리 흘러간 나날들을 되살려 주며

    그날에 울리던

    어머니 목소리


    눈오는 창가에서

    나를 업고 서성이며

    나직이 자장가를 불러주시던

    그 목소리


    내 홀로 밤길 걸어 집으로 올 때

    어둠 속, 저쪽에서 나를 찾던 목소리

          

    생일 상 차려놓고

    시루떡 냄새를 몸에 풍기며

    <<영재야, 일어나가라>>

    나를 깨우던 그 목소리


    어둑한 세월의 장막을 뚫고

    울려오는 목소리

    멀리 흘러 가버린

    내 유년시절과 소년 시절을

    싣고 오는 소리


    여닫던 고향집의 문소리와

    아침, 저녁 확독에 보리쌀 갈던 소리

    연기 피는 아궁이 앞에서 짜내시던 그 눈물과

    동백기름 내음새를

    싣고오는 소리


    애써 더듬어서

    드디어 찾아낸

    어머니의 귀에 익은 목소리

    이제는 내 한평생에 다시는 지워질거냐

 

    더는 갈라져 살자말자

    목매어 나를 부르는

    어머니 목소리

    통일의 햇님 안고

    어서오라, 어미 품으로

    어서오라, 어미 품으로

    나를 부르는

    아, 어머니 목소리 !


 

  6. 늙지 마시라.

            

     늙지 마시라.

     더 늙지 마시라, 어머니여

     세월아, 가지 말라

     통일되어

     우리 만나는 그날까지라도


     이날까지 늙으신 것만도

     이 가슴이 아픈데

     세월아, 섰거라

     통일되어

     우리 만나는 그날까지라도


     너 기어이 가야만 한다면

     어머니 앞으로 흐르는 세월을

     나에게 다오

     내 어머니 몫까지

     한 해에 두 살씩 먹으리


     검은빛 한 오리 없이

     내 백발 서둘러 온대도

     어린 날의 그 때처럼

 

    어머니 품에 얼굴을 묻을 수 있다면

    그 다음엔

    그 다음엔

    내 죽어도 유한이 없으리니

    어머니 찾아가는 통일의 그 길에선

    가시밭에 피 흘러도 아프지 않으리

 

    어머니여

    더 늙지 마시라.

    세월아, 가지 말라

    통일되어

    우리 서로 만나는 그날까지라도

                 

 

 

 

추모곡

 

 

<련시>


1.무정


    가셨단 말입니까

    정년 가셨단 말입니까

    아닙니다, 어머니 어머니!

    나는 그 비보를 믿고 싶지 않습니다


    너희들을 만날 때까지

    꼭 살아 있겠다고 하셨는데....

    너의 작품, 너의 사진, 편지를 보는 것이

    일과이고 락이라 하시며

    몸도 건강하고 기분도 좋다고 하셨는데...


    이 약속을 어기실 어머니가 아닌데

    그 약속을 안 믿을 아들이 아닌데

    아, 약속도 믿음도

    세월을 이겨낼 수 없었단 말입니까


    리별이 너무도 길었습니다.

    분렬이 너무도 모질었습니다. 무정했습니다.


                                               

2. 슬픔

                    

    차라리 몰랐더라면

    차라리 아들이 죽은 줄로 생각해 버리셨다면,

    속고통 그리도 크시었으랴


    통일이 되면 아들을 만나

    불러보고 안아보고 만져보고 싶어

    그날을 기다리다가 기다리다가 기다리다가

    더는 못 기다리셨습니까 어머니


    그리워 눈물도 많이 흘리시어서

    그리워 밤마다 뜬눈으로 새우시어서

    꿈마다 대전에서 평양까지 오가시느라 몸이 지쳐서...

                     

    그래서 더 일찍 가셨습니까.

    아, 이제는 이 세상에 계시지 않은 어머니 나의 엄마!

    그래서 나는 더 서럽습니다. 곽앵순 엄마!



 

3. 사랑


    한해에 두 살씩 어머니 나이까지 내가 먹겠으니

    어머니는 더 늙지 마시라고 시를 써 보냈더니

    어머니는 편지에 썼습니다.

    <<네가 건강해야 가족이 건강하고 또 혈육이 서로 만

    날 때 건강해야 하니까 한해에 두 살씩 엄마 나이까지

    먹지 말고 네 나이만 먹고 늙지 말아라>>


    세월에 자비가 없어

    사람의 부탁을 들어줄 리 없건만

    사연이 너무 간절해서

    만약에 기적이 생겨

    어머니 앞에 흐르기를 멈추려 했던들

    어머니는 마다 하셨으리

    마다하시며, 마다하시며

    오히려 아들이 더 늙지 않게

    이 아들 앞에서 멈춰달라 세월에 부탁했으리


    그래서 아들 몫까지

    한해에 두 살씩 어머니 잡수시어

    그리도 일찍이 가셨습니까

    아, 아, 어머니!


4. 기어이 안기고 싶어


    머리맡에서 어머니의 림종을 지켜드린 형님이여,

    동생들이여

    어머니께서 눈을 감으시기 전에

    제 이름을 부르지 않습디까

    제 사진 보고싶다 하시지 않습디까

    제 목소리를 듣고 싶다 하시며

    주름 깊은 눈가에 이슬이 맺히지 않습디까


    아, 사람들이 바라온 대로

    죽어서 가는 다른 세상이 있고

    어머니가 그 세상에서 다시 살게 되신다면

    내 어머니 간 길을 찾아가리다

    아이 적처럼 어머니 품에 기어이 안기고 싶어

    눈물이 아니라 그 웃음을 보고 싶어....


    그 세상엔

    분계선이 없을 것 아닙니까

    콩크리트 장벽도 없을 것 아닙니까



5. 남쪽 하늘


    비보를 받은 날

    제삿날은 아니지만

    따로난 아들, 손자, 며느리 다 불러

    어머니 령전에 절을 드려 명복을 빌었습니다


    아침저녁 바라보던 어머니 사진

    통일되는 그날까지 살아 계십시오

    그렇게 간절히 기원한 그 사진에

    눈물 젖은 손으로 검은 천을 드리웠습니다


    통일되어

    내 남행길에 오르게 될 그날

    십리 밖에서부터

    어머니를 소리쳐 부르며 달려가려 했는데

    이제는 누구를 부르며

    고향집 문을 열어야 합니까


    어머니가 그리울 때마다

    바라보던 남쪽 하늘

    살아 계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그리움의 눈물을 가득 담으시고

    내 눈에 비쳐왔는데

 

 

 

 

      어머니가 비끼던

      그 한쪼각 푸른 하늘마저

      이제는 어머님 안 계시니

      영영 깨어져버리고

      슬픔의 어두운 비구름에서

      눈물의 빗방울만이 쏟아져 내리고 있습니다.


 


  6. 편지


    어머니 보내주신 편지

    그 몇 번 다시 보고 또 읽어본 편지

    정 깊은 그 눈빛이 비치었고

    따스한 손길이 스쳐간 편지

    다심히 마음이 깃들고

    인자한 목소리가 스민 편지


    젖은 볼에 대어도 보고

    가슴에 품어도 봅니다.

    가셨으니

    아, 가셨으니

    이제는 이 편지가 어머니입니다.


7. 그리움이 가기 전에


    어머니 가시니

    그리움도 갑니다

    두고 온 남녘에는

    혈육들이 많아도

    나를 낳아 젖을 먹여 키워주신

    어머니만큼 그리운 이 있었습니까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친척

    단 한 번이라도 정을 나누어보지 못한

    그런 친척이야 남이나 뭐 다릅니까


한 지붕 아래서

    한 이불을 덮고 자며

    어린 시절 정을 나눈 혈육들이

    하나 둘 가기 전에

    그리움이 가기 전에

    북남의 겨레들이여

    통일합시다

    통일합시다

    하루면 가는 가까운 곳에서

     서로 멀리 그리워만 하지 말고

     사상도 기지고 있는 그대로

     제도도 가지고 있는 그대로

     북과 남이 합쳐

     하나의 민주련방을 이룩하여

     통일합시다

     그리움이 가시기 전에

     그리움이 가시기 전에


                             1995년 9월


소망시

우리의 소원은 통일


 

1. 자리가 비어 있구나


* 이 시는 1989년 3월 27 남북 작가회담 예비회담 대표로 참석했다가 회담이 무산되어 판문점에서 돌아가면서 쓴 것. 현재 민족문화 예술인 협회 사무실에 걸려 있음.



고은 신경림 백락청 현기영 김진경

그리고 간절히 우리를 청해 놓고

오지 못하는 사람들

하나 우리는 나무라지 않으마

그것을 아무라기에는 가슴이 너무도 아프고

터지는 듯 분하구나

지금쯤

어느 저지선을 헤치느라

온몬이 찍기어 피를 흘리고 있느냐

애국의 뜨거운 가슴을 열고

그들이 달려오는 길을

그 누가 가로 막았느냐

아 분계선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오가는 바람아

떠가는 흰 구름아

우리의 이 목소리를 실어가다오

그리고 전해 다오

우늘은 우리 돌아서 가지만


마음만은 여기 판문점

이 회담장의 책상 위에 얹어놓고

간다고

정의와 량심의 필봉을 높이 들고

통일의 길을 함께 갈

그 날을 기어이 함께 찾자고

바람아 구름아 전해다오


 


 

 

 

 

2.  다시는 헤여지지 맙시다


* 이 시는 한겨레신문 200년 8월 16일 문화면에 게제된 시이다.       


만나니 눈물입니다

다섯 번이나 강산을 갈아엎은

50년의 기나긴 세웕이 나에게 묻습니다.

너에게도 정녕 혈육이 있었던가


아, 혈육입니다

다같이 한 어머니의 몸에서 태어나

한 지붕 아래 한 뜨락 우에서

다같이 아버지, 어머니의 애무를 받으며 자라난 혈육입니다.


뒷동산 동백나무 우에 올라

밀짚대로 꽃 속의 꿀을 함께 빨아먹던

추억 속에 떠오르는 어린 날의 그 얼굴들

눈오는 겨울밤 한 이불 밑에서 서로 껴안고

푸른 하늘 은하수를 부르던 혈육입니다.


정이란 그렇게도 모질고 짓궂어 헤여져 기나긴 세월

때없이 맺히는 눈물 속에 조용히 불러보는 이름들

승재형 형재동생 진이 홍이 필숙아 영숙아


이렇게 만났으니 다시는 헤여지지 맙시다

평양에서 서울까지 한시간도 못되게

그렇게도 쉽게 온 길을 어찌하여 50년 동안이나

찾으며 부르며 가슴을 말리우며 헤매였습니까


다시는 다시는

이 수난의 력사, 고통의 력사, 피눈물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맙시다

또다시 되풀이된다면 혈육들이 가슴이 터져 죽습니다 민족이 죽습니다


반세기 맺혔던 마음의 응어리도

한순간의 만남으로 다 풀리는 그것이 혈육입니다

그것이 민족입니다

 

정견과 신앙이 다르면 통일은 못합니까

만나서 얼싸 안으니 그 뜨거움도 같고 눈물도 같은데

그것이 통일이 아닙니까


우리가 우리기 남은 우리가 아닙니다

우리 힘으로 우리 손으로 통일합시다

그 누가 이날까지 우리의 이 길고 긴 아픔을 알아주었습니까

누가 우리에게 통일을 선사했습니까


누가 우리의 통일을 바라기나 했습니까


다시는 헤여지지 맙시다 형제들이여 동포들이여

영원히 리별이란 것을 모르고

7천만이 다 함께 모여 살집을 지읍시다 우리의 집을 지읍시다

고려민주연방공화국이란 큰집을 세웁시다


오릉의 이 만남의 길을 통일의 길로 이어갑시다

북과 남 두 수뇌분들이 힘겹게 솟구쳐 주신 통일의 그 샘줄기가

순조로이 흐르도록 물길을 크게 내여 갑시다


아, 7천만이 바라고 바라던 민족의 새장이 펼쳐졌습니다

위대한 력사가 흐르고 있습니다

반목과 대결의 얼음장을 녹이며 막혔던 분렬의 장벽을 부시며

화해와 협력, 대단결의 대하가 흐릅니다 통일의 대하가 흐릅니다


이밤이 가고 또 한밤이 가면

우리는 돌아갑니다


그러나 헤여질 때 형제들이여 울지 맙시다

다시는 살아서 못오는 그런 영원한 리별이 아닙니다


서로가 편지하고 서로가 전화하고

서로가 자유로이 오고 갈 통일을 한시바삐 앞당깁시다


통일만이 살길입니다 더 늙기 전에

우리가 어린 날의 그때처럼

한지붕 밑에서 리별없이 살아봅시다

우리 다시는 헤여지지 맙시다 다시는 헤여지지 맙시다

 


3. 만나고 싶었습니다.


-2000년 8월 17일 오후 8시 하얏트호텔 만찬장에서

시인 고은․오영재 합작시-


만나고 샆었습니다

만나고 샆었습니다

우리는 손수건 백장을 가지고 있어야 할 민족입니다

우리는 연사흘 울음바다였습니다

엉엉 울어

멍든 가슴을 쏟아야 했습니다


이제야 우리는 만났습니다

이제야 만나

뜨거운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이렇게 만나게 될 것을

몇 10년 동안 서로 장벽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의 말로 각각 달을 노래했고

한낮의 태양을 노래했습니다

우리는 두 시인

쓰라린 날들 모국어의 육친입니다


젊은 날을 온통 분단의 세월로 보내면서

그 철천지 원수를 갈아엎고야 말

바람찬 깃발이기를 열망한

남의 시인입니다

북의 시인입니다


오늘밤 우리의 만남이

어찌 우리만의 것입니까

이로부터 수많은 동족들의 눈물방울 빛나는

그 핏줄 타는 만남에 도달하기 위하여

우리의 만남은 작은 씨앗입니다


북의 시인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시로써 통일로 나아갑시다

남의 시인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통일로써 새로운 시를 씁시다.


(아 집으로 초대하여 밤 이슥도록

술잔에 얼굴 붉어진 기쁨이었으면

더할 나위가 없겠습니다)


그날을 기약합시다

그날을 기약하여 그날이 오고 있습니다


이제야 만나고 싶었던 시와 시인이

만났습니다

만났습니다

서로 주름진 얼굴 마주보며 밤이 깊어갑니다

 

 

이북의 오영재 시인이 2011년 10월 23일 사망했다.

그가 남기고 간 2남 2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