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기 황현산 트윗글 모음 ‘내가 모르는…’
인문적 통찰, 어른의 지혜, 정치 염원 담겨
슬픔과 분노 속에서도 유머감각 발휘
인문적 통찰, 어른의 지혜, 정치 염원 담겨
슬픔과 분노 속에서도 유머감각 발휘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황현산 지음/난다·2만5000원
황현산 지음/난다·2만5000원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가 젊은 문인들과 독자들 사이에 팬덤을 형성하면서 황현산은 ‘밤의 선생’이라는 애정 어린 별칭으로 불렸다. 그런데 그는 또한 ‘낮의 트친’이기도 했다. 평론과 번역, 강연 등으로 바쁜 와중에도 그는 짬 나는 대로 트위터에 글을 올렸고, 리트윗과 댓글 달기에도 게으르지 않았다. 그의 1주기(8월8일)에 맞춰 나온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는 황현산이 2014년 11월8일부터 2018년 6월25일까지 트위터에 쓴 글을 모은 책이다.
트위터는 140자로 분량이 제한되어 있다. 길고 논리적인 글보다는 짧고 감각적인 글에 적합하다. 질 낮은 댓글도 각오해야 한다. 황현산이 일흔이라는 늦은 나이에 트위터에 입문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기대와 우려를 함께 나타냈던 것이 그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트위터의 세계에 멋지게 안착했을 뿐만 아니라, 책만큼이나 트위터에서도 열성 독자를 확보했다. 36만여 팔로워가 그를 입증한다.
황현산의 트위터 글들은 인문적 통찰과 어른의 지혜 그리고 좋은 세상을 향한 염원을 두드러진 특징으로 삼는다. 불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 번역가이기도 했던 그가 언어와 문학과 인간에 관해 평생 궁구해 온 학문적 온축, 텍스트의 안과 밖을 넘나들며 보고 겪은 것들로부터 길어올린 육화된 지혜, 미학과 정치를 아우르고자 하는 열정이 아포리즘에 가까운 짧은 글들에 담겼다. 여기에다가 정신의 젊음을 보여주는 유연성과 유머감각이 곁들여져 읽는 이를 즐겁게 한다.
지난해 8월8일 숨진 문학평론가 황현산의 1주기를 맞아 그가 트위터에 쓴 글들이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는 책으로 묶여 나왔다. 절판됐던 평론집 <잘 표현된 불행>도 함께 나왔다. 사진은 2013년 8월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던 모습.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서구 인문학이 번역으로 시작하기도 했지만, 사실 번역에 인문학의 핵심이 걸려 있다. 인습적 사고의 상투적 표현, 인종적 감정에 의지해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현혹하는 말에 번역은 일종의 시험대와 같다.”(2014. 12. 21.)
그 자신 <초현실주의 선언> <시집>(말라르메) <악의 꽃> 등의 번역자인 황현산은 번역의 가치와 역할에 대한 자부심 섞인 믿음을 감추지 않는다. 트윗을 시작한 직후에 올린 글에서 그는 “글쓰기 싫으면 번역을” 한다고 밝혔는데, 그렇다고 해서 번역을 여기(餘技)로 여기거나 함부로 해치우지 않았다. 오히려 번역이야말로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고 보람 있는 일이라고 그는 말한 바 있다. 번역과 인문학의 수단인 말과 글에 대한 관심은 책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글의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는 말을 성찰한다는 것이다”(2015. 3. 2.), “정말이지 인문학은 무슨 말을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해서는 안 될 말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하는 것이다”(2015. 7. 7.)처럼 ‘자유막말주의자’들이 새겨들어야 할 금언과 함께, 구두점과 띄어쓰기, 세미콜론 등에 관한 견해들도 흥미롭다.
“나 죽은 후에 미래가 어찌되건 무슨 상관인가. 그러나 그 미래를 말하는 나는 살아 있지 않은가. 좋은 미래가 나 죽은 다음에야 온다고 해도 좋은 미래에 관해 꿈꾸고 말하는 것은 지금 나의 일이다.”(2015. 9. 14.) “자유롭고 평등하고 건강한 미래에 대한 소망도 예술적 재능과 같다.”(2016. 4. 12.)
2013년 8월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던 중 활짝 웃는 황현산 전 고려대 명예교수. 김정효 기자
황현산의 트위터 시절은 “무식하고 편협한 인간”이 권좌에 앉아 있던 암흑기에서 촛불 혁명을 거쳐 새 정부의 탄생을 목격한 격동기였다. “이 중세의 암흑은 언제 걷힐까” 고통스러워하던 그는 “남은 것은 시민저항밖에 없다”며 촛불 혁명을 예견하기에 이른다. 사실 그는 암흑기를 고통스럽게 견디면서도 결코 희망을 놓지 않았다. 유신 시대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젊은 문인의 우려에 그는 답한다. “애들이 자라는 것을 보면, 한 번 일어선 아이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 기지 않는다. 무릎이 자주 다치긴 하지만.”(2014. 11. 15.)
이런 근본적 낙관 덕분일 것이다, 그가 슬픔과 분노를 웃음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문장들을 보라. “전철에서건 민주 사회에서건 무임승차자들이 제일 큰소리를 친다.”(2015. 11. 20.) “아베가 박근혜 정부를 상대로 위안부 협상을 한 것은 노망한 늙은이에게 사탕 사주며 집 열쇠 가져오라고 꼬드긴 것과 같다.”(2017. 1.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