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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골산 칼럼 제4013호 / 신실한 벗이 필요한 때입니다 [홍종찬 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9. 8. 25. 05:59

창골산 칼럼 제4013/ 신실한 벗이 필요한 때입니다.|전멜………창골산☆칼럼

봉서방* | 조회 138 |추천 3 |2019.08.22. 03:40 http://cafe.daum.net/cgsbong/1SQR/4333 

창골산 칼럼 제4013호 / 신실한 벗이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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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실한 벗이 필요한 때입니다.

 

 


 



홍종찬 목사


우정(友情)에 관한 성어(成語)를 찾아보았더니 60여개나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죽마교우(竹馬交友), 죽마구우(竹馬舊友), 죽마지교(竹馬之交), 죽마지우(竹馬之友), 죽마지호(竹馬之好), 그리고 우리가 자주 쓰는 죽마고우(竹馬故友)가 있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죽마(竹馬)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죽마(竹馬)란 두 개의 대막대기에 각각 적당한 높이에 발걸이를 붙여 그곳에 발을 올리고 손은 대나무의 위쪽을 잡고 걸어 다니는 일종의 말 타기 놀이기구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사전은 죽마고우(竹馬故友)를 “대나무로 만든 말을 타고 놀던 벗이라는 뜻으로, 어릴 때부터 같이 놀며 자란 친한 벗을 이르는 말”이라 했습니다. 
 

기원전 4세기 시칠리 시라쿠사(Siracusa)에 디오니시우스 1세에게는 사랑하는 왕비와 신뢰하는 일등 기사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왕비와 그 친구가 사랑의 도피행각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 충격으로 왕은 성격이 점점 난폭해 졌고 아무도 믿지 않게 되었으며, 주변 사람들을 배신자, 사기꾼으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조금만 거스르면 즉시 감옥에 가두는 공포정치를 실시했습니다. 나라는 점점 혼란의 늪으로 빠져 들었습니다. 
 

그때에 피타고라스학파의 철학자 다몬(damon, 다이몬)과 피디아스(pythias)라는 매우 절친한 친구가 있었습니다(이 학파는 ‘플라톤’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음). 어느 날 피디아스가 “어떤 누구라도 다른 누구에게 절대적 권력을 행사할 수 없고, 만약 그런 절대 권력을 행사하는 왕이 있다면 불공정한 폭군이다.”고 말했습니다. 디오니시우스 1세는 당장 그를 체포해서 사형선고를 내리고 말았습니다.
 

어이없이 죽게 된 피디아스는 디오니시우스에게 사랑하는 가족에게 고별이라도 할 수 있도록 선처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디오니시우스는 “네가 약속을 지킬지 안 지킬지를 내가 어찌 알겠느냐? 너는 나를 속여 목숨을 구하려는 것뿐이다.”고 했습니다. 그 때에 다몬이라는 친구가 “왕이시여! 제 친구 피아디스 대신 저를 감옥에 가두시어, 그가 고향에 돌아가 마지막 일들을 정리하고 친지들에게 작별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저는 피아디스가 약속한 대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결코 약속을 어긴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가 왕께서 정하신 날짜에 이곳에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 때는 제가 그를 대신해 죽겠습니다.”고 했습니다. 디오니시우스는 피디아스의 요청을 허락하고 대신 다몬을 감옥에 가두도록 명했습니다. 
 

사형집행 날짜가 다가오는 데도 피디아스로부터의 소식은 감감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다몬은 여전히 친구의 명예와 신의를 믿고 신뢰했습니다. 그는 “만약 피디아스가 제 시간 안에 돌아오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의 잘못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그의 의지에 저항하는 어떤 방해물들 때문일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마침내 사형집행일이 되어 다몬은 사형장으로 끌려 나갔습니다. 그는 여전히 변함없는 믿음으로 사랑하는 친구를 위해 죽는 것이 조금도 슬프거나 억울하지 않았습니다. 사형이 집행되려는 바로 그 순간 피디아스가 문에 도착했습니다. 피디아스는 폭풍으로 남파를 당해 늦었고, 너무 늦을까 두려웠다면서 제 시간에 도착하게 된 것을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다몬에게 정중히 경의를 표한 후 간수에게 자기 몸을 맡겼습니다. 
 

디오니시우스는 폭군이었지만 다른 사람의 미덕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의 악인은 아니었습니다. 다몬과 피디아스처럼 서로를 사랑하고 신뢰하는 사람들은 부당하게 고통당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두 사람을 풀어 주면서 “내가 이와 같은 친구를 얻을 수만 있다면 내 전 재산이라도 내놓겠다.”(I  would give all my wealth to have a friend like that.)고 말했습니다. 
 

성경에는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이 있습니다. 이들의 우정은 사무엘상 20장에 잘 나타나 있는데 생명을 함께 나눈 형제 같은 사이였습니다. “다윗에 대한 요나단의 사랑이 그를 다시 맹세하게 하였으니 이는 자기 생명을 사랑함 같이 그를 사랑함이었더라”(삼상20:17) 그리고 요나단이 죽었을 때 다윗은 그를 형이라 불렀습니다.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더하였도다”(삼하1:26). 
 

그리고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작품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안토니오와 바사니오의 우정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서애(西厓) 유성룡과 충무공(忠武公) 이순신의 우국충정(憂國衷情)이 있습니다. 이 모든 우정을 죽마고우(竹馬故友)라는 한 단어에 담을 수 없어서 60여 가지의 성어를 지어낸 것 같습니다. 참으로 신실한 벗이 필요한 때입니다. 출처/ 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꼭 지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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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 자


홍종찬목사(사랑에빚진자)

서울 은평구 갈현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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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골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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