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미국 록펠러재단과 질병과학자들은 지구에서 일부 감염병을 완전히 몰아낸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엄청난 자금과 노력을 쏟아부은 황열이나 말라리아 박멸 계획은 실패였다. 천연두는 달랐다. 1988년 세계보건기구(WHO)가 국제적 박멸운동을 시작한 소아마비도 마찬가지다.
운명을 가른 것은 ‘인수공통감염병’ 여부였다. 말 그대로 동물과 인간이 모두 걸리는, 주로 동물의 바이러스·세균·진균 등 병원체가 인간한테 침범해 생기는 병이다. 인간에만 감염하는 천연두와 소아마비는 백신으로 면역이 생긴 뒤 병원체가 완전소멸했지만, 인수공통감염병은 인류에겐 낯선 ‘미지의 세계’다. 감염 경로를 밝히기도 어렵거니와 동물 몸속에서 계속 변이를 일으키기 때문이다.(데이비드 콰먼,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
1980년대 미국발 ‘동성애자 마녀사냥’을 퍼뜨렸던 에이즈 바이러스의 강력한 균주가 20세기 초 아프리카 카메룬 남동부에서 한 마리의 침팬지로부터 한 명의 인간에게 ‘종간 전파’된 것이란 사실은 2000년대 후반에야 밝혀졌다. 조류독감, 사스, 에볼라, 니파, 메르스, 최근의 신종 코로나를 포함해 현재 알려진 감염병의 60%가 인수공통감염병이다. 병원체들 가운데서도 특히 너무 작고 단순해 빨리 진화하고 옮겨다니기 쉬운 바이러스가 가장 큰 문제다. <아에프페>(AFP) 통신에 따르면, ‘글로벌 바이롬 프로젝트’는 자연계에 미지의 바이러스가 170만 종류가 존재하고 그 절반 정도는 인간에게 유해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는 야생동물의 서식지를 파괴하는 벌목, 도로 건설, 도시 확장 같은 인류 활동의 축적이 임계점에 달했다는 경고음일지 모른다. 인간은 지구상 그 어떤 동물보다 단기간에 개체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대발생’(outbreak) 종이기도 하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는 “중국의 식습관과 보건위생, 초동대응 실패가 최근 사태의 원인이지만, 사실 요즘엔 파리·런던 등에 ‘부시미트’ 상점이 늘어나는 등 서구에서도 야생동물 섭취가 ‘진귀한 경험’으로 인기를 끈다. 그만큼 포획과 유통이 쉽고 흔해졌다는 이야기”라며 “결국 인간의 생태계 파괴 문제”라고 말했다. 국경과 대륙을 넘나드는 대규모 왕래의 일상화와 가축들의 밀집사육 등도 바이러스가 쉽게 옮아갈 기회를 넓혔다. 앞으로 감염병의 주요 경향은 인수공통감염병이고 일상적으로 출몰할 것이라는 데 많은 전문가들 의견이 일치한다. 인류가 부른 생태계의 역습이다.
김영희 논설위원 do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