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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형 “문학상 부조리 창작자 위협…왜 작가가 부끄러워해야 하나”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2. 7. 02:26

윤이형 “문학상 부조리 창작자 위협…왜 작가가 부끄러워해야 하나”

등록 :2020-02-06 05:00수정 :2020-02-06 09:30

 

정여울 작가의 윤이형 작가 이메일 인터뷰

이상문학상 사태 항의하며 절필 선언한 윤 작가
“정말 힘들게 쓴 작품 잃었다는 느낌 절망적
진심 훼손되어 영영 어둠 속에 갇혀버린 듯”

“2020년대 사는 작가인데 아직도 관행은 7080년대
내 노동 성과가 부조리에 얽히다니 수치스럽다”

“원고료부터 정책·제도까지 개인이 싸움 도맡아
‘성폭력’ 맞서 싸운 여성들 상처와 무력감 얻어”


지난달 4일 소설가 김금희, 최은영, 이기호가 불공정 관행을 지적하며 우수상 수상을 거부해 불거진 ‘이상문학상 사태’는 지난해 이상문학상 대상을 받은 소설가 윤이형이 31일 자신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작가활동 중단을 선언하면서 정점을 찍었다. 독자들은 충격에 빠졌고 권여선·박상영·황정은·장류진 등 50여명의 동료 작가들도 문학사상 청탁 거부 등 보이콧에 동참했다. 4일 문학사상은 뒤늦게 제도개선을 약속하고 사과했지만 작가들의 분노와 허탈감은 여전하다. 과연 무엇이 작가를 절망에 빠뜨렸나? 작가를 잃을 수 없다는 절박감 속에 정여울 작가가 윤 작가를 이메일로 만났다.

내 안에 이토록 많은 울분이 쌓여 있는 줄 몰랐다. 작가로 사는 동안, 원고 마감과 강연에 쫓기며 살아가느라 잊고 있던 슬픔과 분노가 폭발했다. 재작년 ‘문단 내 성폭력과 갑질 청산을 위한 국회 토론회’ 자료를 보면, 원고료와 인세를 제때 지급받지 못하거나 아예 받지 못한 작가들이 수두룩하고, 해묵은 쌀로 원고료를 대신한 출판사도 있다. “문예지 사정이 어렵습니다. 정기구독으로 대체하시려면 계좌번호를 적지 않으셔도 됩니다”라는 원고청탁서를 받고, 작가들은 부담을 느끼며 원고료를 받지 않고 정기구독을 신청하기도 한다. 어느 문예지는 등단 5년 미만의 작가에게는 원고료를 지급하지 않고 있으며, 등단 5~10년, 등단 10~20년 등으로 등급을 정해 원고료에 차등을 둔다. 문단 내 성폭력 가해자가 버젓이 다시 나타나 책을 내고, 출판사의 고위직을 맡고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작가의 저작권은 물론 기본적인 인권조차 지켜지지 않을 때가 있다. 문학사상사는 이상문학상 사태 이후 한 달여의 침묵을 깨고 마침내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사과문에는 미묘한 책임 회피와 성급한 미봉책이 들어있었을 뿐 작가를 향한 진심 어린 존중과 뼈아픈 성찰이 보이지 않았다. 윤이형 작가는 트위터에서 이렇게 말했다. “작가를 이렇게 존재하게 하지 마세요. 곡예사가 아니라고요. 편하게 마음놓고 신뢰하고 격려받게 해주십시오. 제발 부탁드립니다.” 이런 말을 할 때마다, 작가의 심신에 얼마나 커다란 상처가 맺히는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모를 것이다.

김금희 작가도 트위터를 통해 “이번 이상문학상 사태로 작가와 독자들 모두 깊은 상처를 받아야 했”으며 “문학사상사의 사과와 제도개선 의지 표명만으로 단번에 아물 성질의 것은 아니”라고 전했다. 최은영 작가는 문학사상사가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고의적으로 저작권을 갈취하려 했”음을 분명히 지적한다. “의도가 없었다는 식으로 변명하는 것은 사과가 아닙니다”라는 최은영 작가의 문장 속에서는 치유되기 어려운 상처가 스며 있었다. 글을 쓰며 밥을 벌어야 했던 모든 작가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글을 쓰기 위해 이를 악물고 버텨온 부당한 처우들이 개선되지 않는 한, 출판계뿐 아니라 문화예술계 전반에 걸쳐 만연해 있는 창작자에 대한 무시와 편견과 소외가 멈추지 않는 한, 우리의 분노는 계속될 것이다.

이상문학상 사태에 항의하며 절필 선언을 한 윤이형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윤 작가의 심신이 매우 지쳐있는 상태라 부득이하게 서면인터뷰로 진행했다.

윤이형 소설가. <한겨레> 자료사진
윤이형 소설가. <한겨레> 자료사진

정여울: 안녕하세요. 윤이형 작가님. 먼저 많은 독자들이 윤이형 작가님의 활동중단 선언에 충격과 상실감을 느끼고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작가님께서 소설가로서의 활동을 중단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를 알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왜 아무런 잘못이 없는 윤이형 작가님이 이런 힘겨운 결정을 해야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윤이형: 김금희 작가님의 이상문학상에 대한 문제제기를 보고 문학사상사에 문의를 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상의 운영에 너무도 비정상적인 부분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정상이었는지도 모르겠고, 제가 모르는 곳에서 다른 사람들의 권리 침해가 일어난 거잖아요. 우수상 수상자들이 문제가 있었는데도 대상 수상자를 위해 침묵해야 했던 건 아닌가 싶었어요. 제 입장문에 적힌 상황을 보시면 너무 이상하지 않나요? 저는 너무 이상했습니다.

어째서 문학상 하나 받은 거 가지고 그렇게 절망을 하느냐고 하시는데, 상금도 상금이지만 이 상에 따라오는 부수적 효과가 생각보다 상당히 커요. 여전히 많은 독자들이 아직도 이 상이 굉장히 훌륭한 상이라고 신뢰하고 수상작품집은 꼭 읽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고등학교 문학동아리에서 가르치고요. 작년 한 해 아주 많은 곳에서 이 상의 이름을 얘기하며 저에게 강연이나 이야기를 요청하셨고 저는 거기에 응했어요. 이 상의 수상자였기 때문에 많은 책의 추천사를 썼고 온갖 곳에 언급이 되었어요. 그런데 그것들이 하나하나 다 떠오르는 거예요. 저를 보고 계셨던 독자분들, 특히 학생들의 눈빛이요. 너무 부끄러웠어요.

제43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표지.
제43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표지.

사실은 다른 어떤 이유보다도 제 작품 <그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고양이>를 잃어버렸다는 느낌이 가장 절망적이었던 것 같아요. <구름빵>을 둘러싼 백희나 작가님의 소송 기사를 보는데 제가 이 작품을 되찾을 수 없으리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더라고요. 그 소설은 정말 힘들게 쓴 것이었고 저의 가장 내밀한 부분, 무지개다리를 건너간 제 고양이 두 마리 이야기까지 적은 작품이었어요. 제 진심이 훼손되어 영영 어둠 속에 갇혀버린 느낌이었는데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어요. 제가 아직 쓰지 않은 다른 작품들은 이렇게 되게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원래는 문학사상사 쪽의 공식입장 발표 후에 제가 들은 이야기를 언론에 제보하거나 폭로할 생각이었어요. 절대 사실대로는 말할 것 같지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공격을 받지 않을 수는 없고 제가 지난해 수상자라는 사실 때문에 자격이 문제가 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내놓을 것이 작가 활동 중단밖에 없었습니다. 원래는 그냥 조용히 그만둘 생각이었어요. 동료 작가들이 절망감을 느끼니까요. 그런데 결국 느끼게 했어요. 다른 작가들에게 너무 죄송한데 이제는 죄송하다는 말도 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저의 비공개 SNS에 글을 그만 쓰려 한다는 심정을 적은 글이 뜻하지 않게 기사화 되었고 그것도 이상한 이유들이 기사에 나와 있었어요. 저는 정의로운 사람이 전혀 아닌데 기사들에 그렇게 씌어 있었어요. 더 견딜 수가 없었고 다른 선택지가 없었어요. 다 털어놓는 수밖에요.

정여울: 저는 윤이형 작가님의 입장문을 읽으면서 ‘부당한 일을 당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여러 번 문학계의 옳지 못한 관행, 특히 작가에 대한 부당한 처우나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을 목격하시거나 직접 겪으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어떤 면에서 ‘지치고, 지치고, 지쳤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셨는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윤이형: 그걸 저 혼자 다 말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요. 말하는 게 아직까지도 자유롭지 않은 부분이 많고요. 핵심은 작가들의 노동환경이 너무 열악하다는 거예요. 작가들은 2020년대를 살고 있는데 아직도 1970년대나 80년대 느낌인 관행들이 많아요. 원고료조차 제때 주지 않는 곳이 많은데, 권리마저 빼앗겨야 하고, 내 노동으로 이루어진 성취나 성과에 이런 식의 부조리가 얽히는 일이 상당히 많아요. 출판사 대표가 직원에게 부당행위를 하거나, 폭력과 범죄를 옹호하는 책을 내기도 하고요. 너무 수치스러워서 다 말할 수가 없어요.

문예지에서 그 문예지의 편집인인 가해자의 성폭력을 비판한 시가 수록을 거부당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여전히 문학계의 아주 많은 곳에서 성폭력 가해자들이 드러나지 않고 일하고 있어요. 높은 자리에 앉고 상을 받아가면서요.

이런 일들은 자꾸만 작가가 자신을 의심하게 만들고 지치게 만듭니다. 자긍심을 떨어뜨려요. 아, 여기랑 일한 게 내 잘못이겠지. 내가 힘이 없는 작가라서 여기서 출간을 했는데 그게 내 잘못이구나. 이 상을 받았던 게 내 잘못이구나. 아, 내가 인정과 명예에 눈이 멀었던 건가? 그런데 이미 상금이나 선인세를 받아버렸는데 어떻게 할 방법이 없구나. 이런 생각이 자꾸 떠올라요. 너무 참담하고 끔찍해져요. 작가로서 존중받지 못하는 느낌이 지속적으로 든다고요. 나는 돈에 영혼을 팔아넘긴 게 아닌데, 인정이 너무 절박해서 남의 권리 침해에 동의한 게 아닌데, 자꾸만 그렇게 느끼게 되는 상황이 생겨요. 아니잖아요. 왜 그 부끄러움이 작가 몫인가요? 잘못한 사람들은 따로 있는데요.

김금희 작가님이 처음에 그 계약서를 보고 “참담하다”고 하셨던 심정을 너무 잘 이해해요. 최은영 작가님이 “분별없이 우수상을 받은” 것을 반성하셨을 때 정말 기함하는 줄 알았어요. 작가들에게 왜 자꾸만 이런 말을 하게 만드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작가가 어디까지 조심하고 분별을 해야 해요? 출판사가 저지를 잘못을 작가가 어떻게 미리 알고 분별을 하나요?

정여울: 윤이형 작가님은 트위터에 올린 입장문에서 “지금껏 문학계에서 어떤 문제를 제기했을 때 연루된 작가들의 피해가 제대로 보상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이런 제도와 관행들을 만들어 놓은 것은 윗세대 문학인들인데 피해는 젊은 작가들만 보게 된다. 아무도 작가들의 상처에 대해 보상해주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이 부분에 대해 자세히 말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윤이형: 제 동료 한 명은 시 쓰는 일을 거의 포기하고 예술가 권리를 보호하는 정책을 만들기 위해 3년 넘게 문화체육관광부와 싸우고 있어요. 너무 소수의 작가들에게만 지면과 청탁이 가기 때문에 문예지 말고 다른 플랫폼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계속 나오고 또 젊은 작가들 중심으로 그런 것이 생기고 있고요. 최근에 원고료, 인세, 신인상 상금 조항의 문제점들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분들은 전부 신인작가들, 시인들이에요. 제도를 뜯어고치는 일을 왜 몇몇 개인들과 신인작가들에게 맡겨버리는지 모르겠어요. 당사자들이니까 계속 그들만 해야 하나요? 개인들의 힘만으로는 어려워요. 목소리가 더 큰 분들이 구조를 바로잡아주셔야 합니다. 제발 소진되지 않게 도와주셨으면 좋겠어요.

정여울: 저도 글을 쓰면서 원고료를 제대로 받지 못한 적이 많고, 부당한 계약서 때문에 고통받은 적이 있거든요. 대한민국에서 글을 쓰는 작가들 중에 이런 일을 겪지 않은 행운아가 몇 명이나 될까요. 윤 작가님의 입장문을 읽으면서 마음 아픈 대목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지만, 특히 이 대목에 오랫동안 가슴이 아팠습니다. “열심히 일을 했을 뿐인데 계속 부조리에 얽히게 됩니다. 성과를 기뻐하기는커녕 문제는 없는지 의심을 먼저 해야만 합니다. 저는 곡예를 하는 것처럼 마음 졸이고 두려워하면서 일을 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상태인가요? 저는 더 이상 제가 무엇에 일조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부조리에, 범죄에, 권리 침해에 일조하고 싶지 않습니다.” 왜 가해자는 아무런 책임을지지 않는데, 피해자들이 반성을 하고, 투쟁도 하고, 눈물 흘리고 아파하는 일도 다 도맡아야 하는지, 정말 화가 납니다.

윤이형: 지금 해시태그에 동참해주고 계신 작가들도 다 아무 잘못도 없는데 자신을 아프게 찌르고 자괴감과 수치심을 느끼고 있어요. 해당 출판사에서 출간을 하거나 일을 했던 작가와 저자분들도 그렇고요. 대체 누가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 예상하고 일을 하셨겠어요. 출판사가 이 수치심을 가져가고 사과하고 피해보상과 명예회복을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가슴 속에 너무 큰 상처가 생겼어요. 우리는 우리가 노동을 해서 얻은 성취들이 정당하고 거기에 부조리가 없을 거라는 약속을 원합니다.

정여울: 작가님의 건강을 염려하는 독자들이 많습니다. 트위터에서 계속 투쟁하고 계시는 모습을 보니, 더 많은 에너지를 소진하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는데요. 작가님께서 문학사상의 편집자들과 문학사상에 글을 게재했던 다른 작가들의 안부까지 걱정하시는 뜻도 읽었습니다. 이번 일을 통해서, 단지 작가들을 향한 처우뿐만 아니라 편집자들이나 출판사에 종사하는 많은 분들의 부당한 노동환경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알려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윤이형 작가님께서도 여러 출판사와 일하면서 그런 문제의식을 가지셨던 것 같습니다.

윤이형: 저는 무슨 말을 하면 이렇게 인터뷰도 나오잖아요. 편집자들에겐 전혀 일어나지 않는 일이에요. 출판노동자분들은 상부에 의견 제시를 할 통로도 없고 작가들보다 훨씬 큰 수치심을 느껴가며 일을 하고 계신 경우가 많아요. 너무 기가 막힌 일들이 많은데 자세한 건 트위터에서 ‘출판사 옆 대나무숲’ 계정들을 찾아 들어가 보세요.

정여울: 윤이형 작가님의 입장문을 보면서 또 한 번 놀란 대목이 있었어요. “당장 당일 내로 작가론과 작품론을 써줄 작가와 평론가를 제가 직접 섭외해 청탁을 해야 했습니다. 수상작품집이 1월 20일께에 발간되기 때문에 이 원고들의 마감기한은 겨우 10일 정도였으며, 저 자신은 며칠 내로 수상소감과 문학적 자서전을 쓰고 수상작을 퇴고해야 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급박하게 진행되는 과정이 무리라고 느껴 진행 중 3번이나 이것은 무리라고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하지만 이의가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고, 그 말도 안 되게 짧은 기간동안 모든 분들이 그 중요한 글들을 써내야 했지요. 이런 식의 일처리 방식이 정말 폭력적이고 강압적으로 느껴졌거든요. 작가와 평론가를 ‘글쓰는 기계’로 생각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요. 이런 글을 청탁하고, 구상을 하고, 원고를 쓰려면 최소한 몇 달의 기간이 필요한데, 며칠 동안에 다 써내라고 독촉까지 하다니,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잖아요.

1977년 제1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표지.
1977년 제1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표지.

윤이형: 아마 지금까지 쭉 그랬을 거예요. 수상 소식을 듣고 기뻐할 겨를도 없이 문서에 사인을 하고 곧바로 거의 매일 원고 독촉을 받았어요. 결국 작품론을 써주신 평론가분께 제가 나중에 사과드릴 수밖에 없었어요. 정말 비상식적인 일정이었거든요. 이 상이 너무 전통과 권위가 있는 상이어서 매년 1월에 수상을 발표하고 이런 식으로 급박한 진행을 해야만 한다는 말만 들었어요. 이의 제기를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이 과정에 동의했던 것도 지금 와서는 부끄럽네요.

정여울: 이번 사태를 보면서 또 하나 놀라웠던 점 중의 하나는, 젊은 작가들, 특히 여성작가들이 가장 공감을 많이 해주고, 리트윗이나 댓글 참여에도 더 열정적이라는 점이었어요. 단지 문단에 젊은 여성작가들이 많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하기에는, 기성-남성작가들의 공감도가 너무 낮다는 생각도 들었는데요. 이런 문제를 제기하고 열렬히 공감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여성 작가라는 점이 더 마음 아픈 부분이었어요. 윤이형 작가님이 여성이자 작가로서 특히 힘들었던 점은 어떤 것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윤이형: 문단 내 성폭력 이후 아직까지도 공격받고 싸우고 있는 피해자들이 있어요. 그런데 가해자들은 거의 다 복귀했고 가해사실을 숨긴 채 활동하는 가해자들 이름을 저희는 말할 수도 없고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그런 상황을 매일 보며 계속 일을 해야 해요. 남성작가들은 남성들이니까 ‘자격이 없어서’ 무엇을 할 수 없다고 하시지만 결국 남성을 빼고 여성들만 목소리를 내고 싸우고 지치고 상처를 입고 무력감을 얻었어요. 남성 작가분들이 조금 더 방법을 생각해볼 순 없나요? 내부 개선을 여러분이 좀 하시면 안 되나요? 피해자들과 여성 작가들은 여전히 멸시와 위협을 받고 있어요.

정여울: 작가님이 이번 일을 잘 견뎌내시고 예전처럼 우리에게 아름답고 눈부신 이야기를 들려주는 소설가로 돌아오시길 바라는 독자들이 정말 많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문학평론을 떠나 있었는데, 저도 어떤 면에서는 문학계의 여러 관행에 대해 염증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어요. 그저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너무 바쁘고 힘든데, 글 이외의 다른 것들에 부당하게 마음을 빼앗기는 경우가 너무 많아 울기도 많이 울었지요. 그냥 저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커다란 축복이라고 느끼고 있었는데요. 작가님에게도 글쓰기가 이 세상 무엇보다도 소중한 일이라는 것을 저는 느끼고 있고, 다른 독자분들도 그럴 거라고 생각해요. 그 소중한 일을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는 것이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적인 일은 작가님의 고통에 공감하는 독자들이 정말 많다는 거예요. 제 인스타그램 팔로워 한 분은 ‘도대체 작가님을 도우려면 무엇을 할 수 있냐’고 댓글로 문의를 하시기도 했답니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 정말 많은 분들이 작가님의 아픔에 공감하고, 함께 아파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작가님의 글을 다시 읽을 수 없다는 공포감에 떨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해요. 이번 일을 겪으면서, 작가님을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따스한 마음을 많이 느끼시기도 했을 것 같아요.

윤이형: 네,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이 감사한 마음이에요. 그런데 독자분들에게는 사실 죄송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더 커서 관심을 가져달라고도 못 하겠어요. 이런 일이 생겨서 가장 상처받는 사람들은 독자분들이니까요. 독자가 없으면 작가도 없고 책도 없는데, 가장 중요한 신뢰가 상실된 거잖아요. 출판사 책을 영구 불매하고 문을 닫으라고 요구하는 것보다는 문제를 해결하고 정상화를 시켜야만 모두의 상처가 나을 것 같아요. 관련된 사람들이 너무 많으니까요.

정여울: 지금은 ‘꼭 다시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할 상황이 아니지만, 일단 작가님의 글을, 그리고 작가님의 고통까지도 사랑하고 공감하는 분들이 정말 많다는 이야기를 꼭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어떤 분은 ‘문학사상사불매’라는 태그를 달고, 집에 있는 문학사상사 책을 다 모아놓고 사진을 찍어서 불매운동에 참여하시겠다고 하는 독자들도 있었답니다. 이건 단순한 팬심이 아니라, 작가님이 느끼고 있는 고통에 대한 절실한 공감의 몸짓이거든요. 제가 아는 한 지인도 ‘절대 안 돼, 윤이형 작가님을 잃을 순 없어요’하며 정말 힘들어 했어요. 작가님이 힘들면 우리 독자들도, 그리고 문학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걱정하고 아파한다는 것을, 늘 잊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얼른 돌아오시라고 부탁드리고 싶지만, 아직은 너무도 무리한 부탁임을 알기에 마음속으로 아프게 삼키려고 합니다. 하지만 저를 비롯한 수많은 독자들이, 포기하지 않고 작가님을 기다릴 것이라는 것도 기억해주세요. 무엇보다도 혼자가 아님을, 문학을 사랑하고 책을 사랑하는 수많은 독자들과 동료 작가들이 윤이형 작가님의 투쟁에 단지 동조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주세요. 몸과 마음이 많이 불편할 텐데도 긴 인터뷰 함께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문학사상사의 입장문이 발표되자 윤이형 작가는 트위터를 통해 “수상작품집의 판매수익을 우선시하지 마시고 문학상이 최종결정권자 한 사람의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시고 관련된 모든 사람의 권리를 소중히 해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전했다. 최은영 작가는 “제가 바라는 사과는 ‘처음부터 이사진과 대표가 우수상 수상작에 대한 부당한 동의서를 마련했다’라는 사실 인정 그 자체였습니다. 저는 끝까지 사과받지 못한 것입니다.”라고 전했다. 윤이형 작가의 피맺힌 절규에 동참하는 대부분의 작가들이 젊은 작가이거나 미등단작가라는 점도 가슴 아프다. 우리가 더 많이, 더 철저하게 연대할수록, 더 많은 작가들이 더 좋은 작품을 좋은 환경에서 창작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다.

어떻게 윤이형 작가의 투쟁에 동참할 수 있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 요즘이다. 나도 머리를 긁적이며 어쩔 줄 모르다가 이제야 조금 해답을 찾기 시작했다. 독자 여러분들이 문학을 좀 더 사랑해 주셨으면 좋겠다. 그 방법밖에는 아직 길을 못 찾겠다. 문학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작가들을 진심으로 아끼고, 중고서점이 아니라 ‘새책’으로 작가의 신간을 사 주시고(중고서점에서 책을 사면 작가에게는 인세가 1원도 오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윤이형 작가를 비롯한 수많은 좋은 작가들의 책을 선물해 주셨으면 좋겠다. 작가들이 피눈물 흘리며 글쓰기를 그만두지 않도록, 투잡 쓰리잡을 뛰며 졸린 눈을 비비며 글을 쓰지 않도록. 여러분이 문학을 진심으로 사랑해 주셨으면 좋겠다.

문학사상의 사과문 발표로 사태가 쉽게 진정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번 사태로 인해 글을 쓰는 작가들뿐 아니라 문화예술계 전반의 트라우마가 폭발했기 때문이다. 갑질은 출판계뿐 아니라 음악계, 미술계, 모든 공연계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문화예술계 전반에 걸친 갑질과 악행을 고발하는 창구가 만들어져야 한다. 우리는 투쟁의 횃불을 더 높이 들 것이다. 지금까지 작가에게 불리한 인세계약이나 원고료 미지급이나 문단내 성희롱 때문에 괴로워하시는 분들은 모두 함께 목소리를 내어주시길 바란다. 문화예술 전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런 가혹한 악습과 추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반드시 근절되어야 한다. 우리는, 작가들은, 그리고 문화예술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모든 이들은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나도 활동 초기 쓴 책의 인세를 전혀 받지 못한 적이 있다. ‘인세 대신 저자증정본 수십권’을 받았다. 그런 끔찍한 부조리가 여전히 진행중이라는 사실이 놀랍다. 저작권은 창작자가 지닌 최후의 보루다.

정여울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