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입춘(立春)이다. 소한, 대한마저 그리 큰 추위 없이 지나가서 그런 것일까, 봄이 온다는 감흥이 별로 없다. 지리산 북방산개구리가 1월 말에 벌써 알을 낳았다고 한다. 이렇게 따뜻한 날씨가 이어지니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덜할 법도 하다. 그러나 입춘의 감흥을 언급하기조차 민망한 이유는 날씨에 있지 않다. 이웃나라에서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잦아들기 전에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와도 봄으로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작년 초에 나온 드라마 〈킹덤〉은 조선시대 역병의 창궐을 모티브로 삼은 좀비물이다. 본격적인 전개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멈춘 채 ‘시즌 2’를 기다리고 있어서 앞으로의 내용을 알 수는 없지만, 이 드라마가 인상적인 이유는 좀비라는 이국적인 소재를 조선시대에 접목하여 인간 욕망의 밑바닥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데에 있다. 지독한 굶주림에 내몰린 백성들의 본능적인 탐욕과, 특권을 누리기 위해 무슨 짓이든 불사하는 권력자들의 간악한 음모, 이 둘이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걷잡을 수 없는 공포를 만들어 낸다. 공포를 가중시키는 것은 무지다. 대상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다는 점이 공포를 극단으로 끌어올린다. 무지에서 오는 공포심이 더 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지금 우리 앞에 엄혹하게 닥친 현실의 공포다. 이 공포 역시 무지에서 기인한다. 신종이라서 아직 치료제나 백신이 제대로 개발되지 못했다는 점, 보균 가능성 있는 이들이 확진 이전에 어디를 다니며 누구와 접촉했는지 완벽하게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 내 옆의 누군가가 보균자일지도 모른다는 점이 우리를 공포에 빠지게 만든다. 어쩌면 바이러스 자체의 전염력보다 이 공포심의 전염력이 더 강할 지도 모른다.
실제 조선시대에 역병으로 목숨을 잃은 수만 명의 백성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지금의 우리는 예방 및 대처에 유용한 의료 지식과 기술의 발전을 이루었고 상황과 정보를 신속하게 전달할 수 있는 매체를 사용하고 있다. 물론 여전히 무지의 영역이 작지 않게 존재하고 있어서 그로 인한 공포는 없을 수 없다. 문제는 다른 의도를 가지고 공포심의 전염을 조장하는 이들이 있다는 점이다. 급박하게 전개되는 상황 속에서 국가나 기관이든 개인이든 대처의 내용과 시기에 아쉬운 부분들이 발생할 수 있다. 그에 대한 평가는 사후에 엄정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다만 지금은 전문가의 견해를 존중하면서 말은 아끼고 힘을 모을 때이다. 감당하지 못할 섣부른 인도주의도 문제지만 근시안적인 실리를 앞세운 혐오와 차별도 경계해야 한다. 막연한 공포심과는 다른 ‘전전긍긍’의 신중함이 필요하다. 막연한 공포보다 전전긍긍의 신중함으로 《시경(詩經)》의 〈소민(小旻)〉 시에 “깊은 물가에 임한 듯 살얼음을 밟는 듯 전전긍긍하라.[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는 구절이 있다. 오늘날 매우 두려워 벌벌 떨며 조심한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전전긍긍’은 본디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온 심혈을 기울여 신중하게 임한다는 뜻을 지녔다. 성호 이익(星湖 李瀷)은 〈성성자(惺惺子)〉라는 악부에서 남명 조식(南冥 曺植)의 ‘남달리 높고 혁혁한 기절[嵬赫之氣節]’이 잠시도 마음을 놓지 않고 전전긍긍하는 수양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하였다. 혼돈의 시대일수록 자신의 소견을 세울 때나 남의 말을 받아들일 때 사심을 거두고 공적인 이치에 맞는지를 여러 각도에서 신중하게 따져보아야 한다. 이것이 《서경(書經)》 〈여오(旅獒)〉 편의 “뜻을 도에 따라 안정시키고 말을 도에 따라 응대하소서.[志以道寧, 言以道接.]”라는 진언의 의미이다. 이어지는 구절인 “아주 작은 행동이라도 신중히 하지 않으면 결국 큰 덕에 누를 끼칠 것입니다. 9인 높이의 산을 만들 때 마지막 한 삼태기의 흙이 부족해서 모든 공이 허물어지는 것과 같습니다.”라는 말 역시, 전전긍긍의 태도를 강조한 것이다.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 증가세가 둔화되는 시점이 속히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아무리 암울한 상황이라도 최악에 이르면 바닥을 치고 반전한다는 것이 ‘역(易)’의 가르침이다. 그 반전의 시기를 앞당기고 피해자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국가든 개인이든 전전긍긍 신중하게 대처하되 절대 막연한 공포에 끌려 다니지는 말 일이다. 도무지 끝이 없을 것 같은 혹독한 겨울도 결국은 온화한 봄 햇살에 서서히 밀려나고야 마는 법. 작고 여린 새싹이 꽁꽁 얼어붙었던 땅을 밀어내고 고개를 내밀 듯이, 입춘은 우리가 느끼든 그렇지 않든 그 자체로 늘 기적이다. 생명력 넘치는 입춘의 기적이 죽음의 소문 가득한 이 땅에 단비처럼 내리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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