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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 시인 “‘돼지’ 모델은 문화예술계 권력자”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2. 13. 04:57

최영미 시인 “‘돼지’ 모델은 문화예술계 권력자”

등록 :2020-02-12 15:39수정 :2020-02-12 23:44

 

시집 ‘돼지들에게’ 개정증보판 간담회에서 밝혀
“2004년께에 만난 문화예술계 권력 인사가 모델”

1987년 진보 대선 후보 선거 캠프 성추행도 폭로
“이상문학상 문제제기도 미투 때문에 가능”


시인 최영미가 자신의 시집 <돼지들에게>에 등장하는 여러 ‘돼지’의 모델이 2000년대 초 문화예술계 권력 인사라고 밝혔다.

최영미 시인은 12일 <한겨레>와 전화인터뷰에서 “‘돼지’의 모델은 2004년께에 만난 당시 문화예술계 권력 인사”라고 말했다. 그는 “그런데 그리 유명한 사람은 아니고, 그냥 그 동네에서 한 자리 하던 사람이었다”며 “그는 장편시 ‘돼지들에게’를 처음 쓰게 한 사람이지 내 시집 전체에 등장하는 모든 돼지들의 모델은 아니다. 내 시 속에는 여러 명이 들어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왜 시의 모델이 누구냐고 난리 치는지 개탄스럽다”며 “지금은 경황이 없지만, 나중에 내 입장을 에스엔에스에 길게 밝히겠다”고 덧붙였다.

최영미 시인.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최영미 시인.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최 시인은 앞서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마련한 시집 <돼지들에게> 개정 증보판 발간 기자간담회에서도 이런 사실을 밝혔다. <돼지들에게>는 2005년에 초판이 나온 그의 세 번째 시집으로, 최영미 시인은 신작 시 세 편을 더해 최근에 개정 증보판을 내놓았다.

이 시집에는 표제작 ‘돼지들에게’를 비롯해 ‘돼지의 본질’ ‘돼지의 변신’처럼 ‘돼지’를 등장시킨 작품들이 여럿 들어 있다. ‘돼지의 변신’에서 시인은 “감방에서 한 이십 년 썩은 뒤에/ 그는 여우가 되었다// 그는 워낙 작고 소심한 돼지였는데/ 어느 화창한 봄날, 감옥을 나온 뒤/ 사람들이 그를 높이 쳐다보면서/ 어떻게 그 긴 겨울을 견디었냐고 우러러보면서/ 하루가 다르게 키가 커졌다// (…) // 냄새나는 돼지 중의 돼지를/ 하늘에서 내려온 선비로 모시며// 사람들은 그를 찬미하고 또 찬미하리라”라고 썼다. 이 때문에 민주화운동 등과 관련해 오랜 옥고를 치르고 나온 진보 인사가 ‘돼지’의 모델이라는 식의 해석이 분분했다.



이와 관련해 최영미 시인은 “2004년께 한 문화예술계 인사를 만났다. 그가 ‘돼지’의 모델”이라고 밝혔다. 최 시인은 이 인물을 “문화예술계에서 권력이 있고 한 자리를 차지한 인사”, “승용차와 기사가 딸린 차를 타고 온 사람” 등으로 묘사했다. 또 “성희롱까지는 아니지만, 여성에 대한 편견이 담긴 말을 듣고 매우 불쾌한 감정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최 시인은 그 인물이 “(나를)불러내고서 뭔가 기대하는 듯한, 나한테 진주를 기대하는 듯했다”며 “‘돼지에게 진주를 주지 마라’는 성경 구절이 떠올랐고, 이런 시를 쓰도록 동기를 제공했다”고 말했다.

최영미 시인은 이와 함께 1987년 대통령선거 기간 진보단일후보 백기완 캠프에서 활동할 때에도 많은 성추행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그는 “선거철에 합숙하면서 24시간 일한다. 한 방에 스무 명씩 겹쳐서 자는데, 굉장히 불쾌하게 옷 속에 손이 들어왔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성폭력을 ‘선배 언니’에게 상의했지만, 그 언니는 “네가 운동을 계속하려면 이것보다 더 심한 일도 참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김 시인은 12일 <한겨레>에 “이런 일은 내가 직접 경험한 사실이고, 2018년 미투 시기에 내 페이스북에도 길게 썼다”고 전했다. 최 시인은 또 “한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어느 교수”와 술자리를 한 뒤 같이 택시를 탔을 때 그가 자신을 “계속 만지고 더듬고 했던” 일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최영미 시인은 최근 젊은 작가들의 이상문학상 문제 제기와 관련해 “뿌듯하다. ‘미투’가 없었다면 그게 가능했을까”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문단이 정말 깨기 힘든 곳인데, 여성 작가들이 용기를 내서 문제를 제기했다는 건 굉장히 고무적이었다”며 “어쩌면 그들이 편하게 발언할 수 있도록 내가 조금은 균열을 냈겠구나 싶다”고 말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