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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왕 야누시 코르차크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3. 7. 05:50

아이들의 왕 야누시 코르차크

등록 :2020-03-06 06:01수정 :2020-03-06 10:28

 

 

아이들의 왕 야누시 코르차크베티 진 리프턴 지음, 홍한결 옮김/양철북·2만7000원

 

예순네살 무렵의 야누시 코르차크(본명 헨리크 골트슈미트)는 1942년 8월6일 절멸 수용소로 향하는 트레블린카행 열차에 올랐다. 그가 돌보던 190여명의 고아들, 아이들을 보살폈던 스테파니아, 교사들과 함께였다. 교육자이자 소아과 의사, 작가, 심리학자로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끼쳤던 그에겐 마지막까지도 안전을 보장해주겠다는 제안이 있었지만 그는 열악한 게토에서 살아가면서도 고아들의 손을 놓지 않았던 자신의 신념대로 마지막 순간을 맞는다.<아이들의 왕 야누시 코르차크>를 집필한 미국의 작가이자 심리치료사인 베티 진 리프턴은 코르차크가 설립한 유대인 고아원에서 살았거나 근무한 이들 중 살아남은 사람들의 기억을 통해 그의 삶을 구현해냈다. ‘코르차키안’ 중 한 사람인 미샤는 말한다. 평생 도덕적 결정을 했던 코르차크가 마지막까지 고아들 곁을 떠나지 않은 건 “원래 그럴 사람”이었기에 할 수 있었던 선택이었다는 것.

 

지은이는 미샤의 말처럼 전설로 남은 그의 마지막 순간에 매몰되지 않고 코르차크란 인물의 삶을 복원해낸다. 유대계 폴란드인으로서 살아가며 내적 갈등을 겪기도 한 코르차크는 ‘정의로운 공동체’를 지향하는 진보적 고아원을 폴란드 사회에 도입했다. 유대 아동이 살았던 ‘고아들의 집’과 폴란드 아동들이 머문 ‘우리들의 집’에서 그는 자신의 교육철학을 바탕으로 당시의 고아원들과 다른 진일보한 사회를 구축한다. 그가 꾸린 고아원은 철저한 틀 안에서 운영됐지만 그 안에서 아이들에게 자유를 주었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그들을 교육했다. “어린이는 중요한 존재로 대접받을 자격이 있”고 “어린이에게 자신의 운명이 이끄는 대로 성장하도록 시간과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믿었던 그는 ‘고아원 신문’을 창간하거나 어린이들에 의한 ‘어린이 법원’을 운영하며 아이들이 존중받을 권리를 지닌 존재로 커나가도록 이끌었다. 그의 교육 방식이 항상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었기에 실패한 경험도 일화엔 담겨 있는데, 이를 통해 현실에 직접 맞부딪히며 실천가로 살아온 그의 면모가 잘 드러나기도 한다.

 

ⓒ Photograph by A.Y. Poznansky, 1930

 

그가 다양한 시도를 해나간 ‘1919~1930’년은 나치의 횡포가 극심해진 ‘1939~1942’년과 비교되며 고아원에서 ‘어린이 공화국’을 꾸려가던 시절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불러오기도 한다. 아이에게 화를 내더라도 “내가 백번은 말했지!”와 같은 진부한 잔소리 대신 “내가 봄에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말했지”라며 말을 고르는 노력을 다하는 그의 모습에선 남다른 교육자의 일면이 엿보인다.

 

유네스코는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1978~1979년을 ‘어린이의 해’이자 ‘야누시 코르차크의 해’로 선포했다. 책의 말미에 그의 ‘아동 권리 선언’이 부록으로 실렸는데, 이후 ‘유엔아동권리선언’의 사상적 토대가 되기도 했다.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탁월했던 그는 아동인권 옹호의 선구자였다.

 

고아원 아이들은 자신의 빠진 이를 들고 코르차크에게 뛰어오는 일이 흔했다고 책은 전한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지만 가진 것 없는 모든 아이들의 아버지였던 그에게 입을 크게 벌려 흔들리는 이를 내보이거나 자그마한 젖니를 건네는 아이들의 모습이 동화의 한 장면처럼 잔상을 남긴다.      강경은 기자 free1925@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