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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경제 교리’ 깨부수는 코로나19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3. 25. 07:16

[아침햇발] ‘경제 교리’ 깨부수는 코로나19

등록 :2020-03-24 17:39수정 :2020-03-25 02:39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23일(현지시각) 국채와 모기지 채권을 무제한으로 사들이고, 별도 기구를 통해 회사채까지 매입하겠다는 ‘시장 대응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지난 3일 전격적인 기준금리 인하 뒤 기자들에게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모든 일상이 뒤틀렸다. 코로나19를 기준으로 BC(Before Corona: 코로나 이전)와 AD(After Disease: 질병 이후)로 나뉘었다는 익살이 그럴듯하다.

 

국내외 경제 전반에 가해진 타격이 강해 “2차 대전 이후 최악의 위기”(이탈리아 총리), “대공황 이후 가장 큰 위기”(뉴욕시장), “2008년 금융위기보다 심각하다”(국제통화기금 총재)는 비명이 과장으로 들리지 않는다. 금융 불안에 더해 실물 부문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른 수요 격감과 원부자재 수급 차질에 따른 공급 위축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0%대 금리와 ‘역오일쇼크’는 그 상징이다.

 

코로나발 위기 징후에선 충격의 강도 못지않게 독특한 속성이 엿보인다. 경제 내부 변수에 따른 게 아니라는 점이다. 홍수나 가뭄, 흉년, 역병 같은 경제 외적 변수에서 비롯되는 위기는 다분히 전근대적 현상이다. 역병이 방아쇠 노릇 정도를 넘어서서 미사일처럼 경제 전반을 직격해 흐름을 끊어놓는 일이 중세기 이후엔 드물었다.

 

경제사에선 1825년의 경제위기(공황)를 근대 자본주의 체제 내부에서 터진 위기의 첫 사례로 꼽는다. 투자와 생산의 과잉으로 빚어진 시장 경제적 위기였다. 경제위기의 근대화였던 셈이다. 그 뒤 평균 10년 주기로 이어진 과잉생산 공황, 1930년대 대공황, 1990년대 후반 동아시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또한 촉발 변수의 내부성이라는 점에선 같은 맥락이었다.

 

따라서 코로나발 경제 난국이 경제위기의 역사 목록에 정식으로 오른다면 독특한 자리매김을 할 수 있겠다.

 

새로운 위기는 새롭고 창의적인 해법을 불러내어 관성을 띠는 통념이나 교리를 깨부순다. 1987년 10월19일 ‘블랙 먼데이’ 직후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시중은행을 통해 투자은행에 돈을 쏟아부어 패닉을 진정시킨 것은 통념을 깬 극명한 예였다. 연준이 제1금융권 바깥에 자금을 지원한 첫 사례이며, 앨런 그린스펀 당시 연준 의장이 ‘마에스트로’(거장) 칭호를 얻은 실마리였다. 2008년 금융위기 때 연준이 채권 유통시장에 ‘직접’ 뛰어들어 돈의 홍수를 일으킨 양적 완화 또한 기존 교리를 뒤흔든 일로 꼽힌다.

 

미 연준은 코로나발 위기를 맞아 또다시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양적 완화의 한도를 없애고 일반 기업까지 지원하겠다는 태세다. 전례 없는 일이다.

 

미국, 영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의 재정 확대 방안 또한 상상력의 한도를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천문학적 규모도 규모이려니와 파격적인 현금 지원 방안을 꺼내 들었다. 금융위기 때 예금 지급을 보장하듯 일자리 보장을 선언하자는 제안도 나오고 있다. 새로운 발상과 처방에서 거침이 없다.

 

코로나 사태 뒤 병리학(방역)에선 앞선 한국이 경제학(재정·금융정책)에선 한참 뒤떨어진 모습이었다. 24일 2차 비상경제회의에서 대규모 기업 지원 방안을 제시하기까지 재정 관료들은 국면을 주도하기보다 끌려다니는 쪽에 가까웠다. 새롭고 과감한 제안과 실천은 지방자치단체 몫이었고, 중앙정부 쪽은 마지못해 따라나선다는 인상을 지우지 못했다.

 

한국 경제의 처지에서 정책의 패러다임을 주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패러다임 주변국으로선 변화의 ‘주도’보다는 ‘적응’에 역점을 둘 수밖에 없다. 기축통화국이 아닌 만큼 외환시장에서 맞을 수 있는 역풍 같은 리스크 요인도 고려해야 한다. 유연하고 창의적인 정책을 앞장서 치고 나가는 데 일정한 한계를 띠고 있다. 미국을 필두로 각국에서 잇따라 제기하는 새로운 처방전이 마냥 성공적일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그렇더라도 재정 당국이 1차 추경안 마련 때 내비쳤던, 답답하고 소극적이고 구태의연한 태도까지 정상참작될 일은 아니다. 위기 국면을 맞아서도 재정 건전성 따위의 교리에만 얽매이는 것 자체가 리스크 요인일 수 있다. 정책 틀 변화의 주도는 두고라도, 제때 적응조차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생에선 처음이라 할 정도로 문제가 어렵고 새롭다면 해법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위기의 순간에는 창의적이고 유연해야 살아남는 데 유리한 법임을 역사는 가르친다. 일상은 돌변했지만, 새로운 위기가 새로운 해법을 낳는다는 진리는 불변이다.

김영배 ㅣ 논설위원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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