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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프리즘] 코로나19, 기회의 씨앗 / 이제훈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3. 25. 06:58

[한겨레 프리즘] 코로나19, 기회의 씨앗 / 이제훈

등록 :2020-03-24 18:15수정 :2020-03-25 02:38

 

이제훈 ㅣ 통일외교팀 선임기자

 

코로나19에 대응하는 북한의 전략은 ‘전면 봉쇄’다. 일찌감치 “국가비상방역체계로 전환”을 선포(<노동신문> 1월30일치)하고, 1월31일부터는 국외에서 들어오는 국제항공·국제열차·선박 운항을 중단했다. 남과 북의 유일한 공식 소통 창구인 개성 공동연락사무소도 1월30일부터 운영을 중단했다.북한 당국은 나라 밖에서 들어오는 건, 사람이든 물건이든 가리지 않고 ‘잠재적 감염원’으로 간주한다. 외국에 나갔다 귀국한 이들(“1차 위험 대상”)은 물론 이들과 접촉한 사람(“2차 위험 대상”)도 의심 증상이 있든 없든 무조건 40일간 격리한다. 국제 표준 격리 기간인 14일의 3배 가까이 길다. 수입 물자도 “10일간 자연 방치”한 뒤 “3일간 소독”해야 통관이 끝난다.

 

이런 과한 대응엔 이유가 있다. “수도(평양)에마저 온전하게 꾸려진 현대적인 보건의료시설이 없는 것을 가슴 아프게 비판”했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한탄이 상징하듯, 치명적으로 부실한 보건의료 기반이 문제다. 코로나19가 퍼지면 내부 자원만으론 통제할 수 없다. 더구나 코로나19 최초 발생국 중국과 1400㎞에 이르는 국경을 맞대고 있다. 조선노동당이 애초 코로나19 방역 사업을 “국가 존망과 관련된 중대한 정치적 문제”(<노동신문> 1월29일치)라 규정한 까닭이다.

 

이런 ‘봉쇄 전략’엔, 북한이 세계화 흐름에서 배제된 ‘고립·폐쇄국가’여서 경제적 파장이 상대적으로 작으리라는 판단도 깔려 있다. 대표적 ‘개방형 통상국가’여서 전면 봉쇄 전략은 선택지에서 배제할 수밖에 없는 한국과 처지가 아주 다르다.

 

북한 당국은 “우리나라에 아직까지 전염병이 들어오지 않았다”(<노동신문> 3월19일치)고 한다. 세계보건기구(WHO)에도 ‘확진자 발생’을 보고하지 않았다. 하여 “1917~1918년 스페인 독감에 비견되는 문명사적 사건”으로 불리는 코로나19로 세계가 휘청이는 와중에도 북한은, 공식적으론 ‘코로나19 청정국가’다. 그러나 보건의료 기반이 부실하고 스스로 밝힌 격리 대상이 1만명을 넘는데다 평양의 모든 외국인을 30일간 격리한 북한에 확진자가 0명이리라 믿는 이는 없는 듯하다.

 

북한 당국이 문재인 대통령은 물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까지 나서 방역 지원 의지를 밝혔는데도, ‘됐고요’라며 짐짓 모르쇠로 일관하는 논리적 근거는 ‘확진자 0명’이라는 자기주장일 터.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이 급작스레 평양종합병원 ‘200일 속도전’ 건설 사업을 내세워 민심을 다독이면서도 방역 협력에 짐짓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는 데에는 방역과 무관한 전략적 판단이 깔려 있다는 평가가 많다. 방역 협력을 실마리로 한 저강도 관계 개선 흐름이, 모든 것을 건 “자력갱생 정면돌파전”에 ‘잘못된 신호’로 읽힐까 선 긋기를 한다는 것이다.

 

인류의 고난에 찬 역사가 보여주는바, 모든 위기는 기회의 씨앗을 품고 있다. 그 ‘기회의 씨앗’이 언 땅을 뚫고 뿌리를 내려 열매를 맺으려면 분열과 대립이 아닌 연대와 협력의 길을 걸어야 한다. “전체주의적 감시체제”와 “민족주의적 고립”이 아닌, “시민적 역량 강화”와 “지구적 연대”를 추구하자는 유발 하라리의 호소를 떠올릴 필요조차 없다.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의 미국’에 견결히 맞서면서도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국제협력을 추구하는 이란한테서 영감을 얻기를 바란다. 이란은 한국 정부에 방역 협력을 요청했고, 한국 정부는 23일 지원 의사를 공식화했다. 그렇게 한·이란 양국은 ‘코로나19 위기’를 미국의 봉쇄망을 뚫어 살길을 도모할 지렛대로 삼으려 한다. 남과 북도 코로나19 위기에서 공존과 공생의 동력을 되살릴 ‘기회의 씨앗’을 얻을 수 있다. 재난은 약한 자를 먼저 공격하고, 손바닥은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인민대중제일주의”를 입에 달고 사는 김정은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내민 손을 뿌리치지 않으면 좋겠다.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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