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訴訟]=자유 평등 정의

[세상읽기] n번방, 인신매매죄도 적용하라 / 권김현영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4. 16. 02:43

[세상읽기] n번방, 인신매매죄도 적용하라 / 권김현영

등록 :2020-04-14 16:45수정 :2020-04-15 14:30

 

권김현영 ㅣ 여성학 연구자

 

텔레그램에서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유포한 조주빈이 총 14개의 죄명으로 구속기소되었다. 검찰은 추가로 확인되는 공범과 여죄에 대해서도 철저히 수사해 범죄단체조직죄 적용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범죄단체조직죄가 적용되어야 무기징역이 가능하다. 또 한가지 추가되어야 할 죄목이 있다. 바로 인신매매죄다. 범죄단체조직죄와 인신매매죄는 국제공조가 필수적이고 금전거래가 동반되며 범죄집단에 의해서 조직적으로 일어나는 등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입법도 같이 이루어져 2013년 범죄단체조직죄가 인신매매죄와 함께 형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2000년 한국 정부가 서명한 유엔 조직범죄방지협약 및 인신매매방지의정서를 비준하기 위한 뒤늦은 입법 조치였다.

 

유엔 인신매매방지의정서에 따르면 인신매매는 “착취를 목적으로 (…) 당사자의 취약한 지위를 이용하거나, 기타 타인의 통제력을 가진 사람의 동의를 위해 금전적 보상이나 이익을 수수하는 수단에 의해 사람을 모집, 이동, 은닉, 또는 인계받는 행위”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2013년 개정된 형법 289조 인신매매 조항에는 이 같은 정의는 없이 ‘사람을 매매한 사람’이라고만 표기되어 있다. 이렇게 되면 당사자의 취약성을 이용해 이루어진 인신매매를 처벌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동의와 거래 여부에 잘못된 초점이 맞춰진다. 흔히 인신매매라고 하면 전문 납치조직이 주택가에서 아무개 여성을 납치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 같은 경우는 실제 인신매매의 4~5% 수준에 불과하다. 약취와 유인을 통해 제 발로 오게 만들고, 협박을 통해 자포자기하게 만들어 떠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인신매매 범죄조직의 핵심 기술이다.

 

여기에서 주목해봐야 할 것은 강간의 역할이다. 1980년대 서울에서는 ‘봉고차’를 타고 사람을 잡아가는 인신매매범들이 도시 괴담으로 자주 등장했다. 남자는 새우잡이배로 끌려간다고 했고 여자는 술집에 팔린다고 했다. “여자는 먼바다에 있는 것도 아닌데 왜 돌아오지 못해?”라고 누군가 물었다. 또래보다 항상 많이 알던 한 친구는 목소리를 낮추고 이렇게 말했다. “도망가지 못하게 강간부터 한다더라.” 당시 엄마가 읽던 여성잡지에는 인신매매 납치를 당했다가 천신만고 끝에 다시 집으로 돌아왔지만 남편이 받아들이지 못해 결국 이혼을 하고 다시 술집을 나가게 된 여성의 수기 같은 것이 실려 있곤 했다. 어린 마음에 “강간을 당하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구나”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한국의 성산업 구조를 분석한 김주희에 따르면 여성의 몸은 성착취 인신매매 과정에서 일종의 고정자본 같은 성격을 가진다. 고정자본이란 생산활동을 지속하는 생산수단의 가치를 말하는데, 이때 강간을 통해 여성의 몸은 팔릴 수 있는 상태로 변형될 뿐만 아니라 한번 팔리고 난 다음에도 다시 그 자리에 돌아오게 하고 도망가지 못하게 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성매매를 금지하면 성폭력이 증가할 것이라는 통념과는 달리 성매매는 성폭력을 줄여주기는커녕 성폭력 피해는 성매매로 이어졌고, 성매매 현장에서의 성폭력 피해는 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 그 전까지 강간이 피해자를 통제하는 방법으로 활용되었다면, 최근 텔레그램 성착취방에 이르러 강간은 참여자(가해자)가 지급한 돈에 따라 제공되는 ‘상품'이 되었다. 지난 13일 <한겨레>의 단독 보도에 따르면 조주빈은 150만원 이상을 입금한 고액 유료회원에게 개별메시지를 보내 ‘인간시장방’을 운영했다고 한다. 그는 범죄 수위별로 가격을 정해 성범죄를 제안했고, 피해 여성을 ‘노예’라고 지칭하며 ‘분양’했다. 이것은 인신매매다. 자발성과 동의 여부를 두고 불필요한 쟁점이 만들어질 이유가 전혀 없다. 인신을 직접 구속하지 않고도 디지털 기술과 유포를 통해 타인을 지배하는 것이 가능해진 조건에 맞게 인신매매의 범죄 수법이 진화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 법의 해석론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인신매매는 노예제가 폐지된 이래 가장 비인도적인 범죄 행위로 취급되어왔다. 그런데 이 사건들을 지켜보고 있으니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노예제는 정말 폐지되었던 것이 맞을까. 인신매매는 금지되었던 것이 맞을까. 보호할 만한 피해자를 선별하다가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모두 망해버린 것은 아닐까. 노예제를 부활시킨 텔레그램 성착취 문제는 21대 국회가 최우선적으로 대처해야 할 일 중 하나다. 이 문제를 두고 정쟁이나 하고 있을 일이 아니다.

 

연재n번방 성착취 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