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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주기철 목사의 십자가의 길 [채인준]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9. 9. 08:55

주기철 목사의 십자가의 길 [채인준]



소양(蘇羊) 주기철(朱基徹, 1897∼1944) 목사는 한국 기독교회사가 남긴 가장 위대한 신앙인 가운데 한 분이다. 그는 한국에 기독교가 수용된 지 반세기가 조금 넘었을 시점에 한 연약한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일본의 천황(天皇)주의 이념에 바탕한 무도한 군국주의 횡포에 저항하여 기독교의 유일신 하나님신앙의 순수성을 수호하고 그 절대성을 증거하여 위대한 순교적 증인이 되었다. 그의 삶은 비록 한국이라는 좁은 땅덩어리에서 이루어진 것이지만, 유일신 하나님 신앙 전통에 입각하여 한국 기독교 교회에 의해 그리스도인으로서는 가장 영예로운 순교자의 반열에 추앙되었다.


1. 그의 생애에 대한 관견(管見)

그는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바꾸고 황제즉위식을 거행한 직후에 태어났다. 그는 을사조약 후 통감정치가 시작되던 첫해(1906)에 고향의 개통학교에 입학을 시작으로, 1912년은 정주 오산(五山)학교를 택하여 진학, 졸업 후 스승들의 권유에 따라 서울의 연희(延禧)전문학교 상과(商科)를 진학하였는데, 1916년 여름부터 학업을 중단하고 귀향하여 몇년간 뚜렷한 방향이 없이 방황하는 듯한 생활을 계속하다가 1920년 두 차례에 걸친 김익두 목사의 사경회에 참석하고 자신의 진로를 목회자의 길로 굳힌다.
주기철은 1921년 경남노회에서 목사후보생 시취에 합격하고 그 이듬해 3월 평양신학교에 입학, 공부하는 한편 졸업할 때까지 경남 양산읍교회의 전도사로 시무하였다.
1925년 평양신학교를 졸업하던 그 해 목사안수를 받은 주기철은 1931년 7월까지 초량교회 담임목사로, 1936년 7월까지는 마산(문창)교회 담임목사로 봉사하다가 1936년 7월 평양 산정현교회의 담임목사로 부임하였다.
한국의 예루살렘 평양에서 일제 태양신에 대결하기 위한 한국 교회 최후의 보루로서 그는 한국교회의 전면에 서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교회가 겪어야 할 십자가의 고난의 길, 그는 그 길을 회피하지 않고 묵묵히 골고다로 향했다. 일제의 거듭되는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하면서 여러 차례에 걸쳐 검속, 투옥되어 옥고를 치르다가, 1944년 4월 21일 한국 기독교사에 찬란히 빛나는 순교의 길을 걸으니 47세였다.



2. 주기철 목사의 구원론

주기철 목사의 신학은 개신교회의 보편적 구원론에서 출발한다. 즉 '선행'이 아닌, '믿음'으로 얻는 구원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것은 '죄론'에서 출발한다.
인간인 이상 누구나 '죄로 인한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다. 특히 '심판'이 예상되는 죽음에 임박하여 그 공포심은 더할 수밖에 없다. 인간은 '죄의 공포' 앞에 속수무책이 될 수밖에 없다. 종교적 은둔생활이나 율법 실천으로도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오직 한 가지 방법"이 있으니 "하느님의 독생자를 믿는 그 한 가지 방법" 뿐이다. 그는 이것만이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지적하였다.
'그리스도의 능력을 입는 것' 외에 죄를 극복할 길이 없다. 그리스도의 능력에 '접붙임'될 때에야 인간 속에 있는 혈기와 교만, 음욕 등 '내적인' 죄가 소멸되고 따라서 음주와 도박, 흡연 등 '외적인' 죄도 자연 소멸될 수 있다. 결국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속의 은총이 아니고는 죄의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는 것이다. 이같은 구속의 방법은 인간이 창안한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창안하신 방법이고 따라서 인간에게는 은총일 뿐이다.

먼저 그리스도인 자신이 경건과 정직의 생활을 실천하여 자신을 맑게 한 후, 사회를 "맑고 깨끗하게" 정화하는 '소금과 빛의 직분'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그리스도인의 개인 윤리는 사회 윤리로 연결된다.



2. 그리스도인의 사회 윤리(민족 구원론)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죄 사함'을 받고 구속함을 입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은총'에 보답하는 생활을 하게 된다.
그리스도인들이 받는 하나님의 은총은 1) '위로부터' 온 것이며, 2) 받은 양에 따라 책임의 분량이 다르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이같은 맥락에서 현재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은총에 '책임'을 다하는 생활로 보답해야 하는 데, 건강한 사람은 '병약한 사람'을 조롱하지 말고 재물에 여유가 있는 자는 그것을 자신의 사치와 향락을 위해 쓸 것이 아니라 교회 사업을 위해 사용하거나 주변의 가난한 자, 어려운 이웃을 위해 구제하고 보살피는데 사용할 것을 촉구하였다.
지식을 가진 자는 그것으로 무식한 자를 조롱하거나 멸시하지 말고, 지식을 사기와 착취의 도구로 사용하지 말고 오히려 문맹자를 가르치고 깨우치는 봉사의 도구로 사용할 것을 촉구하였다.
이처럼 주기철 목사는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인간의 책임 의식에 바탕을 둔 그리스도인의 '윤리 생활'을 강조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은총으로 나타나는 구속의 은혜가 개인적 차원의 만족에 그치지 않고 교회와 이웃, 사회와 민족을 위한 봉사 활동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3. 주기철 목사의 신앙

1) 체험적 신앙

주기철 목사 신학에서 두드러진 특징의 하나가 '성경 중심주의'다. . 그의 '성경 중심' 신앙은 '체험과 경험'으로 확증되고 보완되었다. 그는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임재와 섭리의 역사를 자신의 삶 속에서도 체험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거역할 수 없는' 섭리의 손길을 체험하며 목회의 길에 들어섰고 목회 생활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세로 임하였고 그 과정에서 순간 순간 '기쁨'을 체험하였다.

2) 그리스도 사랑

'하나님 사랑'은 '그리스도 사랑'으로 이어진다. 그리스도의 '피 흘림'을 통해 하나님의 구속의 은총을 받은 사람들은 그리스도 예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주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에게 '예수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주기철 목사는 예수를 사랑하면 그의 말씀에 순종하게 된다. 순종하되 '기쁜 마음'으로 순종하게 된다. 절대 순종은 오직 사랑에서라야 가능한 것이다. 사랑 없는 순종은 억지거나 강제일 뿐이다. 되겠다." 베드로 역시 주님으로부터 '죄의 용서'와 '사명 부여'라는 2중 사랑을 받고 감격하여 고난과 역경의 길을 기쁨으로 갈 수 있었다.

3) 십자가 사랑

주기철 목사의 '예수 사랑'은 '십자가 사랑'으로 이어진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리스도를 따라 사는 신앙 생활에서 '십자가 고난'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길은 곧 십자가의 길이기 때문이다. 그는 우선 그리스도인이 받는 고난은 억지로, 마지못해 받는 당하는 고난이 아니라 자진해서, 기쁨으로 받는 고난, 즉 '주님을 위해 당하는' 고난, '주님 사랑'에 뿌리를 둔 자발적 수난(受難)이 되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첫째, 십자가 길이 '생명의 길'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죄인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었다. 그 생명의 힘으로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생명과 능력을 십자가에서 얻어야 한다.

둘째, 십자가 길이 '진리의 길'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신앙에서 십자가를 빼놓을 수 없다. 그리스도 안에서 경건하게 살려는 자는 핍박을 피할 수 없다. 고난 당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이다. 어느 시대에나 그러하지만 특히 '패역한 시대'에는 고난 당하는 것으로 그가 진리의 길을 가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패역한 시대'에 고난 당하지 않고 칭찬 받으며 의기양양하게 사는 것은 곧 '십자가의 길에서 탈선되어 시대 사조에 휩쓸리여 바람부는대로 살아가는 자'이거나 아니면 '자기의 안일을 위하여 비진리와 타협하며 사는 자'일 것이 분명하다. 어려운 시대 진리를 추구하는 자는 고난의 길을 피할 수 없다. 곧 주기철 목사가 걸어야 했던 길이었다.

셋째, 십자가 길이 '주님과 동행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예수와 동행하려면", "예수를 만나려면" 십자가의 길을 가야만 한다. 이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필수 사항이다. 십자가 외에는 주님과 동행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주님과 동행하기를 윈하는 자는 마땅히 십자가의 길을 가야만 한다. 다만 주님을 원치 않으면 피할 수도 있는 길이다."바울 같은 이도 구태여 그 길을 갈 필요는 없었으니 자긔가 원치 않었다면 얼마든지 안갈 수도 있는 것이었지만 예수의 사랑 때문에 그는 그 험한 십자가의 길을 즐겨 걸어간 것이다."

넷째, 십자가 길이 '하늘의 평화가 넘쳐흐르는 길'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랑'이 강권하여 그 길을 간다 하지만 십자가 길에 고난과 죽음만 있다면 끝까지 그 길을 가기 어렵다. 십자가 길 마지막에 생명과 평화의 기쁨이 있기에 그 길을 선택하고 가게 되는 것이다. 과거 성인(聖人)들은 이런 소망을 가지고 십자가의 길을 갔다.
다섯째, 십자가 길이 '천국에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생명'과 '진리'의 길로 알고 '주님과 동행'하며 걸어간 십자가의 길 끝에는 '천국'의 평안, 기쁨이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그 길을 가기가 쉬운 것은 아니다. 선택하기도 어렵고, 선택한 후 끝까지 가기는 더욱 어렵다. 그래서 주기철 목사는 '사랑'의 힘이 아니고는 그 길을 끝까지 갈 수 없다고 한 것이다.
'하나님 사랑', '예수 사랑'에 감동되어 살았던 주기철 목사에게 '십자가 길'은 대안(代案)이 없는 선택이었다. 그는 그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갈 수밖에 없었다.
십자가의 길은 신자가 '경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이 십자가의 길은 진리의 길인 때문에 환난과 핍박이 파도처럼 위험할지라도 안갈 수가 없는 길이다.그리고 마지막 때 경건한 신앙을 지키려는 성도는 고난을 피할 수 없다.

이와 같은 그의 신앙때문에 1938년 9월 장로교총회가 신사참배를 가결할 때 주기철 목사는 2차 검속을 받아 평양 경찰서 유치장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었다. 1938년 총회 기간 내내 그의 석방을 촉구하는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주기철 목사가 속한 평양노회에서조차 노회장 보고를 하면서 그의 신변에 관한 언급 한 마디 없었다. 오히려 노회는 이듬해(1939년) 12월 15일 평양 남문밖교회에서 임시노회를 소집하여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투옥되어 있는 주기철 목사에 대해, "昭和 十三年 九月 平壤에서 열린 長老會 總會 冒頭에 '神社參拜는 國家儀式이요 宗敎가 아니므로 國民된 義務上 宜當히 參拜하기로 함' 하고 決議한 精神에 違反"된다는 이유로 "朱牧師에게 峻烈히 免職處分의 決議를 하였다" 그는 총회나 총회원들의 무관심과 외면 속에 '홀로' 십자가의 길을 가야만 했다.



4. 그리스도의 겸비

1939년 2월 2일, 주기철 목사가 '투옥'에서 '순교'로 이어지는 '십자가의 길'을 본격적으로 가기 직전에 작성한 기도문은 '십자가의 길'을 가려는 그리스도 '열애자'(熱愛者)의 열정이 담겨 있다.
이 기도문의 주제인 '겸손' 혹은 '겸비'도 그의 이러한 '예수 사랑', '십자가 사랑'의 필연적 결과이다 '겸비'가 아니고는 십자가를 질 수 없기 때문이다.

주기철 목사의 '그리스도'는 '낮아지는' 그리스도였다. 그는 이런 '스스로 낮아지신' 그리스도를 본받고자 하였다.
자신 안에 남아 있어 수시로 불평과 분노를 발하는 '자아'를 제거해야만 그리스도께서 계신 '무아(無我)의 역(域)'에 들어갈 수 있다. 거기선 '겸손'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주기철 목사는 이런 '무아지경'(無我之境)을 사모했다.
'성신의 방망이'가 아니고는 내 안의 '자아'를 깨뜨릴 수 없다. 성신의 능력으로 자아가 깨지고 '무아지경'에 이르게 될 때 비로소 '외람된 오만'에서 해방된다. 그러면 '겸손'과 '겸비'는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주기철 목사는 이런 '성신의 능력'에 사로잡히기를 간구하였다.

주기철 목사는 '그리스도의 완전'을 사모하였다. '하나님의 의'를 사모하였고 '그리스도의 겸손'을 사모하였다. 마음에 '오만'이 사라지고 '비어 있는' 마음 상태를 유지하기 원하였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 안에 남아 있는 '죄악'으로 인하여 '통회'하고 '애통'하며 '회개'하였다. '재에 앉어 가슴을 치는 통회'가 없음을 통회하였다. 회개는 하면 할수록 그리스도와 '같이 되기' 때문이다. 그가 마지막으로 바란 것은 바로 이 것, 온전히 '그리스도와 하나 됨'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겸비'의 극치인 '십자가'를 통해서라야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었다.
1944년 4월 21일, '십자가의 날'인 금요일 밤, 아무도 없는 평양 형무소 어두운 감방 안에서 그 생명이 스러지는 순간, 주기철 목사가 마지막 호흡으로 드렸을 기도 또한 그러했을 것이다.
"오! 주여! 나는 당신의 겸손을 사모하오며 당신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아멘."



5. 결론

주기철목사(朱基徹 1897∼1944)는 복음을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바친 한국교회의 큰 별이었다. 1938년부터 1944년까지 5차례에 걸쳐서 총 5년4개월간의 투옥생활을 하면서 신사참배 반대운동과 신앙수호운동의 지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는`일사각오'의 자세로 일제에 항거하였다.
이와 같은 항거 끝에 주기철목사는 1944년 4월 21일 금요일 밤 9시 숱한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그의 몸은 평양형무소의 한 귀퉁이에서 그날 밤 9시 30분에 주목사님은 49세로 세상을 떠났는데 "내 여호와 하나님이여 나를 붙잡으소서"하시고 웃으며 운명하셨다.
그는 갔지만, 지금도 한국교회와 기독교인들은 그를 늘 우리와 함께 하는 존재로 기억하고 있으며, 한국 기독교사의 아름다운 전통이 계속되는 한 그는 그 역사와 함께 역사 속에 살아 있을 것이며 그의 십자가의 길이 한국교회와 우리들의 마음속에서 다시 살아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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