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민 목사 성경칼럼 (Facebook)

마가복음 15:21-41 “자신을 구원해보라” [십자가의 패러독스]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4. 18. 03:21

마가복음 15:21-41 “자신을 구원해보라”


15:3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1.
한 사람의 전기를 쓸 때 작가는 대부분 감동적인 이야기로 끝맺습니다. 설혹 사실과 조금 다를지라도 끝을 미화해서 오랜 여운을 남겨줍니다.

2.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의 생애이지 죽음이 아닙니다. 그가 사는 동안 무슨 일을 했고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삶의 흔적이 관심입니다.

3.
예수님의 경우는 반대입니다. 사복음서는 예수님의 생애 못지 않게 죽음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것도 마지막 일주일에 집중합니다.

4.
고난주간이라고 부르는 이 한 주간은 매 시간이 긴박한 시간입니다. 예수님은 종교지도자들과 의도적으로 부딪치며 십자가를 향해 갑니다.

5.
결국 한밤중에 체포 당하고 밤새 심문 받고 빌라도에게 넘겨져 한낮에 십자가에 못 박힙니다. 수치와 고통으로 얼룩진 과정이 모두 기록됩니다.

6.
예수님의 공생애 3년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새로운 경험이자 도전이었습니다. 귀로만 듣던 하나님의 능력과 형상을 눈으로 직접 보았습니다.

7.
그 때문에 유대교 지도자들은 불안했고 시기했고 분노했습니다. 그들은 결국 예수님을 로마의 공권력을 대적하는 정치범으로 몰았습니다.

8.
로마 총독 빌라도는 십자가형을 부르짖는 군중의 위협에 굴복합니다. 예수님은 끔찍한 채찍질로 십자가를 지고 언덕을 오를 수가 없었습니다.

9.
구레네 사람 시몬이 예루살렘에 왔다가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갑니다. 예수님을 매단 십자가 위에는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 명패가 걸렸습니다.

10.
대제사장은 ‘유대인의 왕’ 앞에 ‘자칭’이라는 말을 덧붙여달라고 청했지만 빌라도는 거절합니다. 그는 사실 유대인 전체를 조롱한 것입니다.

11.
예수님의 처형을 지켜보는 숱한 무리가 끝까지 조롱합니다. “네 자신이나 구원해보라. 십자가에서 내려와보라. 그러면 우리가 메시아로 믿겠다.

12.
십자가의 패러독스를 끝내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아들을 죽음에 내주고 백성을 살리는 역설을 몰랐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구원의 가치를 모르고, 십자가의 사랑을 모릅니다. 의인이 죽어 죄인을 구원하는 섭리를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