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언론

“이른바 엘리트 부모들이 더 마음의 환자”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4. 27. 04:30

“이른바 엘리트 부모들이 더 마음의 환자”

등록 :2020-04-26 09:06수정 :2020-04-26 21:34

 

[토요판] 김종철의 여기
‘공교육 모델’ 덕양중 이준원 전 교장(하)

8년간 매주 한번 ‘학부모 교실’
‘내 아이 최고’ 탈피한 부모들
자녀성장 기다리고, 학교엔 원군

“특권의식 물든 부모 우월감 탓
좋은 집안 아이들 더 억압당해
학부모는 교사 이전의 교사
부모 먼저 변해야 아이 성장해”

권위주의 없는 덕양중 교무실
교사의 업무 몰입도는 최상
“존중과 경청 경험한 교사들
주인의식으로 교육활동 앞장”

“존중과 경청은 아이들만이 아니라 선생님들에게 더 해야죠. 저는 선생님들에게 할 얘기가 있으면 교장실로 부르지 않고 가능하면 제가 교무실을 찾아갔어요.” 이준원 덕양중 전 교장이 지난 6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지난 1월8일 덕양중의 졸업식에서 교장 이준원(63)을 끌어안고 운 건 아이들만이 아니었다. 교사들도 졸업장 수여식을 마친 교장을 껴안고 흐느꼈다. 교장 퇴임식이 따로 예정돼 있었는데도 교사들은 이별을 앞두고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코로나19 사태로 퇴임식(2월26일)이 취소되자, 그를 그냥 보낼 수 없었던 교직원들은 그날 저녁 마스크 착용 등 방역 규정을 준수한 채 학교 도서실에서 조촐한 송별식을 가졌다. 이준원이 남긴 덕양 공동체 문화인 ‘서클’로 진행된 송별 모임에는 교사와 행정실 직원, 당직 기사(숙직 담당) 등 덕양중 식구 모두가 왔다. 이들은 둥글게 둘러앉아 각자 교장과의 추억이 담긴 사진을 스크린에 띄워놓고 얘기하고, 준비해 온 작은 선물을 주고받으면서 석별의 정을 나눴다. “당직 기사님이 교장 선생님께 편지를 써 와서 읽을 때 모두 울었어요. 추억의 사진을 보면서도 울고요. 보내드리기가 너무 아쉬워서 오후 5시 반에 시작한 행사가 밤 11시 반이 돼서야 끝났어요.”(이병환 덕양중 교무기획부장)

 

―졸업식 때 아이들뿐 아니라 선생님들도 교장 선생님을 끌어안고 울더군요.

 

“그동안 사막 같은 교직생활을 해오셨던 분들이 특히 그러셨죠. 교장과 교감, 관리자, 선배 선생님들에게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입시학원 같은 학교에서 일하면서 이게 내가 꿈꾼 교사가 아닌데 하면서 염증을 느꼈던 분들은 덕양중학교에 와서 깜짝 놀라요. 행정실 직원이나 청소하는 분들, 급식하는 분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을 존중해야 할 동료 교사로 인정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적이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었어요. 그만큼 대한민국의 학교 문화가 경직되어 있어요. 사실 덕양중 같은 모습이 당연한 건데 말이죠.”

 

“선생님은 떠나셔도 여전히 우리 안에 남아 계십니다.” 코로나19로 퇴임식(2월26일)이 취소되자, 덕양중 교사들은 이날 이준원 교장을 위해 조촐한 송별식을 마련했다. 이준원 제공

 

_________교사 만나러 교무실로 가는 교장

 

―새로 온 선생님들은 어떤 면에서 충격을 받던가요?

 

“권위적이거나 계급으로 눌러서 지시하지 않고 정말 똑같은 인간 대 인간의 소통을 하는 것에서 그런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저는 할 얘기가 있으면 선생님이나 행정실무 선생님들을 인터폰으로 교장실로 부르지 않아요. 가능하면 제가 교무실로 찾아갔어요. 아니면 메신저로 얘기하고요. 수업 사이 10분 쉬는 시간에 오라 가라 하는 게 선생님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잖아요.”덕양중 교사들의 업무 몰입도는 놀라울 정도다. 미국의 교육 전문가인 서지오바니가 고안한 교사 몰입도 평가 설문을 자체적으로 실시(2019년 11월)한 결과, 덕양중은 4단 척도에서 평균 3.81점을 얻었다. 서지오바니는 이 척도에서 평균 3.0 이상이 나오면 ‘일 자체에 대한 몰입’이 이뤄진 학교로 봤다. 덕양중만의 독특한 교원공동체 문화 덕분이다.“교사도 상처를 받는다. 자기를 무시하고 권위적인 자세로 일방적으로 명령하는 교장에게 상처를 받기도 하고, 터무니없는 민원을 제기하는 학부모에게 상처를 받고, 서로 마음이 맞지 않는 동료 교사에게도 상처를 받는다. 이보다 더 큰 상처는 학생들에게 받는 상처이다. 그래서 학생과 교사의 내면의 아픔을 치유하는 훈련도 함께 했다. 학생들의 삶을 잘 이해하기 위해 ‘에니어그램을 통한 학생 이해’, ‘교사역할 훈련’, ‘비폭력 대화’, ‘셀프파워 인간관계 훈련’ 연수를 진행했다. 이런 모임을 통해 교사들은 서로의 삶을 개방하고 나누는 경험을 하고, 그 과정을 통해 동료의 마음과 삶을 좀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아이들을 만나면서 겪었던 아픔을 들으면서 서로 위로했고, 업무 추진 과정에서 서로에게 미쳤던 영향들을 나누면서 자발적인 사과와 용서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업무 중심이었던 학교에서 서로의 마음을 위로하고 지지하는 생활공동체로 거듭나면서 교사들은 학생들을 넉넉하게 품을 수 있는 자생력을 갖게 되었다.”(<평화의 교육과정 섬김의 리더십>, 이준원·이형빈 지음)

 

“교육에서는 교사 이전의 교사인 학부모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지난 6일 오후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 중인 이준원 전 덕양중 교장.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선생님들하고 ‘비폭력 대화’(마음속의 화나 폭력을 가라앉히는 대화법) 공부까지 하셨잖아요. 제안했을 때 선생님들이 흔쾌히 좋다고 하셨나요?

 

“믈론 다 그러지는 않았어요. 저의 교육철학이나 학교경영 철학에 완전히 공감하는 선생님들에게 먼저 충분히 설명하고, 그분들이 중간 리더가 되어 또 전달하는 형태로 했어요. 톱다운 식으로 내려보내는 게 아니라 아무리 좋은 것이더라도 선생님들이 반대하면 기다리고 늦추거나 안 하는 걸로 하고요. 그러나 정말 의미 있고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면 선생님들은 합니다. 해보라고 지시만 하고 교장이 뒤로 물러서 있으면 안 되죠. 같이 계속해야 하죠. 존중과 경청을 아이들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들에게는 더 충분히 들어주고, 그들이 가진 자율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어요. 자신들이 꿈꿨던 교육과정을 실천해서 그것이 현실화되는 모습을 본 선생님들은 굉장히 성장하고, 주인의식과 자발성이 생깁니다.”

 

_________‘공부하자’고 부모들에게 일일이 전화

 

덕양중이 또 하나 특별한 부분은 학부모들이 동원의 대상이 아니라 학교 운영의 주체라는 점이다. 공식적인 기구인 학부모회는 형식이 아니라 매월 한번씩 ‘학부모 아카데미’를 스스로 조직해 공부할 정도로 활동이 활발하다. 한부모 가정 아이 등을 위한 ‘이모 되어주기 프로젝트’, 엄마처럼 아이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갈등 부엌’, 건강한 간식을 제공하는 ‘휴 카페’ 등을 학부모들이 직접 운영한다. 학부모들의 이런 자발적 참여는 ‘이슬비 사랑 학부모 교실’의 열매이자 뿌리다. 이준원은 교장 첫해인 2012년 봄부터 퇴임 때까지 매주 목요일 저녁 ‘학부모 교실’에서 아이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법을 함께 고민했다.

 

―학부모들이 학교에 와서 교장 선생님과 내면 치유 공부를 한다는 게 쉽게 상상이 잘 안 가요.

 

“부임한 뒤에 선생님들한테 그런 계획을 얘기했더니 학부모 총회나 입학식에도 몇명 안 오는데 교장이 매주 한번 강의한다고 하면 몇명이 오겠냐고 부정적으로 대답하더군요. 저는 단 몇명만 와도 하겠다고 했어요. 그러곤 학부모 총회 때 설명한 뒤에 신입생 학부모 중심으로 제가 직접 전화를 걸어 ‘새 교장인데 이렇게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죠. 그러면 ‘마트에서 일한다. 빨라야 8시 퇴근이다’라고 답하는 분이 많았어요. 이에 저는 ‘자녀교육을 위한 건데 그럼 9시에 시작하면 괜찮겠냐’는 식으로 얘기했죠. 교장 전화를 받아본 적이 없어서 마음에 감동이 왔나 봐요. 폐교 직전이어서 전교생이 140명밖에 안 되던 때인데 첫해에 40명이 신청했어요. 1년간 끝까지 수료한 분이 18명 정도였고요. 그분들이 새 학부모들한테 꼭 들으라고 입소문을 내서 그다음부터는 쉬웠어요.”

 

―어떤 점이 좋아서 추천했다고 해요?

 

“자기 내면의 아픔, 성장 과정부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자존감이 낮았던 것, 남편과의 관계, 자녀와의 관계에서 상처받은 내면의 자존감이 많이 회복된 것을 좋아했어요. 그리고 그룹으로 모여서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중학생 자녀를 키우는 부모는 다 힘들구나 하는 것을 알고 서로 친구가 됐죠. 같은 학년 학부모지만 나이 차이가 많게는 10살인 사람들이 수료식 때 이런 얘기를 하더군요. ‘언니한테 한 이야기는 20년 된 친구에게도 얘기 안 한 거야’라고요.”

 

이준원 교장이 학부모들의 변화를 위해 지난 8년간 직접 이끌어온 덕양중의 ‘이슬비 사랑 학부모교실’. 이준원 제공

 

―그야말로 마음 상처를 치유하고 성장하는 거네요.

 

“학부모 교실의 첫 시간은 ‘우리 아이 자존감 높이기’를 주제로 특강 형식으로 시작해요. 그러면 다들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 좋은 대학 보낼까’에 대한 내용이구나 생각하면서 오죠.(웃음) 그러다 서서히 우리 아이 자존감을 방해하는 가장 큰 게 있다고 하면 깜짝 놀라죠. 그건 바로 나, 나의 마음이구나라는 것을 직면하게 되면 대략 5회차부터는 많이 울죠. 혼자 간직했던 나만의 비밀, 나만의 아픔을 말하고 서로 듣고 하면 끊을 수 없는 동질감이 생기고 친구가 되죠. 다큐(교육방송, ‘무엇이 학교를 바꾸는가’) 영상에 나온 교장실 테이블을 만들어준 엄마들 중 2012년부터 2014년도까지의 학부모가 많았어요. 공통점은 ‘저 녀석 어떻게 하지, 큰일 났다’며 자식을 걱정했던 분들이었어요.”

 

―아이들 챙기고, 교사 열정 불러일으키는 일도 힘들 텐데 학부모들한테 시간을 할애해야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됐나요?

 

“제가 1980년대 후반 중학교 2학년 담임할 때 정말 마음 아픈 사건이 있었어요. 한 여자아이가 공장에 다니는 스무살짜리 남자가 맛있는 것과 신발 등을 사주는 데에 넘어가서 그 남자가 원하는 대로 성적 노리개가 됐고, 결국 가출한 뒤 학교로 안 돌아왔어요. 이 여학생은 엄마 아빠로부터 단 한번도 따뜻한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도 부모는 자식을 잘못 둬서 그렇다고 푸념했어요. 저는 속으로 ‘당신들 잘못이야. 이 아이가 얼마나 사랑에 굶주렸으면 그런 거에 넘어가겠냐’고 생각했어요. 너무 가슴 아팠는데 해마다 그런 부모를 꼭 만나는 거예요. 그래서 부모가 제대로 바뀌지 않으면 학교에서 아무리 해도 소용이 없겠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리고 교장이 돼서 학교 경영을 해보니까 학부모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교육과정 재구성 등 아무것도 할 수가 없더군요. 결국 근원적인 아이의 변화를 위해선 교사 이전의 교사인 학부모의 역할이 더 중요하고, 학교가 바르게 가려면 부모가 교육철학을 같이 공유해야 해요.”

 

지난해 11월 덕양중 홈커밍데이의 한 장면. 덕양중은 교직원 회의도 이처럼 둥글게 둘러앉는 ‘서클’로 진행한다. 동등하고 자유로운 대화를 위해서다. 이준원 제공

 

_________학교 앞에서 8년간 혼자 자취한 까닭

 

―그런 교육이 더 필요한 부모들은 오고 싶어도 바빠서 못 오고,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분들이 참석하는 건 아닌가요?

 

“많은 분들이 올 수 있도록 저녁 7시 반에 학부모 교실을 시작했는데, 사실 어떤 분이 와도 괜찮아요. 누구나 다 상처가 있거든요. 어떤 면에서는 이른바 엘리트 부모들이 더 마음의 환자입니다. 하루하루 먹고살기 힘든 가난한 부모들보다 소위 일류대를 나오고 유학을 다녀온 가문의 자랑인 분들이 자녀를 더 힘들게 합니다. 그 아이들한테 우울증이나 자살충동도 많고요. 그분들이 받아온 교육이, 성적 잘 나오고 집안이 좋으면 특권의식을 느끼도록 부추겼기 때문이죠. 지금도 서울대 붙으면 동네에 이름 적은 플래카드가 붙잖아요.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도 월말고사 성적 1등부터 100등까지의 이름이 중앙 현관에 붙었죠. 특권의식과 우월감을 심어주는 굉장히 위험한 교육이에요. 그렇게 자란 사람들이 정치가나 고위공직자가 되면 성적이 안 좋은 사람은 사람도 아니게 되죠. 자기 아이가 성적이 안 나오면 창피하다면서 아이들을 더 억압하고요. 차라리 먹고살기 바빠서 방학을 했는지, 개학을 했는지, 숙제가 있는지도 모르는 부모 밑의 아이들은 좀더 자율적으로 건강하게 자랄 수도 있어요. 그래서 형편이 좋고 안 좋고 상관없이 학부모 교실에 누가 와도 된다고 생각했죠. 학부모 교실에서 교육철학을 공유하며 함께 공부한 부모들이 결국 저의 학교경영에 큰 지원군이 되었죠. 예를 들면 덕양중에는 왜 영어 교과서가 없냐고 누가 항의하듯 얘기하면 진짜 영어 교과서는 덕양중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맞도록 재구성한 책이라고 다른 부모들을 설득하더군요.”이준원은 지난 8년 동안 학교 근처에 방을 구해 혼자 자취생활을 했다. 덕양중에 온 정성을 쏟기 위해서였다. 아이들에 대한 가없는 사랑, 교육에 대한 높은 열정을 보여주는 일례다. 전교조 선생님일 거라고 지레짐작하고, 인터뷰 말미에 물었다. “아니요. 저는 현재 ‘좋은교사운동’ 회원이고, 퇴임 전까지는 교총에도 소속되어 있었어요. 그러나 전교조 선생님들도 좋아해요. 교육자로서의 헌신성이나 전문성이 대부분 뛰어나거든요. 덕양중에는 여러 교원단체 소속의 선생님들이 계시지만, 서로 존중하고 협력합니다.” 아주 오랜만에 참스승을 만났다.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녹취 홍혜원

▶김종철: 1989년 기자로 첫발을 내디딘 뒤 정치부, 사회부 등에서 일하다 현재는 토요판팀 선임기자로 현장을 뛰고 있다. 국가나 사회, 민족 등 추상적인 단어보다 그 실질을 이루는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사람을 더 좋아한다. ‘지금 여기’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따뜻한 이야기를 전하려 한다. ‘여운이 오래가는 기록’을 지향한다. ‘김종철의 여기’는 4주에 한 번 연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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