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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귀영의 프레임 속으로] 50대의 선택, 국가의 효능감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5. 8. 02:40

[한귀영의 프레임 속으로] 50대의 선택, 국가의 효능감

등록 :2020-05-07 18:19수정 :2020-05-07 19:24

 

한귀영 ㅣ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지난 총선 더불어민주당의 180석 차지라는 압도적 승리에는 50대의 지지가 결정적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출구조사에서 50대는 더불어민주당 49.1%, 미래통합당 41.9% 지지로 밝혀, 30·40대와 60대 이상 간 세대 대결 구도를 민주당 승리로 이끌었다. 총선 한 달 전까지도 50대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정부 여당에 역력히 비판적이었다. 이들이 왜 정부 여당 지지로 돌아섰을까?

 

선거에서 50대의 선택은 늘 승부를 판가름했다. 진보, 보수 양쪽 진영이 총결집했던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당선을 이끈 건 50대였다. 이들은 전 세대 중 투표율도 가장 높았고 박 후보 지지율도 무려 62.5%(출구조사)였다. 이 ‘보수적인’ 50대가 젊은 시절엔 민주진보파의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1950년대생이 주축인 이들은 1987년에 넥타이 부대로 민주항쟁을 지원했고, 2002년 대선에서는 캐스팅보트로 노무현 당선을 이끌었다. 나이 들면 보수화된다는 ‘연령효과’의 표본 사례다.

 

2020년의 50대는 다르다. 이들의 중추는 86세대로 민주화의 집단경험을 공유하며, 역사적 세대의식이 가장 강한 세대다. 이들이 40대였던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는 역대 어떤 40대보다 강력하게 민주진보 계열 후보를 지지했다. 50대가 되어서도 이 성향은 큰 변화가 없어 보인다. 성장기 또는 청년기 공통의 역사적 경험이 이후의 정치적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세대효과’를 대표하는 세대다. 연령효과와 세대효과 중 어느 쪽이 더 강력한가는 선거 연구자들의 오래된 연구 주제인데, 1987년 6월의 경험을 공유한 세대의 응집력, 진보적 지향성은 여러 연구에서 입증되어왔다.

 

사실 연령효과와 세대효과가 이렇게 이분법적이고 단선적으로 나뉘지는 않는다. 나이 들면 보수화되는 경향은 한국의 취약한 사회안전망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생애주기상 50대는 가구주로서 자식과 부모 부양, 자기 노후 준비 등 부담이 태산이다. 부담은 가장 큰데, 질병과 실직 등 위기가 현실화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 불안에 대한 자구책으로 한국인들은 그동안 부동산 등 사적 자산 투자에 의존해왔다. 공적 복지를 사적 자산 복지로 대체해왔다. 50대가 세금에 부정적이고 부동산 가격에 민감한 데는 이런 사정이 있다. 이들이 변화와 개혁보다 안정과 실용을 표방하는 정치 세력을 지지하고, 도덕성보다 당장의 현실 문제 해결 능력을 선택의 기준으로 삼아온 이유다. ‘진보는 도덕성, 보수는 능력’이라는 믿음이 강하던 시절, 50대가 보수로 기운 데는 이렇게 나름의 ‘합리적’ 이유가 있다.

 

지금의 50대는 다를까?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50대는 정부 여당에 분명히 비판적이었다. 갤럽의 3월 3째주 정기조사에서 50대의 문재인 정부 지지도는 부정평가가 50%로 긍정(43%)보다 높았다. 세금 거둬가고 부동산 시장은 규제하면서 경제문제 해결엔 무능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전환점은 코로나19 방역이었다. 진보적 성격의 정부가 앞장서서 방역을 지휘하고 경제에 호흡을 불어넣는 등 긴박하게 임무를 수행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좋은 정부의 효능감을 체험했다. 생명의 안전, 고용의 안전, 사회경제적 안전이 절체절명의 과제로 부각된 시간, 국가가 나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는 든든함을 체감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총선은 끝났지만, 본격적인 정치의 시간은 지금부터다. 일각에서는 30·40대라는 확실한 지지층에 50대까지 가세하면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도 민주진보파가 우세하리라는 전망을 한다. 유권자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50대가 19.7%로 60대 이상(27.2%)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보니 이런 전망에 힘이 실린다.

 

섣부른 승패 예측보다는 승리의 필요조건을 숙고할 때다. 관건은 코로나는 물론 삶의 위기마다 나와 가족, 사회를 지켜줄 든든한 사회안전망을 마련할 수 있느냐에 있다. 1997년 아이엠에프(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는 구조적으로 양극화, 각자도생 경향이 심화되어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 수준으로 취약한 사회안전망이 이 경향을 부채질했다. 부동산 등 사적 자산에 대한 욕망은 생존 욕망이기도 했다. 50대가 꽤 오래 이 흐름에 합류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마침 전 국민 고용보험 등 사회안전망을 위한 정책과 담론들이 제기되고 있다. 진짜 국가를 느낄 시간이다. hgy421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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