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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열 칼럼] 21대 국회, ‘특권’ 내려놓기부터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5. 8. 02:20

[이만열 칼럼] 21대 국회, ‘특권’ 내려놓기부터

등록 :2020-05-07 18:21수정 :2020-05-07 19:52

 

‘1인당 국민소득의 5.27배’에 이르는 의원 보수는 ‘OECD 국가 중 3위’로 높지만, 국민적 합의를 거쳐 이뤄진 것이 아니란다. 삯꾼이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을 대변한다는 의식으로 의원직에 임한다면 주인이 원치 않는 특권은 내려놓아야 한다. 그대로 둔 채 의원직을 수행한다는 것은 특권에 연연하는 삯꾼에 불과할 것이다.

 

‘코로나19’ 광풍 속에서 지난달 15일에 300명의 의원이 선출됐다. 한두 당선자의 대북 발언이 유감스러웠지만, 유권자들은 조용히 격려하며 21대 의원들을 국회로 보낸다. 높은 투표율은 20대 국회가 보여준 무능과 갈등을 넘어서라는 격려일 것이다. 20대 국회는 ‘동물국회’와 ‘식물국회’로 표현되는 싸움판과 나태함을 겸했으나 자신들의 기득권 수호에는 강고했다. 새로 시작되는 국회는 20대 국회와 차별화하면서 시작해야 한다. 그렇다면 자신을 부각시킬 ‘한방’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것이 바로 ‘특권을 내려놓겠다’는 한마디였으면 한다. 이는 백마디 미사여구보다 호소력과 창조력이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의원들은 밖에서 들으면 ‘깜짝 놀랄 특권들을 스스로 만들고 누려’왔다. 국회의원이 국민과 동고동락하는 존재가 아니라 특권층으로 치부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 사실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것은 그 특권을 합리적으로 차마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국회 스스로도 ‘특권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인지했음인지, 그 폐기를 고심한 적이 있다. 20대 국회가 출범했던 2016년, 의장(정세균)실 주도로 ‘국회의원 특권내려놓기 추진위원회’가 출범, 가동되었으나 성과를 도출하지는 못했다. 2018년에도 ‘국회 운영제도개선 소위’에서 의장이 제시한 안건을 상정까지 했으나, ‘보좌진 특혜 채용 제한’ 등 한두 가지를 제외하고는 성사시키지 못했다. 특권에 기생하려는 ‘선량들’의 의식이 강고했기 때문이라는 것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필자의 이 글은 당시 ‘특권내려놓기 추진위원회’의 보고서를 참고로 했다.

 

국회의원들이 누리는 특권은 없애야 한다. ‘추진위원회’의 보고서는 고액의 보수 외에 50여 가지의 물질적·사회적 편의가 제공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필자도 그 구체적인 세목을 헤아리면서 특혜의 가짓수가 많고 세밀한 부분에 미치고 있음에 놀랐다. 그런 세심한 배려가 이 땅의 환과고독(鰥寡孤獨)을 향한 정책으로 나타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국민을 대표하여 입법·예산·국정감사 등을 수행하는 분들에게 최대의 지원을 해야 한다는 것에 누가 반대하겠는가. 그러나 의원이 자기 특권을 고집하는 한 우리 사회의 불필요한 특권을 제어하지 못할 것은 뻔하다. 지금 논란 중인 의원 특권을 온존시킨다는 것은 국민의 기대를 외면한 채 의정활동을 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국민이 특권 포기를 요청하는데 이를 계속하겠다면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는 존재일 수가 없다. 국회의원의 특권 포기는 국민의 신뢰를 얻는 첩경이다. 유권자는 그런 의원을 통해 긍지를 갖게 되고, 의원들은 그런 국민적 지지를 바탕으로 더 적극적인 의정활동을 펼 수 있다.

 

국회의원의 특권 중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이 특권은 오남용되는 사례로도 자주 거론되었고, 국회의 회기를 이용하기도 했다. 그 본래의 취지를 살리면서 이 특권의 오남용을 방지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 ‘1인당 국민소득의 5.27배’에 이르는 의원 보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3위’로 높지만, 국민적 합의를 거쳐 이뤄진 것이 아니란다. 의원 보수는 유신 시대에 ‘수당’의 개념으로 전환되어 감사나 증빙이 필요 없게 되었고, 거기에 “많게는 매월 기천만원을 생활비로 가져가도 세금이 없는 ‘입법활동비’, ‘특별활동비’ 등이 추가”되면서 기형적 구조로 변했다. 따라서 일본식 용어인 ‘세비’(歲費) 개념을 고쳐 국회의원의 전문직에 해당하는 ‘보수’로 명명하고, 세금을 명확히 하며 ‘입법활동비’, ‘특별활동비’ 등 조세 회피성 항목도 삭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의 생산성이 저 모양인데도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과다한 급부는 의원직을 타락시키는 요인이라 지적된다. 특권 내리기 작업은 임기가 남아 있는 20대에서 시작해 21대에서 완성한다면 이는 새 국회를 탄생시킨 국민의 염원에도 부응하여 박수를 받게 될 것이다.

 

매사에 때가 있다. 국회가 새로 시작되는 이 시점에 의원들의 특권 포기가 나타났으면 좋겠다. 삯꾼이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을 대변한다는 의식으로 의원직에 임한다면 주인이 원치 않는 특권은 내려놓아야 한다. 그대로 둔 채 의원직을 수행한다는 것은 특권에 연연하는 삯꾼에 불과할 것이다. 특권을 내려놓으면 주인인 국민에게 다가가 더 충실한 공복(公僕)이 될 수 있다. 선거 때 섬기는 자가 되겠다는 약속을 수많은 특권을 누리면서 지킬 수 있을까. 국회 상임위 등에서 공직자들을 향해 고압적 태도를 보이는 의원들, 자기들이 움켜쥐고 있는 특권이 어른거린다. 특권을 포기할 때 더욱 낮아지고 섬기며 감동을 주는 의원의 모습이 더 드러난다. 의원이 누리는 특권을 내려놓아야만, 공무원을 포함한 공직사회의 특권들을 제대로 광정(匡正)할 수 있을 것이다.

 

국회의원이 특권을 내려놓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내려놓으면 국민을 감동시킨다. 특권을 내려놓을 때, 국회의원이라는 공적 권력이 사익 추구의 수단이 아니고 공공재임을 명징해 준다. 이를 지실한 듯, 20대 국회에서 지난 3월 한 법사위원(박주민 의원)이 국회의원윤리조사위원회, 체포동의안 표결 의무, 이해충돌 입법 제한, 국회 불출석일수 비율에 따라 ‘수당 또는 입법활동비’를 환수하는 취지의 법률개정안을 대표발의한 적이 있다. 그런가 하면 9명의 보좌진을 거느리고도 제대로 된 법안 한 건 제출하지 않는 의원도 있다. 마침 21대 의원 당선자 중 연락이 닿는 261명을 상대로 한 전화 질문에서 과반수가 회의 출석률이 낮은 의원의 세비를 깎도록 하자는 데 동의했다는 뉴스도 있었다. 고무적이다.

 

입법활동비의 적정 환수가 식물국회를 방지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면, 동물국회를 방지할 수 있는 방안도 필요하지 않을까. ‘선량’다운 품위는 정적을 향한 독설에서도 격조 높은 해학으로 나타난다. 디즈레일리와 글래드스턴 두 정치인이 번갈아가며 국정을 맡아 빅토리아 시대를 창출한 것은 그들의 품위있는 언설도 한몫했다. 의장석 주변에 종종 나타나는 동물국회 모습은, 발언대 앞에 출입금지선을 명시하고 위반 시에 엄벌하는 국회법이 제정된다면 시정될 수 있을까. 21대 국회는 다수를 점한 여당이 국회 운영의 주도권을 확보한 데서 출발한다. 국회 운영 책임을 진 여당은 수십년간 지적돼온 ‘불필요하고 과도한 특권’을 내려놓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고 했다. 21대 국회의 출발에 즈음하여 국회의원이 특권을 내려놓는다면, 국회의 품격은 올라갈 것이고, 국민은 존경과 찬사의 박수를 보낼 것이다.

이만열 ㅣ 상지학원 이사장·전 국사편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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