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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비대면과 대면하기 / 김회승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6. 4. 04:23

[아침햇발] 비대면과 대면하기 / 김회승

등록 :2020-06-02 18:21수정 :2020-06-03 17:01

 

경기도 부천 쿠팡 물류센터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집단으로 발생한 27일 오후, 물류센터에 담장에 운영 중단을 알리는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연합뉴스

 

거리두기는 여전히 낯설고 불편하다.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참상이 벌어지기에 ‘그 덕분에 그래도 우리는 괜찮은 것’이라 안도하고 산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방역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생각했는데, 어느샌가 ‘언택트 경제’ ‘비대면 경제’란 명명과 함께 꽤 괜찮은 미래 청사진으로 진화하는 것 같다. 디지털 기술이 비대면 사회를 가능케 할 것이라며, 우리를 포함해 국가적 차원의 비전을 제시한 나라도 여럿이다. 비대면 사회는 과연 ‘성큼 다가온 미래’일까.비대면 사회가 가져다주는 효용은 양면적이다. 누군가에겐 디지털과 인공지능으로 연결된 세상이 안전과 편의를 담보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더 바쁘고 위험한 일상을 요구한다. 최근 코로나가 번진 물류센터와 콜센터는 비대면을 가능케 하는 대표적인 ‘대면 노동’ 현장이다. 코로나 위기로 일감이 늘었고 기존 일자리가 끊긴 이들이 몰려 다닥다닥 붙어 일했다. 교회와 클럽은 안 가면 그만이지만, 밥벌이 일터는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어느 물류센터 일용직은 코로나 이후 늘 새벽 첫차를 탔다고 했다. 몸이 조금 으스스하면 곧장 종합감기약을 사 먹었다. “코로나에 걸리거나 재수없이 격리되면 일을 못 하잖아. 내가 못 벌면 우리 가족은 끝장이야.” ‘몸이 아프면 일단 쉬라’는 방역당국의 당부가 그에겐 조금 면구스럽다. 다른 나라들은 어떤가. 인도에선 위생이 취약한 빈곤층 거주지역을 감염 방지를 이유로 전면 봉쇄했다. 얼마 못 가 도심 부촌 곳곳에 쓰레기가 잔뜩 쌓였고 봉쇄는 일부 완화됐다. 케냐도 빈곤층 거주지 봉쇄로 도심의 자동차 통행이 한동안 거의 올스톱됐다. 휘발유를 집 앞까지 실어다주는 ‘리어카 노동’이 멈춰선 탓이다. 평소 존재감 없던 ‘그들의 노동’이다. 설국열차 앞칸의 안전과 풍요는 이렇게 위험을 피할 수 없는 뒤칸 노동 덕분이라면, 너무 자학적인가.재난으로 뒤칸 노동에 닥친 고통은 다급하고 절박하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얼마 전 ‘팬데믹은 가난한 사람을 얼마나 더 뒤처지게 하는가’라는 연구보고서에서 2000년 이후 발생한 5차례 팬데믹의 경제적 영향을 분석했다. 조사 결과 175개국은 발병 이후 5년에 걸쳐 불평등지수(지니계수)가 평균 1.5% 상승했고, 76개국은 교육 수준이 낮은 노동자 일자리가 5% 이상 감소했다. 정부가 상당한 재정을 투입해 소득 재분배 등 불평등 완화 조처를 취했음에도 나타난 결과다. 코로나 이후 정부의 재난 지원 정책을 포풀리즘에 퍼주기라 규정하는 정치와 언론이 있다. 이들은 경제가 어려우면 서민이 가장 고통받는다 걱정하는 척하면서, 아랫목에 불을 때면 윗목도 미지근해질 것이란 언설을 편다. 그래서 더 파렴치하다.감염병 대유행이 앞으로는 2~3년 간격으로 닥칠 수 있다고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영원히 퇴치할 수 없다는 전망도 있다. 어쩌면 지금의 거리두기가 실제 미래의 일상이 될지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이쯤에서 속도전을 멈춰야 한다. 예컨대, 오전에 클릭하면 오후에 물건을 받는 로켓 배송, 주문 15분 뒤 도착하는 배달음식 따위부터 없애면 된다. 이런 속도전이 우리의 일터와 일상을 얼마나 위험에 빠뜨리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있지 않은가. 별로 어렵지도 않다. 일주일 뒤 물건이 배송됐거나 음식 배달이 조금 늦었다고, 항의하거나 반품하지 말고 감사히 받으면 된다. 그러면 배달·분류 노동자의 교대 근무도, 적당한 거리두기도 가능하게 될 것이다. 조금 더 ‘공정한 재난’이 되면, 공동체는 훨씬 더 안전해질 것이다.코로나 위기 이후, 과연 자본주의는 극강의 가속도를 제어할 수 있을까. 그럴 것 같지 않다. 성큼 다가온 미래는 외려 속도를 더 높여 문제 해결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배달과 물류 노동이 문제라면, 아마도 드론과 로봇으로 이들을 대체할 것이다. 콜센터가 문제라면 인공지능 서비스를 도입할 것이다. 문명의 과속이 빚은 생태 위기와 감염병 재난임을 망각한 채.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은 “아파도 쉴 수 없고, 모두의 안전을 위해 노동하는 이들을, 우리는 과연 정의롭게 대우하고 있느냐”고 묻는다. 함께 위기를 극복하자면서, 정말 함께하고 있는지, 자문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다.

김회승 ㅣ 논설위원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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