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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세상] 노벨상과 코로나19 / 김우재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6. 4. 04:17

[공감세상] 노벨상과 코로나19 / 김우재

등록 :2020-06-01 17:17수정 :2020-06-02 14:05

 

김우재 ㅣ 초파리 유전학자

 

알프레드 노벨은 스웨덴 사람이다. 그는 1833년 스톡홀름에서 태어나, 발명가인 아버지를 따라 소년기의 대부분을 러시아에서 보냈다. 유럽과 미국 유학 후, 폭약공장으로 부자가 된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 화약생산에 뛰어들었다. 전쟁이 끝나고 니트로글리세린으로 만든 다이너마이트로 노벨은 다국적기업의 회장이 된다. 1895년 유언장에서 그는 평화, 문학, 물리, 화학, 의학 및 생리학의 5개 분야에 주는 상에 유산 대부분을 할당했고, 그 상의 이름은 노벨상이 되었다.

 

1833년의 조선은 난세였다. 세도정치가 지속되었고, 곧 권력을 잡은 흥선대원군은 나라 문을 걸어 잠갔다. 노벨상이 만들어진 1895년, 청일전쟁으로 동아시아는 격랑에 휩싸였고, 조선에는 을미사변이 일어났다. 20세기가 시작된 1901년, 최초의 노벨 생리의학상은 에밀 폰 베링이라는 전염병 연구자에게 수여되었다. 한국에는 아직 과학자라 불릴 만한 사람이 없었고, 식민지에서 뛰어난 과학자로 자라날 우장춘이 3살, 이태규와 석주명 등은 태어나지도 않은 시대였다. 120년 전 이 땅엔, 과학이 없었다.

 

2020년, 코로나19가 전세계를 흔들자 유난히 두 나라가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다. 노벨상을 수상한 적도 없는 한 나라는 어느새 전세계에 코로나19 진단키트를 공급하며, 방역의 기준을 세웠다. 노벨상을 수여하는 나라는 집단면역이라는 오명을 쓰면서까지 끝내 봉쇄 대신 일상과 자율을 선택했다. 현재 스웨덴의 인구 100만명당 코로나19 사망자 수는 400여명으로 5명에 불과한 한국의 80배를 웃돈다. 스웨덴보다 이 수치가 높은 나라는 스페인, 벨기에, 이탈리아 등이 전부다. 노벨상은 코로나19를 막지 못했다.

 

코로나19 방역에서 과학자와 의학자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과학자 특유의 합리적 태도로 국민을 안심시키며 독일 방역을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정은경 질병관리본부 본부장의 현장성과 합리적인 판단능력은, 빠르게 진단키트를 생산해낸 과학자들의 노력과 함께, 코로나19 사태에서 한국이 가장 능동적으로 대처할 기반을 마련해주었다. 미국과 일본은 정치적 리더십의 비과학적 태도로 코로나19 사태에서 가장 뒤처져 있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견제하는 과학자 앤서니 파우치 박사의 역할에 희망을 걸고 있다.

 

스웨덴처럼 과학을 대표하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에서 언급된 스웨덴 방역체계에 따르면, 스웨덴은 한국처럼 질병관리본부가 행정부에 종속되어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공공보건청이 행정부와 독립적으로 모든 결정을 내린다고 한다. 따라서 이번 스웨덴 방역정책의 모든 책임은 현 공공보건청장인 안데르스 텡넬과 총리 스테판 뢰벤에게 있다. 텡넬은 여러 인터뷰에서 “한국식 차단 관리는 유행을 피할 수 없고” “스웨덴식 방역이 장기적으로 유일한 해법이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뢰벤 총리 또한 방역을 스웨덴 시민들의 높은 시민의식과 자율에 맡기며 자신의 역할을 끝냈다.

 

그 결과는 참담하다. 노인요양시설을 중심으로 퍼진 코로나19는 노인 수천명의 목숨을 빼앗아 갔고, 심지어 자율방역을 택한 스웨덴 국민 중 항체를 보유한 비율은 7.3%도 안 된다. 텡넬의 전임자였던 안니카 린데 박사는 초기에 빠른 봉쇄를 하지 못했던 정부와 보건청을 비판했고, 이제야 스웨덴은 봉쇄정책을 검토하고 있다. 스웨덴의 자율방역은 실패했다.

 

스웨덴이 실패한 지점에 민주주의와 과학이 숙고할 주제들이 놓여 있다. 노벨상으로 대별되는 최첨단 과학은 과연 사회의 공공선에 기여하는가. 과학이 사회에 기여하기 위한 민주주의적 제도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전염병 같은 위기상황에서 모두를 위한 민주주의적 해법은 무엇인가. 서구 개인주의와 자율은 민주주의가 존속하기 위한 절대적 법칙인가. 이제 한국에서 동아시아의 민주주의와 과학의 자리에 대해 세계가 함께 고민할 수 있길 바란다. 그럴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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