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석제표 능청과 의뭉스러움
등록 :2020-06-12 06:00수정 :2020-06-12 09:43
내 생애 가장 큰 축복
성석제 지음/샘터·1만3000원
성석제(사진)는 소설가라기보다는 이야기꾼이라는 호칭이 더 어울리는 작가다. 일상의 사소하고 평범해 보이는 국면도 그의 날카로운 관찰력과 촌철살인의 문장을 거치면 세상에 다시 없도록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탈바꿈하곤 한다. 이즈음은 ‘짧은 소설’로도 불리는 콩트는 그런 성석제의 특장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장르라 하겠다.
< 내 생애 가장 큰 축복>은 그가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월간 <샘터>에 연재했던 ‘짧은 소설’을 추리고 다듬어 내놓은 책이다. 콩트의 핵심적인 ‘영업 비밀’은 허를 찌르는 반전에 있다. ‘되면 한다’는 제목의 글에는 두 단어의 초성을 바꿔 발음하는 증상인 스푸너리즘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 사비 회만원이야”라는 한 인물의 말이 시작이었다. 회비가 사만원이라고 해야 할 것이 그런 수수께끼 같은 문장이 되었다. 이 사람은 ‘삶은 달걀’을 ‘닮은 살걀’이라 부르고 ‘하면 된다’를 ‘되면 한다’로 바꾸기도 한다는데, 그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되면 한다’는 성석제식 능청과 의뭉스러움의 정수를 담은 말처럼 들린다.
“산 좋고 물 좋고 경치 좋고 인심 좋”은 시골 마을에 어느 날 보트며 휴대용 원동기, 진공 흡입기, 포충망 같은 첨단 도구를 가지고 나타난 외지인들이 냇물의 다슬기를 싹쓸이해 가려 한다. 동네 사람들의 대응은 어떠했던가. 일을 마친 외지인들이 풍성한 수확물을 트럭에 싣고 떠나려는데, 번호판도 열쇠도 없는 낡은 트랙터 한 대가 마을 길을 가로막고 서 있다. 주민들에게 물어도 트랙터 주인은 알 수가 없다. 시간은 흘러 날이 저물고, 주민들은 외지인들에게 일회용 커피며 막걸리에 호박전과 파전을 대접하며 어디까지나 친절하게 굴지만 트랙터 주인은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외지인들은 결국 자기네가 잡은 다슬기와 다슬기 채취 도구까지 동네에 ‘영구 임대’ 하고 걸어서 마을을 빠져나갈 수밖에 없었다고.(‘애향심의 탄생’)
트럭으로 오일장을 돌며 물건을 파는 김 주사. 만 원을 받고 티셔츠 두 장을 팔려는 그와 오천원에 한 장만 사려는 시골 사내의 신경전은 결국 시간을 등에 업은 사내의 승리로 끝이 나는데, 장터를 빠져 나가는 사내의 등에 대고 ‘반품은 없다’는 경고성 멘트를 던지려던 김 주사는 ‘반품’이라는 낱말이 떠오르지 않자 결국 이런 ‘축복’의 말로 거래를 마무리한다. “담 장날에 돈 마이 벌어와서 나머지 반동가리도 꼭 사가이소, 어이?”(‘다음에, 나머지 반도’)
글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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