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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의 역사의식, 깜짝 놀랐어요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6. 13. 07:14

학생들의 역사의식, 깜짝 놀랐어요

등록 :2020-06-12 06:01수정 :2020-06-12 10:32

 

최초의 전국단위 초중고 역사의식조사 10년간 기록
지역 성별 학년별로 달라지는 학생들 역사인식 분석

역사의식조사, 역사교육의 미래를 묻다
역사교육연구소 지음/휴머니스트·2만원

 

학생들은 교실 안팎을 넘나들며 역사 인식을 키워나간다. ‘국정화교과서 반대 청소년행동' 소속 학생들이 지난 2016년 11월27일 오후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국정화 역사교과서 철회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는 장면.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우리나라 학생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역사인물은 누굴까? 지난 2014년 역사교육연구소가 전국 16개 지역 초등학교 고학년 128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중요한 역사 인물 1위는 세종대왕(701명, 54.6%)인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은 이순신(293명, 22.8%), 유관순(69명, 5.4%) 차례였다.

 

1988년 창립한 전국역사교사모임과 2009년 발족한 역사교육연구소가 전국 단위 초·중·고 역사의식조사 결과를 담아 책을 냈다. 2010년 전국 초·중·고등학교 학생 5638명과 교사 69명이 참여한 최초의 대규모 조사부터 10년간에 걸친 끈질긴 연구를 종합한 것이다. 2016년까지 조사팀은 중등 5회, 초등 3회에 걸쳐 전국 단위 대규모 학생 조사를 진행했는데 참여 학생 수만 누적 1만3104명에 이르렀다.

 

책은 조사 과정 전반을 소개하고 결과를 분석한 뒤 역사 교육의 과제와 나아갈 길을 모색했다. 조사 결과를 보면, 지역에 따라 사뭇 다른 학생들의 역사의식이 눈에 띈다. 2015년 연구자들이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중심으로 대구, 서울, 광주에서 각각 남녀 8명씩 총 24명과 면담을 진행한 결과가 특히 흥미롭다. 당시 대구 지역 남학생들 사이에는 신군부가 내린 5·18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지속적으로 수용하고 군부 진압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담론이 널리 퍼져 있었는데, 일간베스트(일베)를 비롯한 비공식 경로들이 이런 담론을 강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여학생들의 경우 “대구 지역 여학생 집단”이라고 묶을 수 있을 만큼 의견의 편차 없이 ‘인권’ 측면에서 이 사건을 바라보았다. 부모세대와 달리 이들은 ‘공식 역사’가 기록한 5·18의 서사를 수용하고 “부모와 언성을 높일 정도로 갈등”하고 있었다. 광주는 부모 세대의 기억이 전승되어 광주 시민으로서 자긍심을 내비치는 경향이 있었고, 서울 지역 학생들은 교과서적으로 5·18을 이해하며 무관심으로 흐르기도 했다. 공식 역사와 비공식 역사가 충돌한 대구 지역 학생들은 “내외적 혼란과 갈등” 속에 오히려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는 것이다.

 

역사 교육이 ‘민족’ ‘국가’에 머물지 않고 다원적 관점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지만 여전히 현장에서는 과거에 대한 특정 해석을 지지하고 학생들에게 직접적으로 이를 전달해 학생들이 비판 없이 수용하는 측면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전국 초·중·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대한민국은 단일국가’라는 주장에 어느 정도 동의하느냐고 물었더니 2010년부터 2016년까지 30%가 넘는 학생들이 꾸준히 ‘단일민족’이란 논리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족주의와 민주주의가 충돌할 때 학생들은 민족주의의 손을 들었다. 연구자들은 학생들이 “국가 중심, 지배층 중심, 혈통이나 영토 중심의 민족주의 서사 구조에 익숙”한 데 따른 것이라고 보았다.

 

공저자 김육훈 교사(서울공업고등학교)는 “역사교육은 정확한 사실을 가르치는 데 목표를 두기보다 엉터리 뉴스, 가짜 역사를 판별하는 미디어 리터러시의 능력을 기르는 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교실이 지식의 주입 공간이 아니라 역사와 세계사 인식의 플랫폼으로 정보를 선별하며 자기 생각을 펼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곳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공저자 강화정 교사(부산 신정고등학교)는 “민간에서 어렵사리 진행하다가 비록 중단되었지만 향후 국가가 역사교육 정책을 만드는 기반으로 이 사업의 취지를 살려 계속 조사를 이어가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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