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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손정우 불송환 ‘권위적인 개소리’ / 임재성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7. 9. 06:28

[세상읽기] 손정우 불송환 ‘권위적인 개소리’ / 임재성

등록 :2020-07-08 17:37수정 :2020-07-09 02:40

 

임재성 ㅣ 변호사·사회학자

 

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물 공유 사이트 ‘웰컴투비디오’(W2V)의 운영자였던 손정우에 대한 미국 송환이 불허되었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6일 “대한민국이, 주권국가로서, 범죄인에 대해 주도적으로 형사처벌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며 미국 법무부의 범죄인 인도청구를 거절하였다. 서지현 검사는 이 인도거절 결정에 대해 ‘권위적인 개소리’라 평했는데, 더 적절한 표현을 찾기 어렵다. 왜 개소리인지, 왜 위법한 판결인지 살펴보자.

 

서울고등법원의 인도거절 결정 이유는 이렇다. 손씨의 범죄수익은닉 행위는 한국에서 처벌할 수 있고, 손씨가 미국으로 인도되면 웰컴투비디오에서 성착취 영상을 소비한 이들에 대한 추가 수사에 지장이 생길 우려가 있으며, 범죄인을 인도하지 않는 것이 성착취 관련 범죄의 예방과 억제라는 측면에서 대한민국에 상당한 이익이 있다는 것이다.

 

먼저, 미국이 손씨의 인도를 요청하면서 제시한 범죄는 국제자금세탁이다. 이에 대해서 한국 검찰은 제대로 된 수사를 하지 않았고, 당연히 기소하지도 못했다. 반면 미국은 이미 2018년 8월 손씨의 자금세탁에 대해 충분한 증거를 확보해 기소했다. 두 국가 모두 재판관할권을 가지는 상황에서 한쪽에선 이미 수사와 기소까지 이루어진 상황이고, 다른 쪽은 수사가 시작도 안 된 상황이라면 범죄인을 어디로 보내는 것이 타당한가?

 

‘우리 국민은 우리가 재판한다’라는 ‘자국민 불인도’ 원칙은 외국의 차별적인 재판제도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취지에서 생성된 원칙이지만 현재에 와서는 그 타당성을 상실하였다는 것이 지배적인 평가이다. 4개국이 공조하고 30여개국이 협조하여 수사한, 범죄자의 국적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국적까지 다양한 이 사건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손씨를 미국으로 보내면 한국 수사기관에서 웰컴투비디오 이용자들을 추가로 밝혀내는 것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는 이유는 읽으면서 눈을 의심했다. 언제부터 법원이 수사기관의 장래 업무까지 걱정했는가? 이 사이트가 운영된 다크웹은 철저한 익명성이 전제된 네트워크이기에 손씨의 신병 확보만으로 더 나은 수사가 이루어진다는 근거도 없다. 한국 경찰과 검찰은 이미 2년 전 이 사이트 회원 중 확인할 수 있는 한국 국적자에 대해서 수사를 끝냈고, 추가 수사계획은 없다는 입장이다. ‘수사 차질 우려’는 불송환의 적법한 근거가 될 수 없다.

 

손씨가 한국에서 범죄수익은닉 혐의로 기소되고 재판을 받는 것이 대한민국에서 성착취 범죄가 예방·억제되는 데 이익이 된다는 대목에서는, ‘판사님들’이 우리들과 동시대에 살고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손씨가 한국에서 재판을 받고 처벌을 받아야 한국 사회에 더 많이 보고되고 공론화되어 ‘일반예방’의 효과가 발생한다는 취지인데, 도대체 그 근거가 무엇인가? 손씨가 미국에서 재판을 받고 수감될 경우 그 보도량은 한국에서 사법절차가 진행될 때보다 절대 적지 않을 것이다. 아니, 훨씬 많을 것이다. 미국에서 재판을 받으면 거리가 멀어 한국에는 잘 안 알려지고 사회적 경각심도 안 생긴다는 이 20세기적인 염려. 역시 부당한 인도거부 사유이다.

 

캐나다 최고법원은 1989년 미국 대 코트로니(Cotroni) 사건에서 범죄인 인도청구 국가와 피청구 국가 간에 모두 재판관할권이 있는 경우 1) 범죄로 인해 발생한 충격, 2) 범죄인 기소에 따른 이익, 3) 사건의 실체를 드러내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한 수사기관, 4) 재판 절차를 개시할 준비 여부 등을 범죄인 인도 여부 판단 요소로 제시했다. 미국은 웰컴투비디오 사건 수사를 주도했고, 이미 증거를 확보해 기소까지 마쳤다. 국적조차 특정할 수 없는 수천, 수만의 아동·청소년 피해자들이 끔찍한 고통에서 조금이나마 회복될 수 있도록, 가해자가 미국 법정에서 재판을 받아 전 세계에 널리 보도되는 것은 개별 국가의 이익을 압도한다.

 

웰컴투비디오에서 가장 많이 검색된 키워드는 “%2yo”, “%4yo”였다. 2살, 4살 아동을 뜻하는 용어다. 이 끔찍한 반인륜적 범죄를 주도한 손씨라고 하더라도 적법한 절차에 따라 처벌받아야 한다. 미국이 한국보다 더 중하게 처벌하니 손정우를 미국에 보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서울고등법원의 인도거절 사유가 부당하며, 미국에서의 재판이 적법한 절차이기 때문이다. 위법한 결정은 취소되어야 하지만, 서울고등법원의 인도거절 결정은 불복절차가 없는 단심제이다. 미국 법무부가 부디 인도청구를 다시 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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