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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혹시 아동성착취를 찬성하나요? / 권김현영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7. 9. 07:01

[세상읽기] 혹시 아동성착취를 찬성하나요? / 권김현영

등록 :2020-07-07 17:29수정 :2020-07-08 13:59

 

권김현영 ㅣ 여성학 연구자

 

세계 최대의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웰컴투비디오’의 존재는 아동 강간 교사 및 영상을 공유한 매슈 폴더가 잡히면서 알려졌다. 매슈 폴더는 영국 법원에서 징역 25년형을 받았다. 미국 텍사스주의 리처드 그래코프스키는 아동성착취물 1건을 수령하고 소지한 혐의로 징역 5년10개월, 보호관찰 10년형을 받았다. 웰컴투비디오의 운영자 손씨가 받은 형량은 1년6개월이었다. 로라 비커 비비시(BBC) 서울 특파원은 달걀 18개의 절도범에게 18개월을 구형한 사건과 비교하며 꼬집었다. 달걀 하나에 1개월의 형량이라면 25만건의 영상에 최소한 250년쯤은 나왔어야 하는 게 아닐까. 나는 이 꼬집힘이 꽤나 아프고도 부끄러웠는데, 재판부의 생각은 달랐던 모양이다. 손씨의 미국송환불허를 결정한 재판부(주심 강영수)는 국제적 성범죄자를 눈앞에서 풀어주는 이유에 대해 ‘주권’을 언급했다. 재판부의 말대로 주권국가인 대한민국은 범죄인에 대해 주도적으로 형사처벌 권한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미 판결이 나왔고 그 결과가 1년6개월이었으며 형을 다 살고 나온 상태였다. 바로 그 주권을 재판부가 그따위로 행사했기 때문에 국민들은 참지 못하고 손씨를 미국으로 송환하라고 청와대에 청원했던 것이 아닌가. 이렇게 참담한 청원을 한 게 우리가 주권이 없어서인가? 주권국가의 권한을 행사하라는 책임자들의 무능과 부정의에 대한 분노 때문에 이런 청원이 일어난 것이 아닌가. 왜 재판부는 부끄러움을 모르는가.

 

얼마 전 <차이나는 클라스>(JTBC)에 출연하여 디지털성범죄에 대해 설명할 기회가 있었다. 법 개정도 중요하지만 사법부의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이 지속되는 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설명을 하니 홍진경씨가 물었다. “혹시 법원은 아동성착취에 대해서 찬성하나요?” 모두가 실소를 터트렸다. 찬성하는 것이 아니라면 대체 왜 이런 솜방망이 판결이 계속되는 걸까. 손씨의 경우만 봐도 가해자가 혼인하여 가족을 구성했다는 이유 등이 재판부에 감경 사유가 되었다. 미국 송환을 필사적으로 막고자 한 아버지는 아들이 중학교 중퇴를 하기 전까지 거의 학교에 가지 않았다고 했고, 좁은 집에서 전세를 사는 것이 안타까워 돈벌이를 궁리하다가 벌어진 일이라며 선처를 호소했다. 중학생 아들이 학교에 가지 않았다면 교육적 방임 혐의로 아동학대 조사를 받아야 하고, 범죄수익을 통해 가정 경제를 꾸려갔다면 그 자체로 이해관계를 공유한 공범일 가능성이 있지는 않을까? 사회정의를 위해 재판부는 대체 무엇을 했는가? 그가 저지른 범죄행위가 매우 심각한 중범죄라고 생각을 아예 못 했던 것이 아닌가?

 

한국의 법에서는 법관에 대한 징계를 법관의 독립성 확보와 직결된다고 보고 징계의 범위와 정도를 헌법상으로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법관에 대한 해임 또는 파면 등은 오직 탄핵과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었을 경우에만 가능하다. 법관징계법에 따르면 법관에게 내릴 수 있는 징계는 1년간의 정직이 최대치이다. 지하철에서 치마를 입은 20대 여성을 불법촬영하다가 현행범으로 검거된 현직 판사에게 내려진 징계는 감봉 4개월이었다. 현직 판사가 불법촬영 현행범으로 잡혀도 탄핵은커녕 정직조차 받지 않았던 것이다. 반면 미국의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유권자들에게 법관을 해임하게 하는 권한을 부여한다. 2015년 성폭행 피해를 본 샤넬 밀러는 재판 과정 내내 부당한 질문을 받아야 했다. 목격자와 증거가 다 갖추어진 사건이었지만 재판부는 가해자의 전도유망한 미래를 걱정했고 그 결과 가해자에게 6개월 형을 내렸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재판이 끝난 다음 피해자의 진술서가 공개되었다. 이 진술서를 읽은 1100만명의 사람들은 캠퍼스 성폭력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완전히 바꾸었고 법정이 얼마나 부정의했고 편향적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여론이 바뀐 결과 담당 판사는 파면되었다. 유권자에게 법관을 해임하게 하는 권한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법관의 지위를 철저하게 보호하는 한국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게 있다. 지금은 대법 판례에서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말을 최초로 언급한 권순일 대법관의 후임을 뽑고 있다. 참고로 손씨의 미국 송환 절차를 불허한 강영수 판사도 대법관 후보에 올라있다. 이런 사람이 권순일 대법관의 후임이 되어서는 곤란하지 않겠는가. 우리에게는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를 보호하는, 법의 권위보다 사회정의를 중시하는 대법관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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