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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충격과 안타까움 안긴 박원순 시장의 죽음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7. 11. 03:28

[사설] 충격과 안타까움 안긴 박원순 시장의 죽음

등록 :2020-07-10 18:24수정 :2020-07-11 02:34

 

10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박원순 서울시장 빈소에서 시민이 조문을 하고 있다. 사진 서울시 제공

 

박원순 서울시장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비보에 참담함을 금할 길 없다. 우리 사회의 진보적 변화를 이끌어온 사회혁신가이자 3선 서울시장으로 활발한 시정 활동을 펼친 그의 급작스러운 죽음은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그러면서도 박 시장이 숨지기 전날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했다는 사실은 커다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이 비극적 사태 앞에 만감이 교차한다.

 

박 시장은 한국 사회에 시민운동의 씨앗을 뿌리고 길러온 인물이다. 1994년 참여연대 설립을 주도하고 반부패, 정치개혁, 사법개혁, 재벌개혁 등 오랜 기득권의 고리들을 끊어내는 운동에서 선구적 역할을 했다. 그가 이끈 참여연대가 민주화 이행기에 우리 시민운동의 위상을 획기적으로 다졌다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또 2000년대 들어 아름다운재단, 아름다운가게, 희망제작소 등 사회적 나눔과 혁신의 창의적인 모델로 시민운동의 영역을 넓혔다. 앞서 암울했던 1980년대에는 인권변호사로서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등의 변론을 맡아 민주주의를 지키는 데 힘을 쏟았다.

 

새로운 사회를 향한 실험과 분투는 2011년 첫 당선 이후 서울시장을 세 차례 연임한 행정가의 길에서도 계속됐다. 토건 중심의 도시정책 방향을 복지, 균형발전, 도시재생 등으로 전환해나갔다. 그가 추진해온 전국민 고용보험, 개발이익 광역화, 공공의과대학 설립, 서울형 그린뉴딜 등 선제적 정책들은 서울시가 앞으로도 이어가야 할 것이다.

 

그런 박 시장 삶의 마지막 장에서 성추행 고소 사건이 불거진 것은 그저 놀랍고 황망할 따름이다. 1993년 국내 처음으로 성희롱 문제를 법적으로 공론화한 ‘서울대 신 교수 사건’에서 피해자를 대리해 승소를 이끌었고 시정을 펼 때도 성평등 정책과 성인지 감수성을 강조해온 박 시장이기에 더욱 할 말을 잃게 된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오거돈 전 부산시장 사건의 잇따른 충격 속에 맞게 된 일이라 착잡함이 더하다.

 

고소 사건은 박 시장이 숨짐에 따라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될 터라 사법 절차로 진상을 가릴 기회는 없어졌다. 고소인도 난감한 처지에 놓이게 됐음을 헤아릴 필요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박 시장의 극단적인 선택을 고소인의 책임으로 돌리고 신상을 밝혀 공격하는 ‘2차 가해’는 철저히 경계해야 할 일이다. 성추행 사건에서 고소인 보호의 중요성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박 시장은 유서에서 “모든 분에게 죄송하다. 내 삶에서 함께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고 했다. 이 마지막 말이 그와 함께해온 이들에게, 또한 그에게 상처받은 이들에게 얼마만큼 위안이 될지는 가늠하기 힘들다. 다만 그가 남긴 공로를 누군가 더 살려가고 그의 과오로 누군가 더 아파하지 않는 게 박 시장을 떠나보내며 가슴에 품게 되는 바람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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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박원순 서울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