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언론

[홍은전 칼럼] 재난 속 인권활동가들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7. 21. 08:38

[홍은전 칼럼] 재난 속 인권활동가들

등록 :2020-07-19 16:39수정 :2020-07-20 15:09

 

코로나 시대에 역행하는 이 엄청난 밀접접촉은 3개월이나 지속되었다. 뉴스에선 그들을 ‘의인’이라 칭송했지만, 그들이 한 가장 의로운 일은 재난 현장에 뛰어든 것 그 자체가 아니라 새로운 재난을 탄생시킨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홍은전 ㅣ 작가·인권기록활동가

 

영수(가명)의 확진을 알리는 문자는 아주 간단했다. “확진되었습니다. 자가격리하면서 기다리세요.” 대구의 장애인권활동가 민제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속으로 ‘망했다!’ 하고 외쳤다. 영수는 3년 전 장애인시설에서 나온 발달장애인이었고 자가격리가 불가능한 사람이었다. 2월28일 밤 10시였다. 대구에서 기하급수적으로 확진자가 늘던 때였고 청도대남병원에서 하루에 한명씩 정신장애인들의 사망 소식이 들려오던 때였다. 어렵게 연결된 담당자에게 영수의 상황을 알리고 한시라도 빨리 입원해야 한다고 말하자 담당자는 병상이 없다며 대답했다. “지금 대기 중인 사람만 600명입니다. 장애인이 문제가 아니라고요.” 해일이 밀려오는데 조개를 주우라는 것이냐, 반문하는 듯한 그 태도에 민제의 분노가 솟구쳤다.

 

당장 새벽이 오면 영수의 집으로 가서 당신이 지금 어떤 병에 걸렸고 앞으로 어떤 일이 있을지에 대해 설명해야 했다.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그에게 되도록 비장하고 엄중하게 이 상황을 전하되, 방법을 찾겠다고, 당신을 절대 혼자 두지 않겠다고 약속하며 그를 안심시켜야 했다. 뭐라도 먹게 해야 했다. 그리고 영수와 함께 사는 또 다른 발달장애인을 영수로부터 분리해야 했으므로, 그가 당분간 지낼 공간을 확보해 방역도 해야 했다. 무엇보다 두 발달장애인과 ‘함께 격리’되어 이들의 생활을 지원할 활동가를 정해야 했다. 높은 확률의 감염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일이었다. 대책이 없었으므로 감행하는 수밖에 없었다.

 

밤 11시에 모인 활동가들이 한바탕 전쟁을 끝냈을 때는 새벽 6시였다. 병상은 언제 나올까. 그를 지원하는 활동가가 감염되면 어떻게 책임져야 할까. 머릿속으로 수도 없이 상상했던 일이었지만 막상 닥치니 마음이 너무나 괴롭고 힘들었다. 해일이 덮쳤는데 장애인의 피해는 조개처럼 가볍게 취급되었다. 구명조끼마저 비장애인들이 먼저 차지했다. 도망조차 갈 수 없었던 사람들이 청도대남병원에서 속수무책으로 스러졌지만 사람들은 그저 ‘장애인이니까 죽었다’고 했다. 기다릴 수 없었다. 민제는 자신의 에스엔에스(SNS)에 이것이 장애인에게도 재난임을, 장애인의 목숨도 소중함을 알렸다. 구조를 요청했고 대책을 촉구했다.

 

코로나19라는 새로운 재난을 나는 그가 전한 소식을 통해 배웠다. 대구의 활동가들은 발달장애인이 살고 있는 집으로 매일매일 출근해 하루를 함께 보냈다. 손을 씻도록, 마스크를 쓰도록, 외출을 자제하도록, 답답함을 풀 수 있도록, 삼시 세끼를 잘 챙겨 먹도록 도왔다. 코로나 시대에 역행하는 이 엄청난 밀접접촉은 3개월이나 지속되었다. 그들은 서로에 대한 강력한 연결망을 구축함과 동시에 재난 시 사회적 돌봄 시스템을 마련하라고 이 사회를 향해 촉구했다. 뉴스에선 그들을 ‘의인’이라 칭송했지만, 그들이 한 가장 의로운 일은 재난 현장에 뛰어든 것 그 자체가 아니라 새로운 재난을 탄생시킨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코로나가 아니라 코호트가, 바이러스가 아니라 대책 없는 거리두기가 누군가에겐 더 큰 재난임을 알린 것 말이다.

 

한바탕 해일이 쓸고 간 자리엔 아무도 사라지지 않고 모두가 무사했다. 나는 영수를 지원했던 활동가 수진에게 그때의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다. 그는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고 울먹였다. “우리니까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라고 말할 때도 울먹였고, “우리가 잘못해서 감염된 게 아닐까, 우리가 늦게 알아채서 병을 키운 게 아닐까” 할 때도 울먹였다. “우리가 아픈 그를 돌봐야 하는데 나는 총괄자니까 네가 해주면 좋겠다고 동료에게 말했다”고 할 때도 울었고, “모든 게 잘 해결되었는데도 왜 아직도 자꾸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고 할 때도 울었다. 나는 세월호 생존자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배가 침몰할 때 서로의 손을 잡고 끌어당기고 버티느라 팔뚝의 핏줄이 다 터져버린 걸 한참 뒤에 알았는데, 그걸 보고서는 뭔가 서러움이 복받쳐서 계속 울었다는 이야기였다. 수진에게 터진 것은 팔뚝의 핏줄이 아니라 마음의 핏줄, 눈물샘 같았다.

 

재난 상황에서 인권단체의 활동은 더욱 절실히 요구된다. 정부의 지원이 미치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그 공백을 메우고 이 사회가 잘 듣지 않는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먼저 듣고 외친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이 재난은 위기다. 후원금이 줄어 임차료와 인건비를 걱정해야 하는 곳도 많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인권단체와 활동가들을 위해 ‘인권재단사람’이 긴급모금 ‘인권온’ 캠페인을 하고 있다. 곁의 곁이 절실히 필요하다.(www.onhumanright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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