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언론

“박 시장 업적 많지만 그의 죽음을 피해자에게 투사하면 안돼”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7. 23. 05:42

“박 시장 업적 많지만 그의 죽음을 피해자에게 투사하면 안돼

등록 :2020-07-22 04:59수정 :2020-07-22 07:25

 

김은형 논설위원의 직격인터뷰 | 배복주 정의당 여성본부장

지금은 2차 가해 막고 고통 겪는 이에게 지지 보내야 할 때
“그럴 분 아니다”라는 평판이 피해자에게 위력으로 작동할 수도
서울시는 조사 대상…감찰권 가진 독립적 외부기관이 조사를

심기 보좌? 고위직 의전 범위 명확히 하고 사적 지시 없애야
민주당 ‘중대한 잘못’ 땐 재보선 후보 안 낸다는 약속 지키길
정의당 갈등, 다른 의견 공존할 수 있는 방안 지도부가 찾아야

배복주 정의당 여성본부장이 지난 17일 오후 서울 은평구 불광동 한 강의실에서 <한겨레>와 직격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박원순 시장의 성추행 피소와 죽음으로 인해 우리 사회는 말 그대로 ‘충격과 혼란’에 빠졌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비위 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벌어진 지방자치단체장 성폭력 의혹에 분노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성평등적이고 인권친화적인 시정을 이끌어온 박 시장에게 안타까운 마음을 가진 이들도 많다. 의혹과 의심이 꼬리를 무는 현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건 공정하고 객관적인 진상 규명이다.

배복주 정의당 여성본부장은 대학 졸업 뒤 장애여성공감,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상임대표 등으로 활동하며 20년 동안 장애인·여성 인권운동을 해왔다. 특히 2018년 ‘안희정 성폭력 공동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하며 대법원의 ‘위력에 의한 성폭력’ 판결이 나오기까지 554일 동안 피해자의 곁에서 함께 싸웠다. 현재 성폭력 2차 가해를 막기 위한 입법 발의를 준비 중인 배 본부장과 17일 만나 진상 조사의 방식, 권력형 성폭력 문제 해결책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배 본부장은 이번 사건이 우리 사회 전체를 충격에 빠뜨렸지만 안희정 성폭력 사건 때와는 다른 희망도 보인다고 말했다. 당시엔 권력형 성폭력을 개인의 일탈 문제로 바라봤지만 지금은 구조를 들여다보려는 움직임이 늘면서 시각의 전환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다. 배 본부장은 “개인의 일탈로 이야기를 풀어가면 문제의 핵심에 접근하기 힘들다”며 “일탈로 이끄는 구조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균열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당장 이렇게 선언하면 된다. 우선 모든 장관과 국회의원, 지자체장, 기관장 등 고위공직자의 의전 범위를 명확히 정하고 그 외에는 부당 업무로 간주한다. 이 한마디로 성차별적이고 폭력적인 관행에 균열이 시작될 수 있다.”―지난 16일 한국여성의전화 등 피해자 지원단체가 ‘서울시 진상규명 조사단 발표에 대한 입장’을 내놓은 뒤 서울시가 조사단을 꾸리는 게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서울시는 조사 주체가 아니라 조사 대상이어야 한다. 서울시가 조사단 구성을 주도할 경우 실효성과 신뢰성에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서울시는 조사 대상이라는 걸 인지하는 게 우선이고 조사 주체는 외부기관이 돼야 한다. 상급기관이 될 수도 있고 별도의 기구나 국회가 나설 수도 있다. 핵심은 조사권과 감찰권이 있는 독립적이고 전문성이 있는 기구다. 그래야 조사의 공정성과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다.”―진상 규명 조사단이 꾸려지면 현재 진행되는 경찰 조사 등과는 어떤 차별성을 가질 수 있나?“경찰 조사는 고소된 특정 혐의에 대한 수사로 한정된다. 인권위가 직권 조사에 나서더라도 박 시장의 인권침해 의혹에 대해서만 조사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서울시에 대한 전체적인 조사가 필요한 상황이다. 특히 16일 나온 피해자 쪽 입장문을 보면 서울시의 전체적인 조직문화까지 세밀히 살펴봐야 할 필요성이 드러난다. 전문성 있는 독립기구의 철저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문제가 드러난다면 책임질 부분에 대해 철저히 책임을 묻고 여성가족부가 재발 방지와 조직문화 개선을 위한 이행 계획을 서울시로부터 받아서 이행을 강제하는 절차까지 포함해야 한다.”―진상 조사에서 반드시 규명해야 하는 것들은 무엇인가?“피해자 호소에 따르면 4년 동안 피해를 겪었고 여러번의 도움 요청과 전보 요청도 있었다는데 이 요청이 어떤 라인에서 어떻게 묵살됐고 피해가 이어지도록 했는지 과정과 배경, 직접 연결된 관계자가 누구인지 정확히 밝혀내는 게 중요하다. 피해 여성이 5월12일 변호사를 처음 만나고 그달 말 이틀에 걸쳐 심층면담을 한 뒤 7월8일에 고소를 했다. 이 기간도 매우 중요하다. 그 사이 서울시가 정말 몰랐는지, 알았는데 묵살을 한 건지, 묵살됐다면 어느 선까지 알고 있었는지 등도 밝혀져야 한다. 고소 당일인 8일부터 박 시장이 세상을 떠난 10일까지의 타임라인도 구체적으로 밝혀져야 한다. 누가 어떻게 박 시장에게 고소 사실을 알렸고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구체적인 과정이 드러나고 누군가 책임질 부분이 있다면 책임을 물어야 한다. 특히 고소장 유출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반드시 밝혀야 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드러나는 무수한 실체적 사실은 피해자가 말하는 지난 4년간의 시간을 재구성하는 퍼즐 조각들이다. 이 조각들을 완벽하게 맞춰야 많은 이들의 의문이 풀리고 반복되는 공직자 성비위 문제가 제대로 해결될 수 있다.”―2018년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상임대표로 안희정 성폭력 공동대책위원회에서 피해자 지원 활동을 했다. 554일 동안의 싸움 끝에 대법원의 ‘위력에 의한 성폭력’ 유죄 판결이 나면서 공직자 성범죄 문제를 보는 우리 사회의 인식이 성숙했다고 많은 이들이 생각했는데, 오거돈 부산시장 성추행에 이어 박원순 시장 성폭력 의혹까지 터졌다.“2018년 1월 서지현 검사에 이어 3월 김지은씨의 미투가 벌어지면서 고위공직자 성폭력 논란의 ‘광풍’이 불었다. 당시 우리는 성폭력이 악마 같은 가해자의 잔인한 폭력이 아닌 권력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라는 걸 알리는 데 집중했다. 긴 싸움이었지만 법원이 ‘위력 성폭력’을 인정함으로써 이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고, 성폭력을 판단할 때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검토가 가능해졌다는 게 큰 성과였다. 또 당시 여성가족부를 중심으로 ‘범정부 성희롱·성폭력 근절 추진 점검단’ 설치 규정을 국무총리 훈령으로 만들어 각 기관마다 신고센터와 고충상담원을 배치하고, 공공기관장 성폭력 사건 처리 매뉴얼도 배포하는 등 공직자의 성비위 근절을 위한 많은 제도와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는 게 드러난 셈이다. 절망스러울 지경이다.”―제도 보완으로도 막지 못한 구멍이 무엇이었나?“안희정 사건의 경우 개인의 위력 행위에 대한 싸움을 하다 보니 충남도에까지 책임을 묻지 못했다. 안 전 지사나 오거돈 전 시장처럼 선출직 고위공직자가 성비위를 일으키면 사퇴와 동시에 모든 게 끝난다. 지자체의 책임은 증발해버린다. 안희정 사건 당시 충남도부터 왜 이런 문제가 발생했고 어떤 관련자 징계가 이뤄졌으며 재발 방지를 위해 어떤 개선 노력을 할 것인지 보여줬어야 했는데 하지 않았다. 부산도 마찬가지다. 조직의 철저한 책임 규명과 대책 발표가 중요한 이유는 다른 지자체나 기관에서 이를 보고 학습하는 효과가 있다. 성인지 감수성도 개인의 노력으로만 생기는 게 아니라 문제가 발생했을 때 조직이, 사회가 그것을 제대로 해결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키워가는 것이다. 이런 절차들이 작동하지 않고 개인의 비위로만 끝나면 관행은 반복될 수 밖에 없고 성인지 감수성도 길러질 수 없다. 진상 조사를 강조하는 이유도 왜 발생했고 어떻게 조사했고 무슨 책임을 물었으며 어떤 개선책을 내놓는지까지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는 걸 전례를 통해 뼈저리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서울시는 지자체 중에서도 성평등적인 정책과 인권친화적인 제도 정비가 잘되어 있었고, 박 시장은 누구보다 성인지 감수성이 높은 인물로 평가받았다. 그런 면에서는 안희정 사건 때보다 훨씬 더 큰 충격을 줬다. “성평등을 위한 시 차원의 거버넌스 체계는 잘되어 있는데 하나도 제대로 작동이 안 됐다는 게 너무나 답답하고 의아하다. 기자회견문을 보면 피해자가 피해 호소를 했는데 “그럴 분 아니다”라며 묵살했다는 대목이 있다. 박 시장이 가진 평판이 피해자의 호소를 사소하게 만드는 위력으로 작동한 거다. 아무리 평판이 좋아도 상급자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으면 조사를 해야 하고 하다못해 고충상담원과 상담해보라는 조언이라도 할 수 있는데 안 한 거다. 피해자가 아무도 내 말을 믿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니까 기자회견이라는 어떻게 보면 극단적인 방법을 택한 것 아니겠나.”―피해자 지원단체의 2차 입장문을 보면 성차별적, 성폭력적인 업무가 일상적이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특히 이른바 ‘심기 보좌’가 비서의 주요 업무인 것으로 나오는데 사실이라면 정작 내부의 조직문화가 서울시 정책에 반했던 것 아닌가?“안희정 사건 때 수행비서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도지사의 심기를 보좌하는 것이었다는 김지은씨의 증언이 있었다. 비단 안희정뿐 아니라 거의 모든 정치권이나 고위공직자의 비서직들에게 이런 업무가 강요된다. 심기 보좌라는 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너무나 불평등한 언어다. 그럼에도 이를 중요시하다 보니 사적 영역의 일이 비서란 이름으로 너무 쉽게 공적 업무로 전환된다. 게다가 여성 비서는 돌봄 노동이 여성의 일이라는 편견 때문에 이런 업무들을 더 잘해내기를 강요받는다. 결국 이게 정책보다 더 질긴 관행이 돼버린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 비서실에서 일어났던 행위들이 철저히 조사돼야 하고 문제 되는 업무 지시가 사실로 드러나면 강한 징계가 있어야 한다.”―안희정 사건 때보다 훨씬 더 복잡한 실타래를 풀어나가야 할 것 같다.“피고소인이 이제는 고인이 돼버린 이 상황에서 싸움의 목표는 뭘까, 누구와 무엇과 싸워야 하는가가 피해자뿐 아니라 성폭력 문제의 해결을 원하는 모든 이들의 고민이 되었다. 안희정 사건이 위력 성폭력과의 싸움이었다면 박 시장 사건은 집단화된 위력과의 싸움인 것 같다. 이건 비단 서울시 조직의 문제뿐 아니라 박 시장이 사라진 공백 안에서 결집된 위력 집단이 피해자를 향해 퍼붓는 일체감 있는 비난의 목소리까지 포함된다. 다시 말해 안희정 사건 때의 법정 투쟁이 아닌 성차별적 거대한 관행, 또는 문화와 싸우게 될 것이다. 이 가운데 성희롱, 성추행 사안을 방조하거나 묵인했던 사실이 드러난다면 측근들은 사회적 공범이라고 말하고 싶다.”―서울시뿐 아니라 더불어민주당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아닌가?”안희정 사건 때 민주당이 쇄신했어야 했는데 그걸 하지 않은 게 이후의 사건들을 이어지게 했다. 오거돈 시장 사건까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여러번 있었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유일하게 내놓은 게 중대한 잘못으로 직위를 상실해 재·보궐선거를 하게 되면 후보자를 내지 않는다는 당헌 규정이다. 이것만이라도 지키는 걸 보여야 한다. 그게 공당으로 최소한의 책임을 지는 모습이다. 더불어 문제가 반복되는 걸 막으려면 소속 지자체장이나 국회의원 성비위 사건에 무관용 원칙의 징계 시스템을 만들고 공천 과정에서 철저한 검증과 함께 강도 높은 성인지 감수성 교육을 강제하는 공천 시스템 개혁에도 나서야 한다.”―정의당에서 장혜영, 류호정 의원과 심상정 대표의 조문에 대한 엇갈린 논평이 당원들의 갈등으로까지 이어졌다.”정의당이 피해자, 사회적 약자 편에 서야 한다는 큰 원칙에 이견은 없다고 본다. 두 의원은 약자, 소수자를 대변하는 정당의 원칙에 기반해 피해자에 대한 지지를 선언한 것이다. 심 대표는 애도 문화에 대한 정서를 고려해 양해를 구하려던 건데 ‘사과’라는 표현에 갇혀버리면서 결과적으로 메시지에 혼란을 주게 되어 안타깝다. 여전히 봉합되지 않은 측면도 있지만 당내 토론을 통해 해결해나가는 게 중요하다. 합의가 되면 좋겠지만 안 되더라도 다른 의견이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지도부가 찾아야 한다.”―피해자가 호소문에서 본인과 가족의 안전과 일상 복귀를 호소했다. 성폭력 사건 해결의 마무리는 피해자의 일상 복귀일 텐데 김지은씨도 아직까지 일을 하거나 사회활동에 나서지 못하는 등 후유증이 너무나 크다.”제일 중요한 건 2차 가해를 멈추는 것이다. 그런데 개인에 대한 호소로는 멈춰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구조가 멈추게 해야 한다. 서울시가 2차 가해를 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선언하고, 드러난 2차 가해에 대해서는 경찰이 신속하게 수사를 해야 한다. 나 또한 인권변호사로 시민운동가로 박 시장을 존경했던 사람이다. 그의 많은 업적은 존중되어야 하고 역사에 남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건 고통을 겪는 사람에게 힘과 지지를 보내는 것이다. 그게 박원순 시장의 철학이었고 정치적 신념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박원순 시장의 비극적 죽음을 피해자에게 투사하면 안 된다. 피해자는 피해자일 뿐이다.” dmsgud@hani.co.kr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신청

 

연재논설위원의 직격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