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 이야기- 소설
은혜 추천 0 조회 20 20.07.19 15:41 댓글 0
현재페이지 URL복사 http://cafe.daum.net/seungjaeoh/J74U/100?svc=cafeapiURL복사
게시글 본문내용
노숙주는 눈앞의 화려한 광경 때문에 눈이 부시고 몸이 공중으로 뜨는 느낌이었다. 하늘 문이 열렸는데 그곳에 보좌가 있고 하나님이 보좌 주변은 무지개가 있어 보좌를 둘렀는데 그 후광이 눈이 부셔 감히 쳐다볼 수가 없어 머리를 숙이고 쭈그려 앉았다. 하나님의 얼굴은 볼 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았지만, 보좌에 둘려 이십 사 장로들이 흰옷을 입고 앉아 있는 것과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변에 여섯 날개를 가진 네 짐승이 둘러 있는 것은 보였다. 숙주는 정말 자기가 죽어 천국에 온 것일까 하고 생각하였다. 얼마나 오고 싶었던 천국인가? 처음으로 교회에 나와서 성경공부도 하고 세례도 받았으며 이웃 사람들로부터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자 천국을 소망하며 살게 되었는데 천국에 오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보니 보좌 앞에 예수님 같은 분이 서 있었고 또 그 앞에는 오동포동하고 예쁘게 생긴 사람이 서 있었다. 옷을 걸치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남자도 아니고 여지도 아니었다. “당신은 누굽니까?” “나는 당신을 안내하는 천사입니다.” “그럼, 여기가 천국이요?” “아닙니다.” “그럼, 당신이 나를 천국으로 인도하려고 여기 나와 있소?” “아닙니다.” “당신은 무엇을 안내하는 천사입니까?” 천사는 슬프거나 기쁜 표정이 아니었다. 다만 온화하고 부드럽다는 느낌을 줄 뿐이었다. 온 세상은 대낮보다도 밝은 곳이었다. “여기를 찾아오는 사람은 모두 당신 같은 질문을 하므로 이곳 천상의 세상에 적응하도록 설명하고 돕는 오히려 도우미라고 생각하면 더 좋을 것입니다.” “천국에 오면 하나님을 거울로 보는 것처럼 보지 않고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수 있다고 했는데 하나님은 왜 안개 속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습니까?” “아직 그때가 차지 않았습니다. 이곳은 천국이 아니라고 했지요. 천국이 아니고 낙원입니다.” “그 말이 무슨 말입니까?” “아직 예수님께서 재림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람은 영과 육이 있는데 예수를 믿는 분의 영은 다 죽어서 이곳 낙원으로 와 있으며 육체는 무덤에 가 있습니다. 당신은 영과 육이 다 이곳에 와 있는 것이 아니며 영만 와 있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많은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흰옷을 입고 재단 아래 있어 큰 소리로 ‘거룩하고 참되신 통치자님, 우리가 얼마나 더 오래 기다려야 땅 위에 사는 자들을 심판하시고 또 우리가 흘린 피의 원수를 갚아 주시겠습니까?’라고 호소하는 소리가 안 들립니까? 이들도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는 성도들의 영입니다.” “우리 교회의 박 장로님은 예수 믿고 죽으면 요단강을 건너 천당 간다고 했는데 천당이 아니고 낙원이라니 이게 무슨 말입니까?”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라는 주님의 말씀을 못 들었습니까? 천국, 천국 하는데 당신은 정말 천국에 갈 확신이 있습니까?” “구원받았는데 물론 있지요. 나는 내 모든 재물을 하늘에 쌓았습니다. 나는 노숙자로 가진 것이 없습니다. 또 이제부터는 예수만 믿고 살기로 결심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천국은 당신의 뜻이나 행위로 가는 곳이 아닙니다. 당신보다 훨씬 많이 일한 영혼들이 다 이곳에 잠들어 있습니다. 아니 주님과 영적인 교제 속에 안식하고 있다 해야 옳겠지요.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면 그때 홀연히 다 변화되어 주를 맞게 될 것입니다.” “그때 천국에 간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크고 흰 보좌 앞에서 모두 심판을 받게 되는데 그때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이 드디어 천국에 가게 됩니다. 당신의 뜻대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아직 아무도 천국에 가본 사람이 없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는 머리가 혼란해졌다. 요단강을 건너면 주의 손을 붙잡고 기쁨으로 주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곳이 천상의 세상이 아니었던가? 생명 시냇가에는 생명 나무가 무성하고 그 나무는 열두 가지 열매가 매월 열리고, 주의 보좌에는 만국 백성이 둘러서 천사의 노래로 화답하며 흰옷 입고 황금 길로 다니며 황금 문, 황금 종이 있는 보좌에서 우리를 위해 예비한 면류관을 씌워 주시는 것이 아니던가? 그렇게 노래하던 천국을 아직 아무도 가보지 못했다는 말인가? “천국에는 하나님 영광의 빛이 태양 빛보다 밝다고 했는데 그곳에는 다이아몬드의 빛과 석류석과 사파이어와 루비의 반작거림과, 값진 진주의 광채도 있습니까? 또 지상에서 쌓은 공력으로 들어가 누릴 고대광실도 있다고 들었는데 정말 그런 것이 있습니까?” “그런 말을 많이 듣는데 주께서 재림하시기 전에는 천국에 가본 사람이 없으며 아직 들어간 사람이 없습니다.” “무슨 말인지. 그럼 나에게 돌아가신 박 장로를 보여 주십시오. 그분은 나 같은 노숙자들을 모아 주일마다 예배 인도를 돕고 계셨던 분입니다. 나를 새 사람으로 태어나게 해준 사람이란 말입니다. 노숙자들에게 교통비도 주고, 점심도 주고, 이발도 해주었으며 자기를 희생하여 예수를 전한 분입니다. 분명 그분은 이곳에 있을 것입니다.” “물론 만날 수 있습니다. 어떤 모습을 보기 원하십니까? 교회에서 활동 하실 때? 아니면 돌아가시기 직전?” “그런 여러 가지 모습으로 장로님이 이곳에 계십니까?” “그렇습니다. 이곳은 우주만큼 광활한 천상입니다. 당신이 말하는 박 장로뿐 아니라 돌아가셔서 낙원에 온 모든 사람의 모든 과거 모습들이 다 이곳에 있습니다. 대용량 메모리칩에 여러 가지 형상이 다 들어있다고 생각해도 됩니다. 단추만 누르면 그들이 삼차원의 가상현실의 영상이 나타날 것입니다.” “무슨 단추를 어떻게 누른다는 것입니까?” “간단합니다. 눈을 감고 2, 3분만 보고 싶은 그분의 모습을 상상하십시오. 그리고 눈을 뜨면 됩니다.” 노숙주는 박 장로의 사랑을 특별히 많이 받았다. 그가 회사 임원으로 있으면서 전산처리도 잘하고 통솔력도 있는 것 같아선지 박 장로는 집에 있는 옷도 갖다 주며 노숙자 반 예배 인원이 200명이 넘자 자기 어깨에 손을 얹고 예배 모임의 책임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던 분이다. 갑자기 간암으로 돌아가셨지만, 그분의 인자한 모습을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 교회는 베데스다 부에서 각 노숙자에게 주일마다 교통비를 주며 그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는데 강 부목사가 노숙자들의 예배도 인도하며 성경공부도 인도하였다. 그들을 돕는 많은 바나바라는 명칭을 가진 도우미들이 사랑으로 그들을 도왔다. 그러자 노숙자들이 변하여 용기를 얻고 작은 일자리를 찾아 나서며 교회에서 주는 교통비를 거절하고 일반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이 모든 것은 이 팀, 박 장로의 희생적인 봉사 때문이었다. 노숙자들은 산뜻하게 이발을 해주면 목욕탕을 찾아가고, 목욕하고 나면 깨끗한 옷을 입으려 하고, 깨끗한 옷을 입으면 노숙자 생활을 청산하였다. 새롭게 거듭나고 세례를 받은 자도 많아졌다. 눈을 감고 이렇게 교회에서 희생적으로 일하던 박 장로를 상상하다 눈을 떴다. 그러자 그의 영상이 나타났다. 마치 박물관의 전시실에서 내용을 설명하는 사람의 입체 영상처럼 그가 눈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온화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웃고 있지도 울고 있지도 않았다. 슬픈 모습도 아니었다. 노숙주는 반가워 “장로님!”이라고 부르며 다가가 보듬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잡히지 않고 그는 한자만큼 뒤에 다시 서 있었다. “이건 박 장로 같지 않습니다.” “당연하지요. 박 장로는 지금 영계에 계십니다.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이곳에 오셨습니다. 이곳에는 다시 사망도, 슬픔도, 눈물도, 아픈 것도 없습니다. 육체를 가진 사람들의 흔히 갖는 감정이 없다는 말입니다.” “박 장로는 나를 못 알아보는 것입니까?” “알아보십니다. 세상에 있었던 과거의 살아있던 노숙주 씨가 아니라 영계에 온 친구로서 영통하는 것입니다.” “그럼, 박 장로님은 돌아가신 뒤 예수님 곁에 앉아 세상에 있는 우리 교회 노숙자 반을 위해 계속 중보(中保)하고 기도하지 않으셨다는 말입니까?” “그럴 수가 없습니다. 이곳에 오는 순간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다 망각해 버리니까요. 죽으면 누구나 요단강이라고 하는 망각의 레테 강을 건너게 됩니다. 흐느적거리며 온몸을 감싸듯이 조용히 흐르는 이 강이 생각나지 않습니까? 이 강을 건너면서 시간과 역사 속에 있는 이승은 완전히 그 강의 망각 속에 묻어버리고 이곳에 오는 것입니다.” “그럼 돌아가신 박 장로와 살아있던 우리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는 결론이네요.” “있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박 장로가 기도해서 일이 잘되고 저주해서 망한다면 세상에서는 예수님 말고 박 장로를 숭배해야지요. 박 장로가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군요. 죽은 망령들은 살아남은 사람들을 위해 아무 도움이 안 되는군요. 그런데 죽기 전에 왜 예수를 영접하고 가라고 그렇게 애를 썼던 것입니까?” “그렇게 해야 사후에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고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낙원에 들어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죽어 낙원에 있는 영들은 세상에 살아있는 가족과는 아무 상관이 없지만, 낙원에 있는 영들과 교제하시는 예수님만이 하늘의 영계와 땅의 세계를 자유로 오가며 성령을 받은 자녀들에게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이분은 낙원에 잠든 모든 영들을 대신합니다. 그 특수 계시 속에서 당신이 원하는 박 장로의 음성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럼 믿지 않고 죽은 사람은 어디로 갑니까?” “영혼은 ‘스올(sheol)’이라는 곳으로 가고 육은 무덤으로 갑니다.” “그곳에 간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다 육체를 입고 부활하여 심판을 받겠지요. 그래서 지옥 불에 던져지게 되거나 천국에 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더 자세한 것은 나도 모릅니다. 다만 나는 이곳 낙원의 영들을 돌보는 일을 맡아 있을 뿐입니다.” 숙주는 자기가 죽을 때 망각의 강을 건넌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왜냐면 아내나 자녀나 자기 가정을 파산케 하고 도망친 원수도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지긋지긋한 세상을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아 그들을 잊었는지도 몰랐다. 하긴 그들이 생각난다면 하루도 걱정 근심이 떠날 날이 없고 이곳은 주의 품에 안식하는 곳이 아니며 다시 긴장과 근심의 장소가 될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궁금한 것은 왜 이 낙원에서 면류관을 받고 기뻐하는 성도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이생을 견딘 것은 하나님의 면류관을 받기 위해서였고, 각각 자기의 일한대로 상을 받기 위해 공력을 쌓았으며, 이 세상과 다른 천국을 꿈꾸고 모든 부끄러움을 참았는데 낙원에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낙원이 이런 곳이라면 나는 세상에서 더 환락을 즐기고 살았지 그렇게 인내하며 살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사후의 세상이 어떤 곳이라고 생각했습니까?” “사시사철 아름다운 꽃이 피어 있고, 무엇보다도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있는 곳입니다. 금으로 꾸민 성, 다이아몬드로 꾸민 성벽, 진주로 꾸민 성문, 보석으로 꾸민 기초석, 즉, 열두 기초석은 벽옥, 즉 다이아몬드요, 남보석은 청옥색, 옥수는 하늘색, 녹보석은 녹색, 홍마노는 분홍색, 홍보석은 붉은색, 황옥은 금색, 녹옥은 청록색, 담황옥은 엷은 녹색, 비취옥은 자주색, 청옥은 붉은 주황색, 자정은 보라색으로 꾸며진 화려한 성을 불 수 있는 곳입니다. 시온 산에는 어린 양이 서 있고 하늘의 보좌 앞에 네 생물과 12 장로들이 둘러앉았는데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아버지의 이름을 쓴 십사만 사천의 성도들이 노래하는 것이 들리는 그런 광경을 상상했습니다. 생명수의 강가에 생명 나무가 서 있고 우리가 나아가면 들고 있던 면류관을 씌워 주는 그런 장면도 상상했습니다. 그런데 이곳은 우리의 고생을 보상해 줄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2, 3분 동안 눈을 감고 그런 광경을 상상한 뒤 눈을 뜨십시오. 아무도 천국을 가보지 못했지만 그런 천국이 눈에 보일 것입니다.” 노숙주는 아름다운 천국을 상상했다가 눈을 떴다. 과연 그 모든 것이 눈 앞에 펼쳐지는 것이었다. 시들지 않은 꽃, 하늘에서 내려온 새 예루살렘, 그리고 생명수의 강이 눈앞에 있었다. 그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웬일이요.” “만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면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당신은 이런 천국에 가게 될 것입니다.” 들판은 그냥 들판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온갖 귀한 보물을 포장해 두었다가 그 속에 무엇이 있을까 하고 비밀을 찾고 싶어 궁금해하도록 한 뒤 포장을 열고 놀라운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래요. 이런 천국을 가고 싶었는데 흡족하게 보여 주시는군요. 그런데 이런 천국을 가기 위해 이 낙원에서 또 주의 재림까지 여러 해를 기다려야 한다는 말입니까?” “그것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이곳에서 천년을 하루 같이 기쁘게 지내는 사람이 있고 하루를 천년처럼 지루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 같은 사람은 친구도 없고, 어떻게 이런 곳에서 천년을 하루 같이 지낼 수 있다는 말입니까?” “이곳은 세상과는 인연을 끊었지만, 예수님과 친근한 교제를 가까이서 한없이 할 수 있는 곳입니다. 바울은 차라리 세상을 떠나 주와 함께 있고 싶다고 간절히 원했으며 에녹은 계속 주와 동행함으로 하나님이 데려가셨습니다. 이곳은 주를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은 말씀과 함께 사는 것이 너무 행복하고 기쁜 그런 곳입니다.” “그 말은 곧 세상에서 주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살며 주의 궁전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살아온 사람은 지상에서 벌써 낙원의 삶을 살고 있었다는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세상에서 낙원의 삶을 그림자로만 체험하다 죽어서는 진짜 낙원에 들어와 사는 것이지요. 매일의 삶이 얼마나 황홀하겠습니까? 에녹 같은 사람은 세상과 낙원의 경계선에 있던 죽음을 뛰어넘어 바로 낙원에 와버린 사람입니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는데 여기에도 하루와 천년 같은 시간 개념이 있습니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면 새것이 낡은 것이 되고 부패하는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는 이야기입니다.” “천상의 세상에는 시간이 없습니다. 오직 지상의 세상에만 시간은 존재합니다. 지상에서의 하루나 천년은 이 천상의 세상에는 없지만, 지상에서 온 사람에게 설명하기 위해 편의상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럼 세상은 유한하게 창조되어서 창조한 시간과 멸망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말이지요?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에 시간이 생겼고 주께서 재림하여 세상을 최후 심판하시고 멸망할 때 시간이 자연 없어진다는 것 아닙니까?” “세상 창조 전에 시간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 시간은 이 우주 생성과 아무 상관이 없으며, 또 종말 후에 시간이 있다 하더라도 그 시간은 아무 쓸모가 없는 것입니다. 다만 사후의 이 천상의 세상에는 ‘영원’이 있을 뿐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상에서는 크로노스의 시간이 있었다면 천상에는 카이로스의 시간이 있다고나 할 수 있을까요?” 나그네는 천사로부터 많은 설명을 들었지만, 아직도 풀리지 않은 문제가 많았다. 시간은 무엇이고 영원은 무엇인가? “혹 제가 여기서 돌아가신 아인슈타인 박사를 만나볼 수 없을까요?” “무엇 때문이지요?” “그분은 과학자이기 때문에 물어볼 말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우주는 최근 약 주전 5,000년쯤에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분인데 주전 5,000년까지는 뭘 하고 계셨는지, 또 왜 꼭 그 시점에 우주를 만들 생각을 하셨는지, 정말 그전에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았는지 궁금해서 물어보고 싶어서입니다.” “그분을 내가 만나도록 해드릴 수는 없습니다. 또 그분이 이 낙원에 계시는지, 안 계시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꼭 만나고 싶으며 만나고 싶다는 신호를 하십시오. 나타날지도 모릅니다.” 노숙주는 눈을 감고 여러 가지로 그분을 상상했지만, 과학자라는 것밖에 뚜렷한 신호를 찾지 못했다. 이 낙원에 과학자는 수없이 많을 것이었다. 결국, 그분은 나타나지 않았다. 기독교 신앙은 가졌지만, 주를 영접하지 않고 군중의 한 사람으로 살다가 죽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천당과 지옥은 언제 갈 수 있는지 알 수 없습니까?” “그것은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하나님께서는 되도록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도록, 또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이방인의 수가 차기까지 인내하고 계시는 것만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천년 왕국이란 무슨 말입니까?” “사탄이 세상의 왕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 찾기를 기다리시나 그들이 하나님을 인정하기를 싫어하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게, 타락한 마음자리에 내버려 두시는 벌을 주기도 하셨습니다. 드디어는 마귀들과 타락한 자들을 무저갱(無底坑)에 던져 넣어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이 평화로운 천년 동안을 천년 왕국이라고 합니다.” “그 뒤는 어떻게 됩니까?” “천 년이 찬 뒤에 모든 사탄이 옥에서 풀려나고 대환란이 있게 되는데 그 뒤 하나님께서 크고 흰 보좌에 앉으셔서 부활한 모든 신자와 불신자를 모으고 심판하시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사람은 불못에 던져지게 되는데 이것을 둘째 사망이라고 합니다. 노숙주 씨께서 말하는 지옥이지요.”
노숙주는 이번에는 도우미가 사라지기 전에 꼭 궁금했던 것 하나를 알아내고 싶었다. 그것은 자기가 대기업 직원으로 잘 일 하고 있었는데 중국과 작은 무역을 하고 있던 중소기업 사장이 자기 회사에 와서 사장을 맡아 달라고 간청해서 어쩔 수 없이 떠맡은 회사가 있었다. 그 뒤 사업이 부진해지자 은행 빚을 내기 시작했는데 부도가 나자 먼저 회삿돈을 횡령하여 해외로 도망친 천 씨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도망가서 결국 죽었는데 그때 자기는 회사 사장을 맡았기 때문에 빚을 내면서 자기 집도 담보가 되어있어 모두 날리고 결국 아내는 애들을 데리고 이혼하고 자기는 노점상을 하다가 그것도 안 되어 노숙자로 전락했는데 그 천 씨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였다. 평소에 자기는 죽으면 그 천 씨가 반드시 꺼지지 않은 지옥 불에 던져져 죽지도 않고 신음하고 있는 것을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악한 자는 죽어서라도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꼭 한 가지 내 친구 천 씨를 어떻게든 만나보고 싶은데 그것은 안 될까요?” “무엇 때문입니까?” “그가 부도를 내고 도망가서 죽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놈 때문에 지상에서 지옥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이제 그가 죽어서는 지옥에서 살 차례입니다. 그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불 못에 들어가 그가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해서 모든 사람이 소금에 절이듯 불에 절여져 아비규환 하는 모습을 꼭 보고 싶습니다.” 천사는 노숙주를 의아하다는 듯 뚫어지도록 쳐다보았다. “당신은 그 사람을 결코 만나 볼 수 없을 것이요. 그의 영혼은 스올로 갔기 때문에 이 낙원과 그런 죄인이 가는 곳은 큰 구덩이가 놓여 있어서 결코 건널 수가 없습니다. 꼭 만나고 싶으면 세상으로 돌아가서 당신도 그 죄인들이 있는 스올로 가야 합니다.” “천국을 미리 볼 수 있듯이 지옥에서 신음하는 그도 볼 수는 없을까요? 나는 억울해서 꼭 그 녀석의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천사의 표정이 굳어지는 것 같았다. “당신이 원수를 미워하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이 낙원에 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내가 당신을 잘 못 보고 지금까지 안내한 것 같습니다. 당신은 온전히 망각의 레테 강을 건너지 못하고 지상 세상과의 인연을 지금도 지속하고 있는 흔적이 역력합니다.” 그러면서 천사는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 당장 지상으로 내려가시오.” 그러면서 천사는 사라졌다. 노숙주의 영혼은 낙원에서 쫓겨나 지상을 맴돌다가 한 병원의 병실 시체 속으로 들어갔다. 교통사고로 병원 응급실로 옮겨온 그가 산소호흡기로 연명하고 있다가 갑자기 영혼이 떠나자 산소호흡기를 떼고 의사로부터 사망시간 선고를 받은 뒤 일반 병실로 옮겨온 시체 속이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는데 노숙자 담당이었던 강 목사도 보였다. 그는 벌떡 일어나 강 목사의 손을 잡았다. 모두가 놀라고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노숙주는 울컥 울음이 솟아났다. 그래서 강 목사의 손을 잡고 소리 내어 울었다. “목사님, 저 같은 죄인을 이같이 사랑으로 돌봐 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는 아직도 구원받지 못한 죄인입니다. 예수님은 낙원에서 과거의 제 죄를 하나도 기억 못 하시고 받아 주셨는데 저는 아직도 원수를 용서하지 못해서 낙원에서 지옥으로 쫓겨난 죄인입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노숙주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해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53.8매) |
'오승재 장로(박사)소설 콩트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자가 된 남자-수필 [오승재] (0) | 2020.08.06 |
---|---|
지옥 이야기- 소설 [오승재] (0) | 2020.07.25 |
내 손으로 밥을 지어주고 싶다-소설 [오승재] (0) | 2020.07.25 |
'분단의 아픔' 추천사와 머리말 (0) | 2020.07.10 |
북한선교 - 콩트 2001년 (0) | 2020.05.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