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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어우흥’은 없다 / 김창금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9. 11. 04:58

[유레카] ‘어우흥’은 없다 / 김창금

등록 :2020-09-08 17:42수정 :2020-09-09 02:09

 

여자 프로배구의 신조어에 ‘어우흥’이 있다. ‘어차피 우승은 흥국생명’의 약자다. 어벤저스에 빗대, ‘흥벤저스’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세계적 선수인 김연경을 비롯해 다수의 국가대표 선수를 보유한 무적의 팀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스포츠에 영원한 강자는 없다. 지난주 열린 2020 제천·MG새마을금고컵 결승에서 지에스칼텍스가 3-0 완승의 이변을 낳았다.

 

스포츠의 가변성은 1%의 가능성이라도 도전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래서 드라마라는 말이 나온다. 도무지 될 것 같지 않은데도 부딪치는 것은 ‘야성적 충동’과 같은 스포츠의 원초적 힘을 보여준다.

 

지에스칼텍스는 당연히 우승할 것이라는 흥국생명의 방심, 무실 세트 우승 도전이라는 압박감 등 이중의 심리 불안의 틈을 노렸다. 특정 선수를 향한 서브 집중이 감독의 전술적 능력이라면, 모두가 스타인 흥국생명의 조각난 팀워크와는 다른 지에스칼텍스의 일체감은 위기일수록 똘똘 뭉치는 약자의 지혜였다. 선순환하는 지에스칼텍스가 흥국생명과 만나 반전을 이뤄낸 것이다.

 

지에스칼텍스의 승리가 주는 효과는 크다. 흥국생명과는 도저히 해볼 수 없다고 생각했던 다른 팀들도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이다.

 

스포츠는 상대적이다. 개인전에서 대진표를 받는 순간 어떤 선수는 ‘망했다’라고 자포자기한다. 상대 선수를 이길 수 없다며 경기도 하기 전에 지고 들어간다. 팀 경기에서도 마찬가지다.하지만 생각을 바꿔, 다부지게 도전하고 물어뜯어 이기면 그때부터는 달라진다. 적어도 지레 겁을 먹거나 포기하는 일은 없어진다.신천지발 코로나19를 겪었던 한국 사회가 최근 수도권발 재확산으로 새로운 도전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겨내고, 또 이겨내면 막연한 두려움은 통제 가능한 형태로 바뀐다. 이런 경험이 축적된다면 다른 감염병이 와도 좀 더 탄탄하게 대응할 힘이 생긴다.

 

지에스칼텍스의 승리는 ‘팀보다 강한 개인은 없다’ ‘절대 강자는 없다’는 스포츠의 격언을 보여주었다. 코로나19 또한 절대 감염병이 아니다. 지에스칼텍스 우승을 통해 배우는 코로나19 시대의 교훈은 이런 것이 아닐까.

 

김창금 스포츠팀 선임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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