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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 1등 ‘능력주의’는 공정한가?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9. 12. 03:44

전교 1등 ‘능력주의’는 공정한가?

등록 :2020-09-11 19:25수정 :2020-09-12 02:30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페이스북 창립자인 마크 저커버그가 2017년 5월25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하버드대학교에서 졸업식 연설을 하고 있다. 저커버그는 하버드대에서 컴퓨터 과학을 공부했다. AFP 연합뉴스

 

시험이 측정하는 것이 ‘능력’이다. 그런 능력에 바탕을 둔 ‘능력주의’는 새로운 가혹한 계급체계의 정당화로 기능한다. 능력주의는 불평등의 정당화를 제공하기 때문에 평등을 더욱 어렵게 한다.영국 사회학자인 마이클 영이 1958년 출간한 소설 <능력주의의 부상>에서 편 논지이다. 지능과 능력이 사회의 원리가 된 2034년 미래의 영국에서 계급화가 고착되며 폭동이 일어나는 사회를 그렸다. 소설은 저자의 이름과 같은 주인공인 학자 마이클 영이 폭동의 와중에 살해되는 것으로 끝난다.

 

저자인 영이 전후 영국에서 능력주의에 입각한 교육 체계를 만들고, 영어에서 능력주의인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란 말을 만들어낸 당사자이기 때문에 논란이 컸다. 그는 공립학교를 대폭 확장해서, 일반 대중에게 체계적인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자 했다. 이런 체계는 11살이 되면 지능검사를 실시해서, 노동직이나 사무직 교육 경로를 결정하게 했다. 그 후 학생들은 몇차례의 시험으로 추려지면서, 고등교육을 받을 기회를 얻게 된다. 고등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사회를 지도하고 높은 대가를 받는 일자리를 얻는 기회에 더욱 근접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영은 자신이 설계한 이 학업 능력(성적)에 기반한 능력주의가 기회의 평등을 이용해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현실을 자신의 소설에 반영한 것이다.

 

올해 초 미국에서는 예일대 법과대학원 교수 대니얼 마코위츠도 <능력주의의 덫>이라는 저서에서 학업(성적)이 중심이 된 미국의 교육 체계와 능력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해 파문을 일으켰다.그는 영조차도 비판했다. 그에 따르면, 영은 능력주의 자체가 능력이 아닌 태생적 환경에 실제로 기반을 둔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특히 그는 고교 졸업자들의 학업평가시험인 에스에이티(SAT)가 도입되면서, 능력주의 문제가 심화됐다고 본다.에스에이티로 상징되는, 성적에 바탕을 두고 학교 입학이 결정되는 시스템은 아이비리그라는 대학들을 통해 고착화되는 엘리트층 충원을 만들어냈다고 지적했다.

 

과거에 유한 귀족계급 자제들의 자기만족적인 교양학교였던 아이비리그는 이제 전 미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서열화의 도구가 됐고, 이 도구를 통과한 학생들만이 사회를 좌지우지하고 고연봉의 직업과 직역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장삼이사의 자제들이 신분상승할 기회는 더욱 줄었다는 분석이다. 왜냐하면 아이비리그 입학의 비결은 성적이고, 그 성적에는 집안 환경이 결정적 요인이기 때문이다.마코위츠의 저서는 ‘대안이 무엇이고, 출생에 바탕을 둔 과거 엘리트주의가 더 좋았다는 것이냐’는 거센 비판에 시달렸지만, 능력주의라는 것이 공정하냐는 의문을 증폭시켰다.

 

미국의 고등교육 뉴스 사이트인 ‘인사이드 하이어 에드’의 2015년 분석에 따르면, 가구소득 2만달러 이하 가정 출신의 학생들 사이에서 평균적으로 가장 낮은 에스에이티 점수가 나왔고, 20만달러 이상 가정 출신 학생들이 평균적으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에스에이티에 대한 논란으로 미국의 50개 이상 대학이 내년 입학전형 필수사항에서 에스에이티 등 표준화된 평가시험을 제외했다. 특히 명문대이자 미국에서 가장 큰 공립대학교인 캘리포니아대는 지난 5월 표준화된 평가시험을 2024년까지 입학전형의 필수요건에서 보류한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2025년까지 새로운 시험이 나오지 않는다면, 에스에이티 등 표준화된 평가시험을 필수요건에서 영구히 제외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캘리포니아 법원은 아예 에스에이티를 입학전형에 활용하지 못하도록 쐐기를 박았다. 앨러미다 카운티의 캘리포니아주 고등법원은 지난 2일 캘리포니아대의 모든 캠퍼스가 에스에이티 등 표준화된 평가시험을 입학전형에서 선택요건으로 사용하는 것도 불허하는 예비적 금지명령을 내렸다. 법원은 코로나19로 장애 학생들이 에스에이티 등의 시험을 보는 데 불리하다고 이유를 들면서, 에스에이티 점수가 좋은 비장애 학생에게는 또 다른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 사회가 공정성을 외치고 있다. 의사고시를 거부하는 의대생은 자신들의 ‘전교 1등 능력주의’는 공정하다고 말한다. 한국 사회의 다수는 분명 의대생들의 이런 공정성을 거부할 것이다. 하지만 성적에 바탕을 두고 계급 서열이 정해지는 이런 능력주의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합의는 한국 사회에 존재할까? 특히, 공정성을 부르짖는 20~30대들은 그런 능력주의가 부당하다고 생각할까? 일부 젊은층이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비난하고, 쪽방에 사는 이들이 종부세가 공정하지 못하다고 걱정하는 현실을 보고서 하는 질문이다.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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