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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의사 파업이 가능한 슬픈 이유 / 양창모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9. 15. 04:03

[시론] 의사 파업이 가능한 슬픈 이유 / 양창모

등록 :2020-09-14 04:59수정 :2020-09-14 13:24

 

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서울특별시의사회에서 열린 젊은의사 비상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비대위원장을 맡은 박지현 대한전공의협의회 비대위원장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양창모 호호방문진료 센터장·가정의학과 전문의

 

“어제 항암치료 때문에 만난 의사가 의사 파업 때문에 밤을 새웠다 하면서 엄청 피곤해하더라고. 그러면서 하는 말이 항암 부작용으로 콩팥 기능이 망가져서 죽을 수도 있다면서 예전에 자기 환자도 죽은 경우가 있었대. 오늘이라도 항암을 시작하자면서 하는 말이 그래. 그동안 여러 의사랑 상담하면서 한 번도 운 적이 없는데 어제는 나도 집에 왔는데 눈물이 나더라고.” 지인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같은 의사임에도) 이 ‘의사놈’이 옆에 있으면 멱살이라도 잡고 싶은 마음이었다. 객관적 사실을 전달하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그 사실을 어떤 마음으로 전달했는지가 중요했다. 진료실에 있다 보면 환자들은 무섭게 내 마음을 알아차린다. 정말 숨길 수 없다. 어떨 때는 의사인 나도 이런 ‘의사놈’을 만나는 게 두렵다.

 

오늘 왕진 가서 만난 전 할아버지는 약을 가지러 큰방에서 작은방으로 가면서 다리를 모아서 포대에 채우고 엉덩이를 방바닥에 끌면서 갔다. 4년 전 할아버지는 일어서다가 갑자기 하반신 마비가 왔다. 마비가 오고 나서 2주가 지나서야 병원을 찾았다. 방광이 꽉 찼는데도 소변이 나오질 않았고 질질 새는 지경이 되어서도 병원을 가지 않았다. 사정을 묻지 못했다.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있었을 거라 생각할 뿐이다. 병원을 너무 늦게 간 탓에 수술 후에도 결국 마비는 평생 남게 되었고 장애 3등급의 장애인이 되었다.

 

왕진을 다녀올 때마다 마음속에 돌 하나씩을 얹고 집에 돌아온다. 내가 진료실에 갇혀 있을 때도 당연히 나는 환자를 만났다. 그들 중에는 내가 왕진을 가면서 만나는 분들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병원에서 근무할 때의 나는 몸이 힘들긴 했어도 마음이 힘들진 않았다. 왕진을 가면서 환자를 훨씬 적게 만나는데도 몸은 둘째 치고 마음이 많이 힘들다. 그때 보이지 않았던 것을 지금 보고 있기 때문이다.

 

진료실 안에서도 사람들을 만났지만 접촉은 일어나지 않았다. 손에 잘 잡히지 않는 비누처럼 서로 미끄러져 내려갔을 뿐이다. 증상 말고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의사로서의 기능에 충실할수록 나는 환자들의 삶에서는 멀어져갔다. 내 고민, 의사들의 고통은 들여다보여도 당신의 고민, 환자들의 삶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나는 ‘의사놈들’이 될 수 있었다. 내가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은 단순히 살 만해서라거나 돈을 많이 벌어서가 아니다. 그 돈을 어떤 과정을 거쳐서 버느냐에 따라 나는 의사놈들’이 될 수도 있고 ‘의사 선생님’이 되기도 한다. 아무런 접촉이 일어나지 않는 세계 속에 갇혀서 오직 자신의 욕망, 자신의 고민만 들여다보는 사람. 그것이 내가 있었던 의사들의 세계다. 진료실은 의사를 자폐적 세계에 가둔다. 타인의 고통에 누구보다 노출되어 있으면서도 누구보다 둔감할 수 있는 것도 그 덕분에 가능해진다.

 

왕진을 갈수록 의사들의 진료실을 혁파해야 한다는 생각이 굳어진다. 진료실이란 공간은 단순히 환자를 증상의 덩어리로 보게 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의사로 하여금 환자들의 삶에 눈을 감게 만드는 눈가리개의 역할도 한다. 지금처럼 국민들의 정서와 유리된 의사 파업이 가능한 것도 의사들이 진료실 안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진료실에서 전 할아버지를 마주하는 의사는 그가 어떤 과정을 거쳐 자신 앞에 앉아 있는지를 보지 못한다. 병원으로 가기 위하여 그가 엉덩이를 끌면서 큰방에서 현관으로 가는 것도, 그걸 위해서 집에 있는 문턱이란 문턱은 다 깎아놓은 것도 의사에게는 보일 리가 없다. 그러니 환자에게 “기다리라”는 말이 가능해진다. 파업으로 자리를 비우겠다는 말은 환자가 병원에 오기까지 겪어야 하는 수많은 번거로움과 마음의 고통이 보이지 않을 때만 가능한 얘기다. 진료실 안에 있는 한 의사는 그것을 볼 수가 없다. 환자들은 진료실을 나가도 환자로서의 삶이 끝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의사의 역할은 진료실을 나가는 순간 끝나는 걸까. 의사가 진료실 문을 나설 때에도 의사로서의 삶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거기에서 새로운 의사의 삶이 시작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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