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 박덕흠이 미국 국회의원이었다면 / 박용현
등록 :2020-09-22 14:55수정 :2020-09-23 02:39
미국 연방 형법은 공무원이 본인이나 가족의 금전적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을 회피하지 않으면 처벌한다. 정부가 발주하는 공사의 담당자가 본인이나 가족이 소유한 회사와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런데 국회의원은 정부의 계약 업무를 직접 관장하는 지위가 아닌데도 더 혹독한 규제를 받는다. 미국 연방 형법에는 국회의원을 콕 집어 연방 정부나 그 산하기관과 계약 관계를 맺지 못하도록 하는 조항이 있다. 의원이 직접 하든 다른 사람에게 위탁하든 직간접적인 방식으로 정부와 사업 계약을 체결하거나 이런 계약을 통해 이득을 누리는 모든 행위가 처벌 대상이다. 뿐만 아니라 이런 계약은 아예 무효가 된다. 공공 계약의 원칙을 규정한 별도 법에도 국회의원은 연방 정부와 계약을 체결하거나 그 수혜자가 되지 못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청탁이나 대가성이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있다면 뇌물죄로 처벌받는다). 딱히 비리 행위가 드러나지 않아도 무조건 정부와의 계약 관계를 금지하는 것이다.
왜일까? 국회의원은 입법 활동과 국정 감시 등을 통해 포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일 것이다. 계약을 담당하는 공무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역으로 계약 관계를 통해 정부의 로비를 받을 가능성도 있다. 계약 관계가 일종의 뇌물이 될 수 있는 셈이다. 직무 수행의 공정성과 이에 대한 유권자의 신뢰를 담보하기 위해서는 비리의 기회조차 원천차단하는 것, 이게 바로 이해충돌 방지 제도의 목적이다.
박덕흠 국민의힘 의원은 본인과 가족이 지배하는 건설사가 피감기관에서 수천억원대의 공사를 수주했는데도 이해충돌이 없다고 강변한다. 공정과 신뢰의 가치를 눈곱만큼도 성찰하지 않는 변명 태도에선 공익을 추구하는 국회의원이 아닌 사익에 눈 먼 건설업자의 비루함만 두드러진다. 이해충돌을 철저히 차단하는 ‘박덕흠 방지법’이 절실하다. 특히 국회의원에 대해선 그 지위의 특수성을 감안해 별도 조항을 둔 미국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정부 사업을 통해 돈을 벌 생각이라면 국회의원을 하지 말아야 한다.
박용현 논설위원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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