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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인천 형제’ 비극, 한국의 불행은 왜 닮은꼴인가 / 손원제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10. 1. 05:39

[아침햇발] ‘인천 형제’ 비극, 한국의 불행은 왜 닮은꼴인가 / 손원제

등록 :2020-09-29 17:07수정 :2020-09-30 02:39

 

손원제 ㅣ 논설위원

 

인천 미추홀구 한 빌라에서 불이 나 10살, 8살 형제가 중화상을 입었다. 유독가스를 마시고 쓰러진 형제는 서울의 한 병원으로 옮겨졌다. 가스레인지 근처에선 라면 봉지가 발견됐다. 어머니는 전날부터 집을 비운 채였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비대면 원격수업을 하던 중이어서, 형제는 학교 급식 대신 하루 5000원 충전되는 아동급식카드로 끼니를 때워야 했다.

 

형제는 사고 11일 만인 25일 눈을 떴으나, 온전히 의식이 돌아온 건 아니라고 한다. 빠른 회복을 바라면서도, 앞으로 이 아이들이 겪을 기나긴 화상 치료의 고통과 후유증을 생각하면 이맛살이 찌푸려진다. ‘큰 아픔 없이 이 시련을 이겨내기를’ 덧없을망정 한가위 달에 빌어보고픈 심정이다.

 

형제를 덮친 비극 뒤 이에 드리운 우리 공동체의 과제를 짚는 여러 논의가 일었다. 형제를 방치한 어머니의 방임과 학대 책임을 따지는 접근이 그 하나였다. 아이들 학교엔 비대면 수업 기간에도 급식을 제공하는 ‘돌봄교실’이 운영되고 있었지만, 어머니는 한번도 신청하지 않았다고 한다. 가족이 충분히 보살피지 못한 형제를 사회가 끌어안는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언택트’ 환경의 불평등한 여파에도 눈길이 쏠렸다. 학교에선 형제도 다른 아이들과 같은 수업과 급식을 제공받았다. 그러나 원격수업 환경에선 돌봄 격차의 완충 장치가 없다. 이 공백에서 어떤 아이들은 스러진다.

 

개인적으로는 양육자의 방치, 언택트의 불균질한 파장을 관통하는 빈곤과 단절의 파괴적 힘을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된다. 이번 일을 접하고 정태춘의 노래 ‘우리들의 죽음’을 떠올린 이들이 적지 않았으리라. 곡은 1990년 3월 서울 망원동에서 일어난 화재를 다룬 <한겨레> 기사 낭독으로 시작한다.

 

“맞벌이 영세 서민 부부가 방문을 잠그고 일을 나간 사이 지하 셋방에서 불이 나 방 안에서 놀던 어린 자녀들이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하고 질식해 숨졌다. 불이 났을 때 아버지 권씨는 경기도 부천의 직장으로, 어머니 이씨는 합정동으로 파출부 일을 나가 있었으며, 아이들이 방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방문을 밖에서 자물쇠로 잠그고, 바깥 현관문도 잠가 둔 상태였다. (…) 다섯살 혜영양은 방바닥에 엎드린 채, 세살 영철군은 옷더미 속에 코를 묻은 채 숨져 있었다. (…) 어머니 이씨는 경찰에서 ‘평소 파출부로 나가면서 부엌에는 부엌칼과 연탄불이 있어 위험스럽고, 밖으로 나가면 길을 잃거나 유괴라도 당할 것 같아 방문을 채울 수밖에 없었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정태춘은 기사에 더해 숨 막혀 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가사로 그렸다.

 

“손톱에서 피가 나게 방바닥을 긁어대기 전에/ 그러다가 동생이 먼저 숨이 막혀 어푸러지기 전에/ 그때, 엄마, 아빠가 거기 함께만 있었다면/ 아니, 여기가 우리처럼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축복을 내리는/ 그런 나라였다면.”

 

아이들을 맡길 값싼 보육시설이 있었다면, 시골에서 상경하지 않아 근처에 처가·시가만 있었다면 부부가 남매만 둔 채 방문을 밖에서 잠그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아니, 아이들이 그저 초등학생만 됐더라면….

 

그 뒤로도 빈집, 빈방에 아이들만 남겨졌다가 희생되는 비극은 반복되고 있다. 권태호 <한겨레> 기획부국장이 2017년 쓴 ‘우리들의 죽음, 27년 뒤’라는 칼럼에는 1990년 4월 서울 강동구에서 3살 아이가 집에 혼자 있다 불이 나 숨진 사건, 2005년 10월 서울 개나리마을 비닐하우스 셋집에서 6살, 4살 형제가 제빵공장에서 밤샘 작업을 하는 엄마를 기다리다 불이 나 숨진 사건, 2017년 10월 서울 구로구 다가구주택에서 혼자 있던 7살 아이가 불이 나 숨진 사건이 열거됐다.

 

2010년 2월 경남 마산시 주택 단칸방에서 엄마가 식당 일을 간 사이 불이 났다. 6살 쌍둥이 형제가 중환자실로 옮겨졌지만, 유독가스를 많이 마신 탓에 닷새, 엿새 만에 각각 숨졌다. 때로 행복보다 불행이 더 닮은꼴이다. 인천 형제에겐 부디 다른 운명이 깃들기를.

 

비극 뒤에나마 교훈을 찾아 실행할 때 세상은 바뀐다. 인천 사고 이후 정치권에서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한부모 가족 아동양육비 지원 법안이 24일 국회를 통과했고, 허종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아동복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서둘러 빈틈을 채워 아이들을 살리는 것이 정치의 책무다.wonje@hani.co.kr

지난 14일 인천시 미추홀구 한 주택에서 불이 나 형과 동생이 크게 다쳤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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