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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승 칼럼] 언론, 자유 아닌 책임을 말할 때다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10. 6. 04:22

[안재승 칼럼] 언론, 자유 아닌 책임을 말할 때다

등록 :2020-10-05 17:02수정 :2020-10-06 02:42

 

국경없는기자회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 언론자유 지수’를 보면, 올해 한국의 순위는 180개국 중 42위다. 박근혜 정부 때 70위까지 떨어졌다가 많이 올라섰다. 반면 한국 언론의 신뢰도는 4년 연속 세계 최하위다. 언론 자유와 신뢰도가 정반대로 가고 있다. 언론 자유는 마음껏 누리면서 책임은 지지 않으니 신뢰 추락은 당연한 결과다.

 

그래픽 고윤결

안재승ㅣ 논설위원실장

 

언론이 남을 비판할 때처럼 자신을 돌아본다면 존경받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정부가 가짜뉴스와 허위정보 등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적용하는 상법 개정안을 지난달 28일 입법예고하자, 신문협회·신문방송편집인협회·기자협회가 ‘법무부는 언론 자유 유린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즉각 중지하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3개 단체는 성명에서 “헌법상 기본권인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권리를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악법으로 강력 규탄한다”고 했다. 상법 개정안 66조는 “기업이 고의 또는 중과실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 손해의 5배를 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무부는 언론사에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기로 한 배경을 “최근 범람하는 가짜뉴스와 허위정보 등을 이용하여 사익을 추구하는 위법행위에 대해 현실적인 책임 추궁 절차나 억제책이 미비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언론사뿐 아니라 모든 기업의 악의적 위법행위에 적용된다.3개 언론단체에 묻고 싶다. 가짜뉴스와 허위정보도 헌법이 보장하는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권리에 속한다고 보는지? 성명에서 “현 정부가 언론에 대해 사전 검열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징벌적 손해배상은 피해자가 소송을 제기하고 법원의 판단으로 결정된다는 걸 모르는 건지 아니면 알면서도 모른 체하는 것인지? 성명에서 “언론을 상대로 제조물 책임을 묻는 것은 위험천만한 발상”이라고 주장했는데, 가짜뉴스와 허위정보에 대한 책임이 불량품에 대한 책임보다 가볍다고 생각하는지 혹은 모든 기업이 적용 대상이지만 언론사만 예외로 해달라는 특권의식인지? 성명에서 “언론사는 자체적으로 독자위원회나 시청자위원회를 두고 오보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자정활동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는데,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지?

 

<미디어오늘>이 지난 5월 여론조사기관인 리서치뷰에 의뢰해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81%가 “허위·조작 가짜뉴스를 보도한 언론사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반대”는 11%에 불과했고, 나머지 8%는 “모른다”고 응답했다. 언론이 자주 쓰는 문구를 빌려오면, 3개 언론단체의 주장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것이다. 3개 언론단체는 성명을 내기에 앞서 왜 대다수 국민이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찬성하는지, 오죽하면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법안이 나왔는지부터 되돌아봐야 했다. 하지만 성명에는 언론의 책임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다. 언론 자유 주장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다.

 

국제 언론인단체인 국경없는기자회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 언론자유 지수’를 보면, 올해 한국의 순위는 180개국 중 42위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 168개국 중 31위에서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175개국 중 69위,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180개국 중 70위까지 추락했다가 많이 올라선 것이다. 반면 한국 언론의 신뢰도는 최하위다. 영국 옥스퍼드대 부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매년 발표하는 주요 국가들의 뉴스 신뢰도 순위를 보면, 한국은 처음 조사 대상에 포함된 2016년 26개국 중 23위, 2017년 36개국 중 36위, 2018년 37개국 중 37위, 2019년 38개국 중 38위, 2020년 40개국 중 40위다. 조사 대상이 늘어나도 변함없이 꼴찌다. 더이상 떨어질 데도 없다. 언론 자유와 신뢰도가 반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왜 이 지경이 됐을까? ‘의혹’이란 단어 뒤에 숨어 확인도 없이 ‘아니면 말고’식 보도를 쏟아내고, 피해자가 항의하면 경청은커녕 되레 윽박지르거나 심지어 보복기사까지 쓰고, 대문짝만하게 오보를 내고도 정정보도는 어디 잘 보이지도 않는 구석에 처박고, 부끄러운 줄 모르고 받아쓰고 베껴 쓰고, 클릭을 유도하려고 아무 데다 ‘단독’을 붙이면서 창피한 줄도 모르고, 팩트 한 줄 없이 ‘카더라 통신’을 근거로 사설과 칼럼을 쓰고,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자유는 마음껏 누리면서 책임은 지지 않으니 신뢰 추락은 당연한 결과다.

 

모든 자유에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따른다. 언론 자유 역시 예외일 수 없다. 무제한적이고 절대적인 자유가 아니다. 책임이 뒷받침되어야 언론 자유도 제 빛을 발할 수 있다. 언론사의 사익에 매몰되지 말아야 한다. 언론의 소명과 저널리즘의 원칙을 마음에 새기며 이제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할 때다.js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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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안재승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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