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訴訟]=자유 평등 정의

[세상읽기] 사법부 전관예우와 ‘라떼’ / 최한수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10. 6. 05:01

[세상읽기] 사법부 전관예우와 ‘라떼’ / 최한수

등록 :2020-10-04 15:12수정 :2020-10-05 10:00

 

최한수 ㅣ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판검사들에게 전관예우는 ‘라떼’이다. 전관예우에 대해 항상 ‘과거에는 심했다는데 나 때는 그렇지 않다’는 식으로 말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필자가 전관예우 연구를 시작한 15년 전에도 똑같은 반응이었다는 데 있다. 이처럼 법조계에서 전관예우는 언제나 과거형이다. 반면 국회는 다르다. 21대 국회 들어와서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관예우 근절 3법’을, 김용민 의원은 전관 변호사의 퇴직 전 직급에 따른 차등적 수임 제한과 처벌 강화를 골자로 하는 법안을 제출하였다. 국민의힘 또한 전관예우 방지대책을 약속했다.

 

그렇다면 이제 전관예우의 해결은 시간문제인 것일까? 수임 제한과 처벌 강화만으로 전관예우를 없앨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병의 치료를 위해서는 발생 원인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처럼 전관예우의 규제에 앞서 그 발생요인은 무엇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혹자는 전관예우를 인맥을 중시하는 연고주의 문화의 산물로 본다. 그러나 전관예우의 해외 사례를 조사한 차성안 판사에 따르면 법관이 정년 전에 사직하여 변호사로 다시 법정에 서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현상이다. 우리와 가장 유사한 사법시스템을 갖고 있다는 일본도 전관예우는 없다. 필자는 전관예우를 고위 판검사들의 ‘용퇴 문화’의 산물로 본다. 법원과 검찰 모두 사법연수원 동기나 후배가 대법관이나 검찰총장이 되면 그 위 기수나 동기들이 퇴직하는 관행이 있다. 후배뿐 아니라 대법원장과 검찰총장도 이를 반긴다. 상명하복식 조직 운영의 핵심은 인사권인데 이와 같은 대량 사직은 인사권자의 운신의 폭을 넓혀준다. 전관예우가 없었다면 조기 퇴직 관행은 지속될 수 없게 되고 대법원장이나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하는 관료적 사법시스템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문제는 ‘용퇴자’ 입장에서 이러한 ‘헌신’에 대한 보상이 필요한데, 퇴직자에 대한 편의를 제공해주는 전관예우가 그것이다. 따라서 전관예우는 개인적 연줄을 넘어선 구조적인 문제이다.

 

전관예우를 누리는 전직 판검사의 퇴직 직후 수입은 재임 전 급여의 10배를 넘는다. 이는 그가 현직에 남아 있었더라면 받았을 급여 총액과 대체로 일치한다. 즉 전관예우는 조기 퇴임을 결심한 고위 판검사들의 ‘퇴직위로금’인 셈이다. 이처럼 전관예우는 관료적 사법시스템과 관련 있다. 따라서 “동시채용 동시승진, 동시 대량 인사이동, 조기퇴직”이라는 관료체계의 작동원리를 손보지 않은 채 수임 제한과 처벌만으로 전관예우를 없애려는 시도는 한계가 있다. 이에 대한 대책이 있어야 한다.

 

전관예우를 전관을 고집하는 의뢰인의 문제로 보는 견해가 있다. 특히 이러한 인식은 판검사 사이에서 강하다. 물론 전관 변호사에 대한 선호는 실재한다. 그러나 이는 변호사에 대한 정보 부재가 그 원인이다. 법률 시장만큼 정보의 비대칭성이 심한 곳도 없다. 변호사의 승소율은 물론, 판결문과 거기에 적힌 변호사의 이름조차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쉽게 얻을 수 없다. 이럴수록 ‘전관’은 변호사로서의 능력과 연줄의 지표가 된다. 따라서 투명성의 제고를 통해 전관예우를 줄여보려는 이탄희 의원의 시도는 의미가 있다. 필자의 연구도 이를 뒷받침한다. 2000년부터 2007년 사이에 유죄판결을 받은 318명의 기업인 범죄자 분석에서 전관 변호사는 언론 보도가 없다면 집행유예 가능성을 높였지만 언론 보도가 발생하면 달라졌다. 이는 언론 보도와 같은 외부감시 기제가 작동할 경우 재판장이 ‘전관’이 변호하는 피고인에게 집행유예를 줌으로써 불필요한 구설에 오르고 싶어하지 않은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상고심 사건에 합류한 차한성 전 대법관이 비판 여론으로 사퇴했던 사례도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해준다.

 

따라서 전관예우 근절을 위해서는 이 의원이 제시한 3가지 방법 외에 ‘전관사건’에 대한 의무적 정보공개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전직 고법부장 판사 출신 변호사가 퇴직 뒤 1년 이내 수임한 특정 형사사건의 경우 피고인의 이름, 해당 판검사와의 관계, 재판 결과 등을 담아 ‘이달의 전관사건’이란 이름으로 대법원 누리집에 공개하는 것이다. 이는 전관에 대한 처벌 중심의 접근법의 한계를 보완해줄 것이다. 전관예우는 검찰권 남용과 더불어 국민의 사법불신을 야기하는 원인이다. 이번 국회에서 전관예우 근절을 통한 사법 신뢰의 회복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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