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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 삶으로서의 과학 / 김우재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10. 6. 05:41

[숨&결] 삶으로서의 과학 / 김우재

등록 :2020-10-05 17:29수정 :2020-10-06 02:41

 

김우재 ㅣ 초파리 유전학자

 

트럼프 대통령도 코로나19 확진자가 됐다. 마스크 없이 진행했던 수차례의 백악관 행사가 그 원인으로 보인다. 난장판으로 끝난 대선 1차 토론에서 그는 바이든의 커다란 마스크를 조롱했다. 심지어 확진 이후 그는 과학적 임상실험 결과가 나오지도 않은 항체치료제를 투약했다. 이게 다 마스크를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확실한 치료제도 백신도 없는 코로나바이러스로부터 가장 싸고 효율적이면서도 과학적으로 자신과 이웃 그리고 사회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마스크 착용과 사회적 거리두기뿐이다. 지난 9개월 동안 과학은 그렇게 우리의 삶에 개입해 왔다.마스크를 쓰고 사회적 거리를 지키고 손을 자주 씻으라는 과학의 조언은 강제적이지 않다. 과학은 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눈에 가시적으로 보이는 사회의 준칙 대부분은 법이 규정하는 것들이며, 법은 강제적이다. 게오르크 옐리네크에 따르면 법은 도덕률의 최소한으로서 소속 집단의 권력에 의해 강제되는 규범들이다. 하지만 과학은 법과 같은 방식으로 우리 삶을 강제하지 않는다. 법은 강제적이지만, 법을 피해 나가는 다양한 방법이 존재하며, 특히 권력과 자본에 편향적이다. 즉, 법은 지키지 않아도 들키지만 않으면 그만인 규범이다. 하지만 과학은 다르다.과학의 조언을 거부한 누구도 처벌받지 않는다. 하지만 그 결과는 비정할 정도로 공평하다. 마스크를 쓰면 바이러스 감염이 거의 완벽하게 차단된다는 과학적 조언의 결과는, 매일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는 생활인에게도, 비싼 헬리콥터를 타고 선거유세를 다니는 트럼프에게도 동일률로 적용된다. 과학이 제공하는 규범은 느슨하게 우리 삶에 개입할 뿐이지만, 그 결과는 완벽할 정도로 공평하다. 게다가 과학의 규범은 법처럼 피해 나갈 수조차 없다. 과학적 규범과 법적 규범이 우리 삶에 개입하는 방식과 삶에 미치는 영향은 완벽하게 상반된다.하지만 과학적 조언은 절대적이지 않다. 생각해보면 코로나 사태의 초기부터 얼마 전까지도 세계보건기구는 건강한 사람이 마스크를 쓸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하지만 무증상 감염자의 존재가 알려지고 마스크의 효과가 과학적으로 밝혀지면서 이제 아무도 마스크의 효과를 의심하지 않는다. 과학적 발견엔 권위가 존재하지만 그 권위는 절대적이지 않다. 과학의 권위는 과학이 발견한 결과물이 아니라 과학이 자연을 발견하는 과정에서 나오며, 새로운 증거와 실험으로 언제든 그 권위에 도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스크 착용에 대한 과학의 조언은 새로운 근거들에 의해 수정되어 왔다. 법은 결과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과학은 과정에 중점을 둔다.개인의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삼아 발전해온 서구 민주주의야말로 서양이 동양을 지배할 수 있었던 유일한 정당성이었다. 그리고 17세기 유럽에서 탄생한 근대과학은 민주주의와 함께 서양의 지배를 정당화할 수 있게 해준 발명품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는 유럽에서 기원한 서구 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에 의문을 던졌고, 과학 선진국만 골라 처참하게 무너뜨렸다. 코로나 사태로 드러난 서구 민주주의의 한계와 대안은 논외로, 도대체 왜 엄청난 숫자의 노벨상을 자랑하던 과학 선진국 모두가 가장 큰 피해를 입었는지는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노벨상은 코로나19를 막지 못했다.어쩌면 코로나19의 가장 큰 교훈은 과학에 대한 새로운 접근일지 모른다. 과학 선진국의 시민들은 마스크를 쓰라는 과학의 조언을 듣지 않았다. 시민의 과학적 태도는 노벨상의 개수와 아무 상관이 없었다. 마스크 착용은 양자역학처럼 화려한 과학은 아니지만 우리 곁에서 삶을 지켰다. 어쩌면 우리는 과학이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외면하고 노벨상과 첨단과학에만 매달려 왔는지 모른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보다, 평균적인 시민 모두가 마스크와 백신의 중요성을 삶 속에 체화하는 사회, 우리에겐 ‘삶으로서의 과학’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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