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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노인이 된다 / 박진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10. 7. 03:04

[세상읽기] 노인이 된다 / 박진

등록 :2020-10-05 15:23수정 :2020-10-06 09:05

 

박진 ㅣ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가까운 글씨가 보이지 않아 안경을 머리 위로 올리던 날부터 ‘나는 누구인가, 여기는 어디인가’ 정체성 혼란이 왔다. ‘기계도 50년을 쓰면 고장 나는 게 당연지사인데, 받아들이라’는 선배님들의 고언보다는 에스엔에스에서 테스트한 ‘당신의 정신연령은 16세’에 더 큰 정당성을 부여하며 당황한 마음을 부여잡고 있다. 마음과 몸의 간극이 큰 만큼 찾아오는 것은 자괴감뿐임을 왜 모르겠습니까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쇠락의 징조가 나만 피해 갈지 어떻게 안다고. 그러나 사람들의 목소리가 왜 이렇게 작아진 걸까 고민하던 날, 청력도 시력의 길을 가고 있음을 깨달았을 뿐. 상실의 징조들에 익숙해지자 숙명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제 노인이 된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 후보는 “나이가 들면 다 장애인이 된다”는 발언으로 당에서 제명되었다. 그 당이 노인과 장애에 대해 어떤 감수성과 기준을 가지고 결정했는지, 중앙당 윤리위원회에 참석하지 못했으니 세세히 알지 못한다. 다만 노인 유권자들에게 해명하기 어려운 발언이라 판단했을 테고 ‘장애인이 된다’고 말한 것 자체를 문제로 지목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때도 지금도 그 말이 왜 문제인지 알지 못하겠다. 나는 시력과 청력의 기능을 상실해가며 다초점 안경이라거나 보청기의 신세를 지게 될 것이다. 연골이 닳아 휠체어의 도움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조금씩 신체와 정서의 장애를 겪으며 소소히 늙어가는 것이, 불편하겠지만, 뭐 당연한 일 아닌가. 내 몸과 마음의 장애가 문제가 아니라, 내 몸에 맞게 설계되지 않은 사회가 문제인 거지.

 

장애인과 노인에 대한 태도는 비슷하다. 쓸모라는 기준으로 두 정체성을 바라보니, 생산성이 적거나 소진된 인간의 인격과 존엄은 관심 밖이다. 생산성과 쓸모가 있는 장애인과 노인은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며 ‘보편의 타자’에서 예외가 된다. 길랭-바레 증후군으로 추정되는 장애를 가졌던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그렇고,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와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있다. 그러나 고유성을 빼앗긴 존재들은 쉽게 혐오와 편견의 대상이 되고 빈곤 문제 같은 사회적 차별에 노출된다. 보건복지부 <자살백서>에 의하면 ‘65세 이상 노인 자살률은 53.3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고, 회원국 평균보다 2.9배 높다’고 보고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노인실태조사>는 ‘자살 원인이 우울 증상과 연관되어 있고, 자살을 생각하는 이유 중 1위가 경제적 어려움’이라 한다. 어떤 노인전문가는 “나라가 노후를 못 챙겨주니, 선진국처럼 금융자산의 비중을 늘리라”고 충고한다. 금융도 자산도 없는 노인들과 예비노인들은 어찌해야 하는가.

 

이 문제를 보편적 위험으로 간주한 국제사회는 ‘노인을 위한 유엔 원칙’(United Nations Principles for Older Persons), ‘마드리드 국제고령화행동계획’(Madrid International Plan of Action on Ageing: MIPAA) 등을 세웠다. ‘인구고령화는 실제 노인 개인의 삶에는 부정적인 영향이 될 수 있다’는 전문가의 말이 아니더라도 생존이 생존을 위협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의 해결을 위해 구체적으로 노력할 때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8년 ‘노인인권 정책방향 및 대응전략을 위한 종합보고서’를 발행했다. 보고서는 노인인권 핵심 추진과제 세부과제를 적고 있다. 누구나 노인이 되고, 장애를 갖게 될 것이며 생산하지 못하는 무용한 존재가 될 것이다. 현재 노인뿐만 아니라 전 연령에게 예정된 인권문제이기에 더욱 관심이 필요하다. 노력이 무위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미합중국 대통령도 숙주로 삼는 평등한 감염병조차 노인에게는 차별적이다. 다른 연령대와 현격한 차이가 나는 치명률로 말미암아 노인들은 자신이 사는 공간에 유폐되었다. 그들이 있어 ‘고향’인데 이번 추석에 ‘고향’은 외로웠다. 노인권리선언(Declaration of Old Age Rights)에는 “모든 노인은 일정하게 확보된 안정상태에 대한 권리와 인생의 말년에 고민과 근심에서 해방된 생활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는 내용이 있다. 진정한 인간 해방은 행복한 노인들의 사회에 있지 않을까. 추석 연휴 기간인 10월2일은 ‘노인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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