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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노멀-트렌드] 밥그릇이 아니라 밥맛이 중요하다 / 김용섭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10. 6. 05:36

[뉴노멀-트렌드] 밥그릇이 아니라 밥맛이 중요하다 / 김용섭

등록 :2020-10-04 17:20수정 :2020-10-05 02:40

 

김용섭 ㅣ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철밥통이란 말만큼 고약한 말도 없다. 어떤 일이든 경쟁력이 떨어지면 밀리기도 하고, 도태되기도 한다. 더 뛰어난 경쟁력과 효율성을 가진 이들이 선택받는 건 적자생존에 해당된다. 자유경제, 시장논리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더더욱 이런 적자생존을 당연시해 받아들일 듯하지만, 막상 자신의 상황이 되면 어떻게든 기득권을 지키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공무원에겐 직업의 안정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안정성이 철밥통이어선 곤란하다. 비즈니스에선 철밥통이란 게 있을 수도 없다. 잘나가던 거대기업이 변화에 못 따라가서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것도 자주 본다. 새로운 도전자들이 계속 등장해 치열하게 싸운다. 그 덕분에 성장한다. 경쟁력은 지속적으로 진화하고 성장할 때 만들어지는 것이지 한번 얻은 것을 평생 지키기만 해선 결코 만들어지지 않는다. 정치나 정부가 사회 변화에서 가장 뒤처져 있는 건 지속적으로 진화하고 성장하는 데 인색해서다. 변화를 외치지만 가장 변화를 못 한다.

 

2020 인사혁신통계연보에 따르면 우리나라 공무원은 111만명(2019년 12월 말 기준)이 넘는다. 이 중 행정부 공무원이 가장 많은데 국가 공무원이 68만명 정도, 지방 공무원이 40만6천명 이상이다. 국가 공무원 중 36만8천여명이 교육직으로 가장 많다. 지방 공무원 중에선 기초자치단체(시·군·구 226개)가 35만명 가까이 된다. 여기에 공기업, 준정부기관 등 준공무원에 해당되는 이들도 42만명 정도 된다. 숫자가 많은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그만큼의 필요가 있다면 더 많아도 된다. 하지만 철밥통이란 인식이 유효한 건 심각한 문제다. 공기업 중에서도 경영 부실인 곳이 상당하지만 연봉 수준은 대기업 이상인 곳도 많다. 시·군·구 226개 중 113개는 지방세를 거둬서 공무원 인건비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사업에 필요한 예산은커녕 인건비조차 자체 해결이 안 돼서 정부 지원을 받는 상황이지만, 최근 3년간 226개 중 223개의 공무원 수가 늘었다. 심지어 226개 시·군·구 중 165개가 최근 3년간 인구가 감소했다. 하지만 이들 모두 공무원 수는 늘었다. 물론 인구가 줄어들었다고 공무원 수가 늘지 말란 법은 없다. 하지만 인건비도 감당 못 하면서, 인구도 줄었는데, 무슨 명분으로 공무원 수를 늘릴까? 지방 공무원뿐 아니라 국가 공무원도 마찬가지다. 정보기술(IT)의 진화로 업무 효율성 제고 방법이 얼마든지 늘어났는데도 공무원 수는 계속 증가세다.

 

취업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직업은 공무원이다. 심지어 중고생의 장래희망 상위권에도 공무원이 자리 잡고 있다. 공무원이 좋은 직업인 것도 맞고, 분명 우리 사회에 필요한 역할인 것도 맞지만, 취업시장과 청소년 장래희망에서 공무원이 지지받는 건 정년 보장이 되는 안정적 밥벌이여서다. 과거 세대가 아니라 지금의 청년 세대, 미래 세대가 철밥통이란 이유로 공무원을 선망하는 건 가혹하고 슬픈 일이다. 공정과 정의를 좋아하는 정치권에서, 왜 이 문제는 그동안 외면하고 있을까? 철밥통을 깨야 한다. 능력 있고 성과가 크면 더 우대하고, 무능하면 도태시키는 것은 예외가 없어야 한다. 뛰어난 인재 한명이 만명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시대에, 수재들이 고시를 보고 공무원만 되려는 상황에 우리 사회는 반성해야 한다. 반성 정도가 아니라 심각성을 통감해야 한다. 미래를 만들어낼 도전자가 부족한 국가에 미래는 없다. 글로벌 산업의 주도권은 이미 아이티가 쥐고 있고, 정책과 제도는 늘 산업 변화 속도를 못 따라간다. 너무 빨라서 못 따라가는 게 아니라, 그 변화 속도에 둔감한 공무원과 정치인들이 많아서다. 과거를 살면서 어떻게 미래를 이끌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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