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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자대표의 갑질, 남 일 같지 않네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10. 19. 04:50

입주자대표의 갑질, 남 일 같지 않네

등록 :2020-10-16 04:59수정 :2020-10-16 09:57

 

지난해 공쿠르상 수상작 ‘모두가 세상을…’ 번역 출간

 

프랑스를 대표하는 문학상인 공쿠르상 2019년 수상작인 장편소설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아>의 작가 장폴 뒤부아. 1955년생 남자의 삶의 궤적 속에 지난 반세기 남짓한 사회상의 변모를 요령껏 담아 냈다. ⓒ Editions de l\'Olivier - Ulrich Lebeuf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아장폴 뒤부아 지음, 이세진 옮김/창비·1만5800원

 

공쿠르상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문학상으로 매년 11월에 발표된다. 올해 수상작 발표를 앞두고 지난해 수상작인 장폴 뒤부아의 소설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아>가 번역돼 나왔다. 수상 당시 “대중성과 문학적 완성도를 모두 갖춘 작품”이라는 심사평을 들었다. 뒤부아는 <프랑스적인 삶> <타네 씨, 농담하지 마세요> 같은 작품이 한국에도 소개되어 있는 인기 작가다.

 

소설은 일인칭 주인공인 폴이 캐나다 몬트리올 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상황으로 시작한다. 그는 교도소에서 지척지간인 렉셀시오르 아파트에서 오래도록 일한 인물. “나는 그 콘도에서 이십육년 동안 관리인, 수위, 잡부, 간호사, 고해신부, 정원사, 심리상담사,

 

입주자대표 갑질 들이받은 관리인

감방에서 지난 삶 회고하는 형식

 

전기기술자, 배관공, 주방설비업자, 화학자, 엔지니어였다.” 68 가구로 이루어진 이 아파트에서 관리인을 거쳐 관리소장으로 일했던 그가 2년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오게 된 까닭은 소설이 상당히 진행되기까지도 제시되지 않는다. “당신은 여기 있을 사람이 아닙니다”라는, 감형 여부를 예비 판단하는 교도행정 공무원의 말에서 무언가 안타까운 사연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을 따름이다.

 

폴은 거구의 사내 패트릭 호턴과 방을 같이 쓰는데, 갱단 조직원인 그는 경찰 끄나풀로 의심되는 동료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소설은 폴과 패트릭의 감방 생활 이모저모를 알려주는 현재 이야기와, 폴이 교도소에 오기까지 그의 전 생애를 되짚는 지난 이야기가 갈마드는 형식을 취한다.

 

폴은 1955년 프랑스 툴루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요하네스 한센은 덴마크 출신의 개신교 교회 목사였고, 어머니 아나 마르주리는 툴루즈의 작은 영화관 집 딸로 태어나 가업을 물려받았다. “주의 깊고 절도 있으며 심란하리만치 잘생긴” 아버지와 “누구나 눈이 번쩍 뜨일 만한 미모를 타고났고 지적인 매력까지 돋보였”던 어머니는 무엇보다 서로의 외모에 반해 결혼했던 터였다. 그렇다는 것은 외모 이외의 다른 측면에서 부부 사이에는 갈등의 소지가 잠재되어 있었다는 뜻이겠다.

 

무엇보다 목사의 아내인 어머니가 신앙과 교회에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이 가장 심각한 불안 요인이었다. 어머니는 자신의 극장에서 실험적이거나 좌파적 색채가 강한 영화를 자주 틀었고 지역의 각종 정치적 집회를 극장에 유치했다. “내 어머니 아나 마르주리는 그 지역 투쟁의 뮤즈로 변신했다.” 포르노 영화 <목구멍 깊숙이>를 어머니의 극장에서 개봉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당신 영화관에서 그 포르노를 틀면 나는 끝장이야”라는 남편의 경고에도 아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당신은 보잘것없는 시골 목사, 강박관념에 빠진 개신교도, 변화에 눈먼 보수주의자야. 아무것도 못 보고 아무것도 이해 못하면서 성경을 형법처럼 휘두르며 단언하고 심판하지.” 이혼은 불가피했다.

 

아버지는 캐나다 퀘벡주의 어느 소도시 감리교회의 담임목사로 직장을 옮겼고, 어머니에게 실망한 폴도 이내 아버지의 뒤를 따랐다. 툴루즈에서 1학년 이수 학점도 채우지 못한 대학 교육은 그것으로 작파하고 작은 종합건설회사에 취직했으며 결국 그곳에서 배우고 익힌 기술을 바탕으로 아파트 관리인이 되었다. 어머니의 자살, 아버지의 어처구니없는 파멸과 죽음이 뒤를 이었다. 죽기 직전 마지막 설교에서 아버지는 사람의 허물을 크게 보지 말라는 취지로 제 아버지가 평소 했던 말을 소개한다: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습니다.’ 작품 제목이 여기에서 왔다.

 

주인공 폴이 감옥에 오게 된 사정은 소설이 3분의 2 넘게 진행된 뒤에야 등장한다. 그동안 독자의 궁금증을 자아내기만 했던 사건의 실체가 이 대목에 와서 드러나는데, 그것은 마그마처럼 들끓던 에너지가 활화산이 되어 폭발하듯 강렬한 분노와 사회적 메시지를 수반한다.

 

이십육년 간 아파트 관리인으로 일하며 입주민들과 가족처럼 지내던 폴에게 위기가 닥친 것은 그에게 호의적이었던 입주민대표회장이 갑작스레 숨지고 세즈윅이라는 새 입주민이 대표가 되면서였다. 모든 것을 돈과 숫자로 환산하고 안과 바깥, 이쪽과 저쪽 사이에 금을 긋고 감시하는 세즈윅은 자본주의적 효율성과 비인간성의 화신과도 같은 인물이다. 가령 그는 건물 벽면 일부가 떨어져 나가자 용역회사를 통해 벽돌공들을 고용해 수리하도록 하는데, 그중 한사람이 사고로 떨어져 죽는 일이 발생한다.

 

“그는 그 사람이 어쩌다 떨어졌는지, 그 사람이 많이 힘들어했는지, 누군가에게 알려야 하는지는 묻지 않았다. 그는 건물이 들어 있는 보험증권을 가지고 와서는 외주 용역업체의 작업 중 사고가 났을 때 우리 측에서 져야 하는 책임의 범위만 정확히 알고 싶어 했다.”

 

계약과 보험에 따라 아파트 쪽의 법적 책임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그는 “이 문제는 해결됐네요. 우린 깨끗해요”라는 말로 한사람의 죽음을 사실상 없었던 일로 취급한다. 게다가 폴이 죽은 노동자의 장례식에 참석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노발대발하며 “당장 그 사람들을 불러서 공사를 기한 내에 마무리하라고 하세요”라는 지시를 내린다. 폴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혼이 불가피했던 것처럼 세즈윅과 폴의 충돌도 불가피했다.

 

68혁명 이후 자유주의 물결에서

2000년대 서브프라임 모기지까지

변모하는 사회상도 실감나게 그려

 

폴이 세즈윅을 향해 쌓였던 분노를 폭력적으로 분출하는 장면에서는 독자들의 심장 박동도 빨라지고 주먹에는 자연스레 힘이 들어간다.

 

세즈윅과 충돌이 있기 얼마 전에 그는 아내 위노나를 사고로 잃었다. “우리의 희한한 결혼생활이 지속된 십일년 동안 나는 숨 한번 들이마시는 순간조차 위노나 마파치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고 생각한다”고 할 정도로 위노나에 대한 폴의 사랑은 절대적이었다. 그에게 위노나는 세즈윅과 반대되는 가치의 총합과도 같은 인물이다. 답답하고 암울한 감옥 생활에서도 위노나의 기억은 그에게 따뜻한 위로와 희망의 근거가 된다. 그렇지만 세즈윅의 고약한 사람됨이 생생하게 그려지는 반면, 위노나라는 인물은 어쩐지 흐릿하고 구체성이 떨어져 보인다는 점은 아쉬움을 남긴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