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50:11-20 심판의 이유와 결과
50:18-19 보라 내가 앗수르의 왕을 벌한 것 같이 바벨론의 왕과 그 땅을 벌하고 이스라엘을 다시 그의 목장으로 돌아가게 하리니
1. 인간의 역사를 인간의 눈으로 보면 정복과 보복의 악순환입니다. 조금 더 깊은 눈으로 들여다 보면 도전과 응전의 역사로 해석됩니다.
2. 타락한 인간은 자신의 소유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탐욕스러운 인간은 타인의 소유를 빼앗지 않으면 못 견딥니다. 갈등의 원인입니다.
3. 국가 간에도 경계에 만족하지 못하고, 현상을 타파하고자 하는 욕구가 비등하면 전쟁으로 치닫습니다. 정치인들은 위기를 조장합니다.
4. 하나님은 이 냉혹한 인간의 현실 속에서 일하십니다. 의인은 없으되 단 한사람도 없는 불의한 현실 속에서 일하십니다. 대단한 결정입니다.
5. 한사람 한사람의 기도에도 응답하시지만 나라와 민족을 움직여 구원의 흐름을 이끄십니다. 한 민족을 택하고 다듬어 나라를 만듭니다.
6. 마치 조각가가 돌을 깎고 다듬는 것과 같고, 은이나 금을 용광로에 넣어 제련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마음 속에 이미 윤곽이 있습니다.
7. 돌이 아픔을 느낀다면 조각 과정 전체를 통해 비명을 지르겠지요. 하지만 그 돌이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빚어질지 짐작할 수 있을까요?
8. 금이나 은이 통증을 자각한다면 제련의 전 과정에 저항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토록 번쩍이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9. 이스라엘은 복을 받은 것입니까? 못 받은 것입니까? 하나님이 택하셨다는 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참으로 보면 볼수록 끔찍한 과정입니다.
10. 앗수르에 짓밟히고 바벨론에 으깨어집니다. 그러나 끌이나 정과 같은 그 도구들이 마치 주인인 것처럼 행세하도록 버려두지 않습니다.
11. 이스라엘을 연단하는데 제국을 사용하지만 도가 지나치면 토사구팽입니다. 사랑으로 시작된 일이며 공의를 세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12. 하나님의 손길에는 사랑이 미치지 않는 일이 없고, 하나님의 의중에는 공의가 떠난 일이 없습니다. 다만 인간이 오해할 뿐입니다. 심판과 구원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사랑과 공의의 회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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