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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하의 청개구리] 야생 서식지가 바로 기후변화 대응책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11. 10. 04:02

[김산하의 청개구리] 야생 서식지가 바로 기후변화 대응책

등록 :2020-11-08 11:59수정 :2020-11-09 10:53

 

김산하 ㅣ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

 

나는 인도네시아의 열대우림에서 야생 동물을 연구했다. 자바 긴팔원숭이라는 동물을 찾아 매일 숲으로 출퇴근하던 날들은 내 인생에서 단연 가장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밀림은 그곳이 품은 풍부한 생물다양성만큼이나 다채로운 추억을 내게 선사해주었는데, 그중에서도 한가지 깨달음은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도 뇌리에 강하게 박혀 있다. 그것은 바로 숲 자체가 비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이다.

 

열대우림은 빽빽하게 자라난 식물들의 왕성한 생명활동 덕분에 증발산량이 많고 전체적으로 습도가 높게 유지된다. 공기 중에 수분함량이 높으면 비구름의 형성에 기여하게 되고, 숲의 면적이 넓을수록 그 지역 전체의 기상에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점점 늘어나는 물의 양에 구름은 점점 무거워지고 버티다 못해 어느 순간 밑으로 쏴 낙하시켜버린다. 대지에 도달한 물은 육중한 나무뿌리에 의해 다시 흡수되면서 이 사이클은 반복된다. 비와 숲은 그래서 한 몸이며, 이런 이유로 나는 열대우림을 ‘비숲’이라 명명하기도 했다.

 

날씨에 그저 지배받는다고 생각했던 것이 오히려 날씨를 생성한다는 사실은 매우 놀랍다. 실제로 아마존 열대우림은 강우량의 최대 50%를 자체적으로 만든다고 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해마다 일어나는 아마존의 대규모 화재가 우림을 사바나 지역으로 바꿔가는 현상이 너무나도 심각한 문제인 것이다. 숲이 줄어들면 그만큼 날씨도 건조해질 수밖에 없다.뒤집어 말하면 숲을 크게 늘리면 기상현상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요즘 과학자들이 입을 모아 하고 있는 얘기가 바로 이것이다. 지난해 <사이언스>지에 실린 논문에서는 기존의 숲이나 식량 재배지 외에 추가로 9억헥타르의 숲을 전세계적으로 조성할 수 있고 이렇게 함으로써 기후변화에 가장 효과적이고 저렴하게 대비할 수 있다고 하였다. 본 연구에서 지목한 잠재적인 삼림녹화지역이 실제보다 과장되어 있다는 비판이 추후에 제기되었지만, 자연 탄소저장고인 나무가 대단위로 늘어나면 상당량의 탄소를 흡수하기 때문에 매우 훌륭한 기후변화 대응책이 된다는 점은 이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래서 나무와 숲을 일컬어 ‘자연적 기후변화 해결책’(Natural Climate Solution)이라 하는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생태계가 온전한 숲일수록, 즉 단순 녹지가 아니라 여러 생물이 어우러져 사는 서식지를 늘릴수록 기후변화에 더욱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네이처>지에 발표된 한 논문에서는 인간에 의해 훼손 및 변형된 지역의 15%를 야생의 상태로 복원하면 이산화탄소 299기가톤을 흡수할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은 산업혁명 이래로 배출된 전체 탄소량의 30%에 육박하는 양이다. 심지어 한번 더 놀라운 것은 이렇게 함으로써 동시에 현재 멸종위기에 처한 생물종의 60%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일거양득과 같은 말조차 턱없이 부족한 표현에 불과하다.

 

나무는 그렇다 치고, 거기 사는 생물들이 기후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원래 살다가 사라진 야생 동식물이 복원되면 잠시 멈추었던 각종 생태적 기전들이 재가동되고, 그렇게 됨으로써 탄소를 포함한 자연 자원의 순환과 처리가 활발해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북부 한대림에 사는 늑대의 경우 초식동물 수가 너무 많아지지 않게끔 조절함으로써 서식지 전체의 탄소발생량을 억제한다는 효과가 조사되기도 하였다. 한 생물의 기여가 이토록 대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한 종의 생명으로서 기여해야 하는 바도 너무나 자명하다. 기후위기를 일으킨 장본인 종으로서 숲과 자연 서식지를 절대로 훼손하지 않는 것은 물론, 할 수 있는 만큼 늘리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 모두의 임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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