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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 “군인이 국민 살상”... 신군부 ’자위권 논리’ 깨뜨렸다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12. 1. 03:23

재판부 “군인이 국민 살상”... 신군부 ’자위권 논리’ 깨뜨렸다

등록 :2020-11-30 17:28수정 :2020-12-01 02:46

 

재판부 5·18 헬기사격 인정…40년 논쟁 종결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상공을 비행하는 계엄군의 UH-1H 헬기. 5·18기념재단 제공

 

법원이 40년 만에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헬기사격이 실제로 있었다고 인정했다. 이로써 지난 40년 동안 신군부가 광주 학살을 정당화하기 위해 내세워온 ‘자위권 논리’도 깨지게 됐다.30일 광주지법 형사8단독 김정훈 판사는 고 조비오 신부를 비난한 혐의(사자명예훼손)로 재판에 넘겨진 전두환(89) 전 대통령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며 “1980년 5월21일과 27일 헬기사격이 있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김 판사는 “사자명예훼손죄는 허위사실 적시가 증명돼야 성립한다. 이 재판의 쟁점인 5·18 헬기사격을 살펴보면 조 신부가 봤다는 5월21일은 500MD 무장헬기가 출동했고 다수의 목격자가 존재한다. 전씨 쪽은 일부 시민만 목격한 사실을 근거로 조 신부의 증언이 허위라고 주장했다. 당시 광주 시가지에 있던 모든 사람의 증언이 이뤄지지 않았고, 검찰도 증언이 반복되는 증인은 신청하지 않았다고 해 이 사건 결론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호남지역 계엄사령부 구실을 한 전투병과교육사령부가 1980년 작성한 광주소요사태분석(교훈집)에 기재된 ‘유류 및 탄약의 높은 소모율’을 두고서는 “항공교범을 참고한 것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실제 상황에 대한 분석을 기재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교훈집은 헬기사격의 유력한 증거”라고 말했다.

 

또 김 판사는 “조 신부가 직접 목격하지는 않았지만 5월27일 상무충정작전 때 전일빌딩을 향한 헬기사격 부분을 살펴보면 빌딩 10층 바닥에 분포한 탄흔을 봤을 때 헬기사격이 아니고서는 설명되지 않는다. 전일빌딩 내부에서는 교전이 없었다는 계엄군 진술이 있었고 전일빌딩이 가장 높은 건물이었던 상황을 고려하며 지상군에 의한 외부 사격은 배제할 수 있다”고 근거를 들었다.

 

김 판사는 전씨가 회고록에서 헬기사격을 봤다고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신부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한 것은 의도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김 판사는 “군은 5·18 당시 사격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자위권 발동을 주장했지만 헬기사격은 자위권을 무색하게 하고 국민을 지켜야 할 군인이 오히려 국민을 살상하려고 했다는 증거”라며 “피고인은 미필적으로나마 헬기사격이 없었다는 자신의 주장이 허위라고 인식하면서 이 사건 회고록 중 쟁점 부분을 집필했다고 인정된다”고 지적했다.

전씨는 대통령 퇴임 30주년을 맞은 2017년 4월 출간한 회고록에서 ‘5·18은 북한군이 개입한 반란이자 폭동’, ‘5·18 당시 헬기사격 목격담은 허구’, ‘5·18 진압은 최규하 대통령 지시’ 등등 자신은 5·18과 무관하고 계엄군의 광주 진압은 정당했다고 적었다.

 

전씨는 또 자신을 ‘씻김굿의 제물’이라고 희생자인 양 표현해 광주시민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특히 헬기사격을 증언했던 조 신부나 아널드 피터슨 목사를 두고 ‘가면을 쓴 사탄’,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는 막말도 서슴지 않았다.

 

이에 5·18 단체와 조 신부의 유족은 회고록 출간 직후 전씨를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고, 같은 해 6월 회고록 출판 및 배포 금지 가처분신청과 손해배상 청구를 했다. 2018년 광주지법 민사재판부는 5·18 단체 손을 들어주며 총 7천만원 배상 판결을 내렸다. 또 문제가 되는 회고록 내용 69곳을 삭제하지 않으면 출판·인쇄·발행·배포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결국 해당 내용을 담은 회고록 1권은 현재 판매되지 않고 있다.

 

검찰은 전씨가 헬기사격을 알고 있었음에도 조 신부를 고의로 비난했다며 고소장 접수 1년여 만인 2018년 5월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그를 기소했다. 하지만 전씨는 이듬해 1월7일까지 다섯차례 공판에 불출석했고, 재판부가 강제소환을 위해 구인장을 발부하자 지난해 3월 재판장을 찾았다. 올해 4월27일 재판부가 바뀌며 공판 절차가 갱신돼 다시 광주지법에 출석하기도 했다.

 

재판부의 이번 판단으로 신군부가 광주 학살을 정당화하기 위해 지난 40년간 주장했던 이른바 자위권 논리는 깨지게 됐다. 5·18 민주화항쟁을 담은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의 저자 이재의씨는 “이번 재판은 전씨가 학살 현장 광주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는 역사적 상징성이 있다. 헬기사격은 사전에 탄을 장착하는 등 준비가 필요하고, 시민을 향한 일방적 학살행위이기 때문에 자위권 논리와는 맞지 않는다”며 “1997년 대법원은 시민 18명이 사망한 5월27일 전남도청 진압작전만 내란목적살인죄로 봤는데 이번 판결로 5·18 기간 전체 사망자가 살인죄 희생자가 된 셈”이라고 말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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