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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검찰개혁과 한국 민주주의 / 신진욱

성령충만땅에천국 2020. 12. 9. 11:49

[세상읽기] 검찰개혁과 한국 민주주의 / 신진욱

등록 :2020-12-08 14:44수정 :2020-12-09 02:39

 

신진욱 ㅣ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지금 우리는 이 나라의 민주주의와 법치를 지킬 책임이 있는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이 대결하는 광경을 목격하고 있다. 이 중 어느 권력의 견제가 더 중대하다고 보느냐에 따라 잘잘못의 평가가 다를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혼란스러운 심경일 것 같다. 왜냐하면 이번 사태는 지난해 조국 사태와 마찬가지로, 단순한 선악 구도가 아니라 여러 모순된 측면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1987년 민주화로 우리는 선거민주주의, 경쟁민주주의, 다수결민주주의라는 낮은 수준의 민주주의를 달성했다. 하지만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는 쉽게 실현되지 않았다. 민주주의의 구현은 단지 선거와 다수결뿐만이 아니라, 시민들의 포괄적 기본권과 선출된 권력의 견제,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정치적 공정성이 보장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바로 이 ‘제2의 민주혁명’이 미완의 기획으로 남겨졌다.지금 수감되어 있는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이 집권했던 9년은, 독재보다 덜 폭력적이지만 그보다 더 난해한 ‘결손 민주주의’의 심각한 문제를 드러낸 시간이었다. 위정자들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대놓고 파괴하는 대신에, ‘국민’의 이름으로 정치권력을 남용했고 검찰·국정원·감사원 등 국가기관의 권력을 ‘법’의 이름으로 남용했다.그중 검찰 권력이 절정에 달했던 때는 이명박 정권 시기였다. 독재 시대에는 군과 정보기관이 고문·학살과 같은 잔혹한 폭력을 행사했다면, 민주화 시대의 검찰은 정권의 반대자들을 범죄자로 만들어 조롱거리가 되게 하고 평범한 시민을 법정에 세워 겁박하는 등 법치의 가면을 쓴 새로운 지배기술을 구사했다.길었던 그 시대는 짧고 극적으로 종결됐다. 천만이 넘는 시민이 참여한 촛불집회, 80%에 이르는 탄핵 찬성 여론,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은 더 이상 너무나 분명한 방식으로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가짜 민주주의가 우리 사회에서 허용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역사에 각인시켰다. 선출된 권력도, 선출되지 않은 권력도 모두 법과 민심 아래 놓여야 한다. 그것이 탄핵의 교훈이다.이런 역사에서 탄생한 문재인 정부의 소명은 어떤 권력도 법과 국민 위에서 오만해질 수 없는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일이었다. 그것을 위한 하나의 중대 과제가 바로 검찰개혁, 즉 검찰이 법의 수호자이기 이전에 먼저 스스로 법 아래 놓이게 하는 개혁이라면, 다른 하나의 과제는 문재인 정부와 집권 민주당 스스로 국민이 부여한 권력을 절제와 관용의 자세로 행사하는 일이었다.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두 과제를 동시에 실현하는 데에 두가지 난점이 있었다. 하나는 문재인 정부가 이전 정부의 민주주의 훼손을 밝혀내기 위해 검찰의 힘을 너무 키웠다는 역설이다. 검찰은 탄핵과 ‘적폐청산’ 과정에서 활약하며 위상을 높였을 뿐 아니라 정의의 수호자로 재탄생하는 정치적 자산까지 얻었다.

 

다른 난점은 노무현의 검찰개혁과 거울상의 문제다. 노무현 대통령은 검찰의 칼을 뺏는 대신 통치권자부터 칼을 놓는 방식으로 검찰을 개혁하려 했다. 하지만 한낱 평검사들조차 대통령의 호소를 조소했고, 퇴임 후 그는 검찰권력의 희생자가 됐다. 반면 문재인 정부는 선출된 권력의 정당한 권한을 최대한 동원해서 개혁을 실현하려 했다. 문제는 ‘정당한’ 권한과 ‘최대한’의 권한 사이의 공간은 매우 좁다는 것이다.오랜 기득권을 지키려는 검찰의 공세를 꺾고 개혁을 완수하려면 최대한의 권한을 동원해야 한다. 그러나 다수 국민이 정당한 권한이라고 판단하는 선을 넘는다면, 촛불정신을 문재인 정부 스스로 배신한 것으로 기억될 것이다. 검찰개혁을 놓칠 것인가, 정권의 정당성을 잃을 것인가, 둘 다 잡을 것인가?최악의 시나리오는 검찰총장이 대통령과 맞대결하는 구도가 형성되어 검찰총장이 정의로운 순교자가 되고 문재인 정부는 촛불정신을 배반한 오만한 권력이 되는 그림이다. 최선의 시나리오는 선출된 권력의 포용과 자기절제를 보여주면서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민주화를 함께 달성하는 길이다.그러므로 지금 상황은 단지 검찰개혁의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 더 넓은 의미에서 한국 민주주의를 더 높은 수준으로 진전시키는 개혁 과정의 한 축으로 검찰개혁을 위치시켜야 한다. 이제까지가 칼과 칼이 부딪치는 대결의 프로세스였다면, 앞으로는 부드럽지만 강한 민주적 정치력의 새로운 프로세스가 개시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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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73272.html#csidx76f9de7c8db682fac3069712662d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