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재 장로(박사)소설 콩트 에세이

불가항력적인 은혜

성령충만땅에천국 2021. 3. 26. 00:17

불가항력적인 은혜

은혜 추천 0 조회 50 15.09.07 10:29 댓글 2

현재페이지 URL복사 https://cafe.daum.net/seungjaeoh/TwAb/29?svc=cafeapiURL복사

 

게시글 본문내용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16:9)

 

광복 이후 일인 교사가 중·고등학교에서 물러난 후 특히 수학·물리를 가르칠 교원의 부족을 느끼자 국가는 대학에 부설로 중등교원양성소라는 것을 개설하였다. 나는 그곳에 1953년 입학하였다. 정확히 말하면 그 명칭은 전남대학교 부설 중등교원양성소였다. 소장은 전남대학 총장이었고 교수들은 대학에 출강한 강사들이었다. 그중에 국어에 김현승, 수학에 하광철 등 쟁쟁한 분들도 있었다. 나는 당시 불신자였는데 후에 하나님께서는 불신자를 이런 방법으로 초청하시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것은 내가 들어가기 한해 전에 이 양성소는 생겼고 내가 졸업할 때 이 양성소는 문을 닫았다. 2년 동안 존재했던 학교인데 이것은 마치 나를 위해 만들었다 없앤 빤짝 대학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나는 겪을 것은 다 겪었다. 당시 대학마다 있었던 학도호국단은 군사훈련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대학생들을 일제히 군에 입대 시켜 정식훈련을 마치게 한 다음 예비역으로 편입 다시 대학에 복귀시킨 일이 있었다. 그 첫 번째 시도가 19547월부터 9월까지 3개월간 논산 훈련소에서 시행되었다. 이들에게 주어진 특수 군번이 so 군번인데 후에 흔히 so를 빼고 000으로 시작하는 빵빵군번이라는 것이다. 나는 제1기 학도특별군사훈련생으로서 간부후보생 전반기 훈련을 수료했다는 수료증서와 함께 보병학교장 서종철 준장이 수여한 제대증을 가지고 학교에 복교했다. 이때 내 군번은 so000009번이었다. 1기생인 나는 9번째의 우수한 성적으로 예편되었다는 뜻이다. 나는 1학년을 마치고 예비역으로 편입되어 2학년으로 올라가 학교를 마치고 졸업했는데 곧장 소집영장이 나와 군에 입대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예편시켰을 때 국가에서 처음 약속했던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러나 사병으로 다시 군 생활 2년을 마치고 1957년 제대했더니 이제는 광주 시내에는 수학 교사 자격증을 가지고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조선대학 부속 중학의 교장으로 계시는 분은 나를 잘 아는 분으로 당분간 강사로 중학교에 나올 수 없느냐고 말해서 그렇게 하기로 하였다. 가르치는 것은 수학이 아니고 작문이었다. 문학에 대한 나의 소질을 그는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었다. 나는 거기서 작문을 가르치기 시작한 다음 해 19591월에 한국일보에 신춘문예 당선을 하고 그해 3월에는 결혼도 하고 학교에서는 정교사 임명도 받았다. 그동안 나는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1960년은 참 싫은 해였다. 그 해는 대통령을 압도적인 다수로 대통령으로 당선시켜야 하는 해였기 때문이다. 나는 전교생 1,300명에게 우리 리 대통령이라는 작문 숙제를 내서 우수 작품을 선정하여 시상하는 일을 해야 했고, 또 가정방문으로 정치 성분 조사를 해 상부에 보고도 해야 했다. 내가 속한 조선대학 총장은 당시 여당 국회의원이었고 광주는 야당 도시여서 야당 대통령 후보 조병욱 박사는 도민의 희망이었는데 2월 말 서거하고 3·15는 부정선거가 있던 해였기 때문이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이 학교를 떠나고 싶었다. 모든 여건이 내가 이 직장을 떠나도록 강요하고 있었다.

전주의 기전여·중고는 내가 애굽에서 탈출해 온 것과 같은 곳이었다. 외국인이 교장이어서 정치적 간섭을 덜 받는 곳이었다. 나는 이곳에 옮겨 온 것은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둠에서 빛으로 옮겨온 것이다. 그 상황이 어찌나 간절하고 피할 수 없는 것이었는지 나는 술도 끊고, 담배도 끊었는데 다시는 입에 대기도 싫은 것이 되었다. 나는 그렇게 맴돌고 등록하기를 싫어하던 교회에 꼼짝없이 묶여 살게 되었다. 칼뱅의 5대 교리에는 주권적인 선택, 불가항력적인 은혜라는 말이 있는데 나는 후에 불가항력적인 은혜로 그렇게 그리스도에게 붙잡혔다는 생각을 한다. 나의 계획과는 상관없이 예수님은 계속 나의 길을 인도하고 계셨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