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유산-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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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유산
흔히 다음과 같은 말을 자주 듣는다. “나는 물려줄 재산은 없고 다만 믿음의 유산을 남기고 죽고 싶을 뿐이다.” 정말 믿음의 유산을 자녀들에게, 또는 후세에 물려줄 수 있는 것일까? 우리나라에 이번에 훌륭한 한 기업의 회장은 나라에 크게 이바지했을 뿐 아니라 떠날 때는 자녀들에게 많은 재산을 유산으로 남겨주어 그 상속세만 해도 10조 원이 넘을 것이라고 한다. 재물은 유산으로 남길 수가 있다. 상속세만 내면 수혜자는 아무것도 안 해도 그 재산이 자녀들 소유가 된다. 그러나 믿음의 유산은 자녀들이 아무 일도 안 했는데 부모의 믿음 때문에 자기가 그 믿음을 이어받을 수는 없다. 믿음은 내가 물려주는 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직접 믿는 자의 마음에 넣어주는 것이다. 하나님이 부르시고 부름을 받은 사람이 엎드려 응답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과 믿는 자와의 관계가 형성된다. 내가 하나님을 믿고 그분께 순종하기로 결단을 하면 하나님은 그 아들의 영을 내 마음 가운데 보내사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신다. 흔히 하나님은 손자가 없다는 말을 한다. “내 아들은 목사요, 딸들은 목사 사모와 교회 권사로 모두 충성스럽게 교회를 섬기고 있다. 이것은 내가 후손에게 물려준 믿음의 유산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하면, 나는 하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나는 하나님의 아들로 살고 있는데 내 자녀들은 내 ‘믿음의 유산’을 받아 목사나 권사가 되었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손자가 된 셈이다. 그러나 그들도 나처럼 예수님을 영접하면 그들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며 하나님께서는 그때부터 그들을 “너는 내 아들이다.”라고 부르신다. 즉, 하나님께는 손자가 없다. 하나님은 노예로 지내는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로 불러 자유를 주실 때도 그들을 아브라함의 후손이라 하지 않고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다.”라고 말씀하셨다. 믿음은 유산으로 받는 것이 아니고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나는 것처럼 예수님과 만남에서 비롯된다. 내 믿음은 아버지 때문이 아니요, 목사님 때문이 아니다. 내가 어떤 계기든 주님을 직접 만나야 한다. 이번에 추수감사절을 한 달 앞두고 우리 교회 목사는 ‘시·찬·감 노트’라는 것을 만들어 교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4주 동안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거기에 적힌 시와 찬송을 필사하고 묵상하며 감사한 내용을 적으라는 것이었다. 정성 들여 필사하면서 성경에 그런 시가 있었는가? 그런 뜻깊은 찬송이 있었는가? 하고 새롭게 깨달으며 필사하는 동안 말씀이 마음 깊이 새겨지며 찬송이 주님께 드리는 참 찬미가 되게 하기 위해서였다. 목사님의 깊은 뜻은 하나님의 음성을 목사인 자기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듣지 말고 이제는 직접 성경에서 듣고 새로 거듭난 기독교인이 되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을 직접 만나는 계기는 여러 경우가 있겠지만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첩경이기 때문이다. 어떤 계기에 나는 룸살롱 마담으로 있던 분이 목사가 된 간증을 들은 일이 있다. 그분은 자살 직전에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갔던 생각을 하고 철저히 회개하고 하나님을 찾았다. 교회에 나갔으나 얼마 만에 한 권사로부터 교회를 옮겨 달라는 부탁을 받고 이 많은 교회 중에 어떤 교회로 가야 할까 하고 절망했다. 그런데 누군가가 큰 교회에 가보라는 말을 해서 여의도의 순복음교회로 가게 되었다고 한다. 거기서 그녀는 전도 왕이 되고 각 교회에 전도 집회에 나가 찬양으로 간증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교회에서는 신학교를 가라고 권유했는데 신학교에 가서 목사가 되어 교회를 맡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되어 거절하고 피해 다녔다. 그러나 자기를 아끼는 한 권사님의 집요한 강요와 후원으로 대학원까지 나와 목사 안수를 받게 되었다는 간증이다. 그녀는 한해에 450명도 전도한 일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도 룸살롱 아가씨, 밴드부 회원, 웨이터 등 많은 사람을 전도하여 상담하고 목회자로 찬양 사역자로 교회 일군으로 보내고 있다고 한다. 그 많은 사람이 그녀를 따라 교회에 나오면 교회를 만들고 목회자가 되어 성공한 교회를 이끌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녀는 목회를 거부한다. 집회를 많이 다녀서 한 교회를 맡기도 힘들거니와 자기는 죄인이 회개하여 천국 시민으로 사는 것을 보는 것이 기쁨이라고 했다. 복음성가 협회의 회원으로 찬양으로 간증하며 집회를 다니는데 그때마다 중한 죄를 회개하고 주께 나오면 그곳이 바로 천국이라는 것을 알려 주고 싶다고 했다. 그분이 좋아하는 찬송은 ‘내 영혼이 은총 입어’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천국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라 중한 죄를 회개하고 나면 바로 눈앞에 있는 것이 천국이며 이것이 하나님의 은총임을 전하고 살면 자기는 사명을 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2020년 하나님이 교계에 주신 큰 재앙 중 하나는 코로나 19다. 모두 교회를 나가지 못하자 아우성쳤다. 교회에 나가지 못하고 목사님의 설교를 듣지 못하니 믿음이 식는다고 개탄했다. 각 교인은 집에 하나님의 말씀이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인 성경을 여럿 놔두고 교회에 못 나가고 목사님의 설교를 못 들어 믿음이 없어진다고 개탄하고 있다. 모두 하나님의 손자가 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정작 바울처럼 하나님의 아들이 된 기독교인은 건물과 일정한 장소에 갇혀 있기보다는 세상 끝까지 나가 복음을 전파하려 한다. 오순절에도 예수님은 자기의 아들들을 능력을 주어 방언하게 하고 세상에 흩어놓으셨다. 코로나 19는 재앙이 아니요 침체한 기독교인에 대한 각성제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 ‘믿음의 유산’이란 어떤 뜻일까? 물질적인 유산처럼 내게 무슨 대단한 믿음이 있어 유산을 남기겠다고 오만해 할 것이 아니라 목사가 된 룸살롱 마담처럼 조직과 형식, 의식에 갇힌 교회에서 구원의 방주에 앉았다는 안일함에서 벗어나 세상으로 나가 예수님을 직접 만나게 해 주는 순종의 삶을 사는 일을 ‘믿음의 유산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육신의 아들에게 물려주는 유산이 아니라 혹 순종의 삶을 사는 착한 행실을 보고 주를 영접하는 형제, 자매가 생긴다면 그것을 ‘믿음의 유산’이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왜소한 인간은 나 중심, 내 교회 중심, 내 나라 중심을 벗어날 줄을 모른다. 우리 목사, 우리 교회, 성수주일, 새 신자 영입 행사 등이 개교회주의를 부추기고 교회를 떠난 교인들은 목적을 잃고 무능한 교인이 된다. 또한, 율법주의에의 회귀 현상과 무속 신앙이 교회의 생명력을 죽이고 있다. 이런 교회 활동을 하나님께서는 차마 보실 수 없어서 코로나 19를 보내시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코로나 19는 교인을 교회 안에서 세상으로 흩어놓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부활하여 50일 되는 성령강림주일에 말씀을 따라 한곳에 모인 성도들에게 성령을 주사 방언을 하게 하시고 세상 방방곡곡에 흩어놓으셨다. 지금 하나님은 우리를 가정에, 직장에, 사회에 흩어놓으셨다. 우리가 세상의 유혹과 인간의 탐욕을 버리고 주님처럼 사는 삶의 본을 세상에서 보이면 하나님의 권능으로 주님이 다스리는 천국이 확장되어 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런 흩어진 교회의 사역을 나는 세상에 던지는 ‘믿음의 유산’이라고 말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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