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재 장로(박사)소설 콩트 에세이

삶의 현장 5- 영어할 줄 아는 사람 손들어

성령충만땅에천국 2021. 3. 26. 00:31

삶의 현장 5- 영어할 줄 아는 사람 손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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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할 줄 아는 사람 손들어

 

1954년 11월 나는 입대를 피하려다 안 되어 드디어 군에 입대했다. 두 가지 선택이 있었는데 하나는 전반기 간부후보생 훈련을 마쳤으니 후반기 훈련을 마치고 장교로 입대하든지 아니면 바로 사병으로 입대하는 일이었다. 장교로 입대한 사람들은 얼마 동안은 편한 군대 생활을 했지만 육사생들에게 푸대접을 많이 받았고 또 진급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한다. 나는 사병을 지원했었다.

논산 훈련소에서 부대 배치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거기서 나는 일 개월은 더 기다렸을 것이다. 전·후방 배치 명령이 떨어지면 전방으로 배치된 자가 바로 집으로 연락해서 돈과 고급 장성의 힘으로 전·후방 배치를 바꾸어 놓았다. 전방으로 배치되면 기분 좋다고 PX에서 술을 사고 또 사태가 바뀌면 반대편에서 술을 샀다. 이런 엎치락뒤치락을 몇 번 겪은 뒤 구경만 하던 나는 후방으로 배치되고 거기서 다시 부산의 제3항만사령부로 발령이 났다. 당시 그곳은 후방 중에서도 가장 나쁜 곳이어서 떠나기까지 불쌍하다고 불침번을 면제받기도 했다. 제3항만사령부는 지금의 국군수송사령부의 모체로 1954년 제2관구 소속으로 부산에 창설된 부대였다. 6·25 사변이 생기자 미국에서 보내온 군수 물자를 받아 병참, 병기, 의무기지 사령부 등에 보내, 일선으로 보내기 위한 업무를 수행하는 곳이었다. 물자가 부산항에 도착하면 한국 측 인수자가 나가 미군 측과 함께 인수인계하는 장부(tally)를 만들어 상호 서명하고 교환해야 인수인계 업무가 끝났다. 그런데 당시는 대학을 나온 사병들이 없어 영어를 쓰지 못하고 그리고 있어서 시간이 너무 걸려 화물을 수송해 온 배는 먼바다에 떠서 항구에 들어오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미군 측에서 쓴 탤리만 일방적으로 받고 물자를 받아 일선에 보냈기 때문에 지금까지 끝내지 못한 인수인계 서류 작업을 마무리하기 위해 대학 졸업생이 많이 필요한 곳이었다. 그런데 이곳이 싫다는 것은 지금은 약속된 군수물자가 남아 잉여화물이 들어오고 있어 주·야간 작업을 하며 부두에 나가 하역작업을 하는 배 앞에 서서 체커(checker; 검사원)로 텔리를 작성해야 했기 때문이다.

사령부에 도착했던 우리는 일렬로 정렬해서 사령관 특별보좌관의 훈시를 받아야 했다. 그는 우리더러 “영어 할 수 있는 사람은 손을 들어”라는 것이었다. 대학 졸업생으로 영어 못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모두 눈치를 보며 손들기를 주저하고 있었다. 나는 무모하게 손을 들었다. 고생하더라도 군에서 영어 공부라도 하고 떠나면 보람이 있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결과는 나와 함께 손을 들었던 사람은 사령관실 소속으로 남게 되었다. 그때 우리의 사명은 부두에 나가 군수 물자를 훔치는 사람을 적발해서 직접 부관에게 보고하는 것이었다. 도난당한 물자는 많은데 사령관실까지 보고는 되지 않았다고 한다. 밤낮 외출하는 편한 군대 생활이었다. 그곳에서 내가 주로 나갔던 근무지는 ‘제3 부두’였다. 이것은 또한 내가 제대하고 신춘문예에 투고하여 당선된 소설의 제목이고 그곳이 작중 인물의 활동 무대이기도 했다. 살벌한 곳이었다. 한때는 우리도 권총을 달라. 그렇지 않음, 도둑을 잡는다고 미움을 받아 언제 놈들이 우리를 저녁 바다에 던져버릴지도 모른다고 말한 일도 있었다. 어떤 사람은 의무기지창으로 운송할 화물을 트럭 채 싣고 도망간 사람이 있다고 한다. 당시 약값은 비쌌고 그것이면 자기 필자를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던 것 같다.

돌아보면 그것도 하나님께서 나를 그렇게 부르신 뜻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영어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을 때 왜 내가 손을 들었는지 지금도 알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믿지 않은 나를 그때 불러주신 것 같다.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요 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