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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걷기, 가장 자연 상태에 가까운 행위 / 이병곤

성령충만땅에천국 2021. 5. 6. 11:13

[세상읽기] 걷기, 가장 자연 상태에 가까운 행위 / 이병곤

등록 :2021-05-05 15:17수정 :2021-05-06 02:39

 

이병곤ㅣ제천간디학교 교장

 

걷기로 했다. 작년 10월 일이다. 우리 학교 ‘기후위기비상행동’ 소속 학생 20여명이 교내 포럼을 조직했다. 이 행사의 ‘패널’로 교장을 초대한 셈인데, 발표 전 아이들이 던진 첫 질문은 “앞세대로서 현재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였다. 아이들 기세에 기가 팍 눌렸다. 무조건 “잘못했다” 인정하면서 발언을 시작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발표자료 거의 마지막 슬라이드는 창고 속에서 먼지 뽀얗게 뒤집어쓴 내 자전거였다. “이 지도를 보자. 샘 집에서 학교까지는 6.7㎞야. 일주일에 3일 자전거 타기나 걷기로 출퇴근하면 42㎞. 한달이면 내 경차 휘발유 12ℓ를 줄일 수 있어. 그럼 이산화탄소는 줄고, 나는 대략 2만원 아끼는 거지? 그걸 환경단체 두 곳에 나누어 만원씩 매달 후원할게.” 오오~ 하는 나지막한 탄성이 강당에 퍼졌다. 10초 동안은 기분 짜릿했다. 후회는 원래 나중에 하는 거니까.

 

2월 말 개학 때부터 걷기 출근을 시작했다. 1시간15분 걸린다. 대의명분은 잊은 지 오래고, 약속만 지켜보겠다는 생각이었다. 삼전마을에서 큰 재를 넘어 다니기가 벅찼다. 특히 자전거 타는 날이 그랬다. 시골생활 잘못하면 도시에서 살 때보다 몸을 움직이지 않는다. 버스가 두세 시간마다 한 대밖에 없으니 어딜 가든 차 없이 못 다닌다. 몇년 사이에 체력이 더 약해져 있음을 직감했다. 걷고 또 걸었다.

 

걷기에 약간씩 이력이 붙자 3월 말부터 동면에서 깨어나는 대지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엔 사과꽃, 복사꽃, 분꽃나무 같은 꽃들이 보인다. 그러다 발아래 돌나물, 쑥, 애기똥풀을 내려다본다. 다음날엔 농부들이 갈아놓은 거무튀튀한 흙더미 고랑과 연초록빛이 번져가는 야트막한 산자락이 발견된다. 바람, 기온, 햇볕, 비와 습도가 변화하면서 온천지가 개벽하는 묵음의 야성을 여태껏 들어본 적 없었다. 덕산면 선고리 일대를 시속 50㎞ 속도로 그저 몇년씩 휙휙 내달리기만 했으니.

 

“나는 걸을 때만 사색할 수 있다. 내 두 발이 움직여야 내 머리가 움직인다.” <고백록>에 담긴 루소의 고백이다. 그는 인간이 자연 상태에서 문명 상태로 ‘타락’했다고 믿었다.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자연 상태의 인간은 ‘홀로 시골길을 보행하는 소박한 인간’이라 했다. 다른 수단을 이용하지 않고 오직 맨몸으로 자기 체력에만 의지하는 여행자 말이다.

 

키르케고르의 코펜하겐 도심 산책은 또 다른 형태다. 고립된 자의 소심한 소통의지가 배어 있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던 키르케고르에게 산책은 사람들 사이로 끼어드는 통로 같았다. 짧은 마주침, 지인과 나누는 인사나 대화는 그가 희미한 인간적 온기를 쬐는 유일한 방법이었다는 것이다.

 

루소나 키르케고르가 걸으면서 무슨 철학적 생각을 펼쳤든 지금 상관없다. 나는 덕산면 삼전마을과 선림마을 사이를 가로지르는 지방도로와 농수로 사이를 두 달 동안 걸었다. 일찍 배달되었으나 손도 안 댔던 선물의 포장지를 뜯는 기분으로 뒤늦게 마을 풍경 하나하나를 발견하며 심취해 간다. 해거름 녘 내 발걸음 소리에 놀란 백로 한 마리가 푸드덕 날아오른다. 반경을 그리며 들판 위를 저공비행한다. 멋지다. 이럴 때 고려의 시인 강일용은 ‘한 마리 새, 푸른 산의 허리를 베고 날아가네(飛割碧山腰·비할벽산요)’라고 노래했다. 더 멋지다.

 

유튜브가 우리 몸을 앗아갔다. 관찰예능은 우리의 오감을 뒤덮는다. 현대인의 대뇌피질은 온갖 시각정보를 처리하느라 너무 피곤한 상태일 터다. 선생이 몸을 움직이기 부담스러워하면 어느덧 아이들도 그에 맞춰 신체활동을 꺼리기 십상이다. 몸 움직이기 귀찮을 때는 일하기도 싫어진다. 심고, 가꾸고, 키우고, 만들고, 고치는 노작교육도 어그러진다. 이오덕 선생이 그랬다. “사람은 살아가기 위해 일을 해야 하며, 또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도 일해야 한다. 일하기를 가르치는 것보다 더 소중한 인간교육이 없다.”

 

걷다 보면 미운 사람의 뒷모습, 독설로 반격하고 싶은 상대방의 말꼬투리가 불규칙하게 튀어나오고 한동안 내 의식을 기분 나쁘게 지배한다. 아뿔싸. 그럴 때 쳐다보는 하늘빛이나 저녁놀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자연은 우리의 치졸한 복수심과 부족한 포용력마저 말없이 받아준다. 자연과 의식 사이의 극명한 충돌과 불균형. 걷다 보면 그 경계마저 모호해진다. “걷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모든 올레가 그의 것이다.” 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의 명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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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993981.html#csidxf116e6712f14011a03d33286e518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