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64 회 풀러쓰는 다산이야기
『목민심서, 다산에게 시대를 묻다』를 간행하고
참으로 긴긴 세월이 흘렀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사상계』같은 잡지에서 ‘실학’에 관한 이야기나 책에 늘 관심을 기울였지만, 전문적으로 연구하기는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였습니다. 졸업반이던 대학 시절, 대학원에 들어와 ‘한국법제사’를 연구하라는 교수님의 충고로 조금은 정밀하게 다산의 저서에 접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번역서가 거의 없던 때여서, 참으로 겉핥기식의 원문을 보던 때였습니다. ‘71년 「다산 정약용의 법사상」이라는 글로 석사학위를 받았지만, 대학 도서관에 있던 「신조선사」간행의 『여유당전서』안의 목민심서 등을 지나가는 식으로 보았을 뿐입니다. 논문을 쓰려는 목적으로만 읽었습니다. 그때도 『목민심서』는 널리 알려진 책이어서, 반드시 본격적으로 읽어야겠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교사생활을 하던 바쁜 시기여서 제대로 읽지를 못했습니다. ’73년 봄, 고등학교 교사 신분으로 국가보안법 위반자인 역적죄로 교도소 독방에서 10여 개월을 보냈습니다. 그때 「대양서적」에서「한국명저대전집」의 이름으로『목민심서』선역본(選譯本)이 나와 구입해두고 읽지를 못했는데, 집에서 책을 넣어주어 본격적으로 읽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책에 광주교도소에서 사책(私冊)이라는 인장이 찍혀 있으니, 증명이 되는 일입니다. 출소 뒤에는 다산 책이 번역도 되고 영인한 원본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에 또 걸려들어 교도소 독방 안에서만 15개월이 넘는 세월을 보냈기에, 경인문화사의 『목민심서』영인본 원문을 꼼꼼히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책표지 안에 81년에 사책이라는 증명서가 있으니, 믿을 수 있는 일입니다. ’82년 교도소에서 나온 뒤로는 본격적으로 다산에 대한 논문을 쓰고 많은 저서를 번역해서 출간하는 일에 전혀 게으르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2004년 이후 다산연구소를 운영하면서는 「풀어쓰는 다산이야기」를 쓰느라 하루도 목민심서를 보지 않는 날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50년이 넘도록 『목민심서』는 나와 가장 가까운 손안의 책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문의 원문이야 읽기가 쉽지 않고, 번역서라고 해도 48권의 책을 모두 번역한 책은 우선 권수가 너무 많아 읽을 엄두도 내기 어렵습니다. 모두가 목민심서는 필독의 책이라고 말하고, 또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라고 하면서도 실제로 제대로 읽어본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80년대 중반부터 ‘풀어 쓴 목민심서’, ‘읽기 쉽고 편한 목민심서’, ‘오늘에 읽는 목민심서’를 펴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압축하고 줄여서 한 권으로 만들고, 가능한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펴내자는 생각만 하고는, 시간만 흐르고 세월만 지나 내 나이 80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출판사의 권유도 있었고, 선배학자들도 그런 책을 쓰라고 강고한 권유가 있었지만 차일피일 이제야 겨우 책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게으른 사람의 삶이었습니다. 200년 전에 세상이 썩어 문드러졌다고 한탄하면서 ‘공렴(公廉)’ 두 글자로 썩은 세상을 도려내어 맑고 깨끗한 세상을 만들자던 목민심서의 내용은 아직도 실현되지 못한 상태입니다. 공직자들의 부패는 끊이지 않고, 세상은 타락해가면서 인간의 존엄성까지 무너져 가는 오늘, 목민심서의 긍정적인 측면만 살려내서, 인간다운 인간, 나라다운 나라가 되는 길을 열어야 되지 않느냐라는 생각을 접을 수가 없어, 시대를 묻는 목민심서를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두 차례 감옥에서 읽었던 책들을 만져보면서 이렇게라도 책을 내는 것은 그것들 덕이다라고 생각하면서, 목민심서를 붙들고 감옥에서의 고통을 이겨내던 그 고독을 회상해봅니다. 감개무량할 뿐입니다. 박석무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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